한반도에서 2010년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한반도는 100년전 국권을 잃고, 식민지, 분단, 그리고, 전쟁과 냉전의 역사를 거쳤다. 2010년은 우리가 살아온 100년에 대한 성찰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100년을 기획해야 할 '역사적 성찰'의 해다.
남북관계에서도 2010년은 6.15 공동선언 10주년이며, 북미 관계에서는 2000년 '조미 공동 코뮤니케' 채택 10주년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개의 공동선언으로 10년 전 한반도는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선순환'을 경험했다. 2010년, 다시 한 번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북미 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악화의 악순환을 경험할 것인가? 선택의 한해가 아닐 수 없다.
2010년은 또한 외교정책과 국내정치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해가 될 것이다. 올해에는 한·미·일 3국에서 중간선거가 있다. 한국에서 6월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선거 결과에 따라 대북정책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7월 일본의 참의원 선거 역시 민주당의 안정적 국정운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또한 오바마 행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북한에서도 후계체제 문제가 더욱 구체화되는 한해가 될 것이다.
선거는 외교정책에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의 대북정책에서 선거는 집권기반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고, 정책 전환을 가로 막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민주당은 북한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납치문제에서 전향적 조치의 가능성을 확인한다면, 7월 참의원 선거 이전에 북일 관계를 공개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납치 문제가 갖는 보수적 성격을 고려할 때,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국내적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2010년은 또한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결정적 전환의 해이기도 하다. 우선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임기 초반에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하면, 한반도 정세의 장기적 변화의 새로운 출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국의 역할, 그리고 일본 민주당 정부의 새로운 외교가 가져올 동북아 정세변화도 기대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 가 보면, 넘어야 산은 높고, 갈 길은 멀다. 2010년 나타날 주요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북핵 전망
1) '핵 없는 세계'가 북핵문제에 주는 영향
북핵문제 해결에서 2010년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2010년은 5년 마다 열리는 핵무기 확산방지 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의 재검토 회의(2010.5.3~28, 뉴욕)가 열리는 해이다. 과연 NPT 체제를 정비해서 '핵 없는 세계'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NPT 체제의 위기가 가속화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핵 없는 세계'라는 비전을 강조하면서,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전임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핵무기 감축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2005년의 재검토 회의가 최종 의정서를 채택하지 못하고 폐막한 것은 바로 핵 보유 국가의 핵군축 노력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올해도 마찬가지로 핵을 가진 국가들의 솔선수범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비핵국가들에 강력한 확산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1) 오바마 대통령의 솔선수범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분명 긍정적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의 적극적 노력은 이미 2009년 9월 UN 안전보장이사회 15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안 1887호를 통해 결실을 본 바 있다. 이 결의안은 핵 보유국의 핵감축, 비핵국가의 비확산,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3대 원칙의 강화를 통해 NPT체제를 재건,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핵 군축 외에도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의 조기 비준과 모든 국가의 핵 확산금지조약 가입, 핵 분열물질 감축조약(FMCT)의 조기 체결, 핵 기술 수출통제체제 강화 등 구체적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핵무기 감축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고, 이 결의안의 주요 내용이 2010년 NPT 재검토 회의의 기본 내용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요한 것은 핵 보유 국가들의 핵감축 노력이 2010년 5월 이전에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핵국가들의 비확산체제를 강화할 수 있다. 현재 5개 핵보유국가중에서도 특히 미러 양국의 보유량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의 핵무기 감축 노력이 진전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오바마 대통령의 꿈과 희망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미국 국내 합의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Comprehensive Nuclear-Test-Ban Treaty)2)의 의회 비준이다. 미국은 상원의 2/3 찬성을 얻어야 한다. 2010년 5월 이전에 상원 인준을 요청할 예정이나, 통과될 지는 의문이다. CTBT 비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은 미국이 현재 갖고 있는 핵무기의 수명연장을 통해서도 충분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러시아와의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alks)이다. 1991년 미러 사이에 합의한 START-1 은 2009년 12월 5일 효력이 종료되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후속협정이 2010년 5월 이전에 제시될 필요가 있다. 미러 양국은 2009년 7월 모스크바 회담에서 START 후속 협정이 발효되면 7년 안에 양국의 핵탄두를 1천500~1천675개,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등의 발사 수단도 500~1천100개로 줄인다는 후속협정 초안 양해각서에 합의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 내에서 여전히 핵무기 감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2010년 채택 예정인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의 초안에 미국의 핵무기 감축 계획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3) START가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행정부와 의회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행정부 내부에서의 공감대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START-2를 러시아와 합의하기 위해서는 백악관과 국방부가 핵무기 전략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며, 이 또한 의회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오바마의 리더쉽이 필요한 부분이다.
핵 보유 국가의 군축 노력이 회원국들에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면, 비확산 규정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NPT 체제가 처한 심각한 위기의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NPT 밖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2003년 NPT를 탈퇴한 바 있다. NPT 역사에서 가입하고 탈퇴한 사례는 유일한 경우이다. 그리고 이란은 NPT 체제안에서 핵 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NPT 체제 정비가 북핵문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이 예상할 수 있다.
첫째, 5월 이전에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폐기의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써, 북한이 NPT 체제에 재가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NPT 체제에 들어올 가능성이 낮고,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쉽지 않다는 점에서 NPT체제 밖의 북한이라는 존재는 NPT의 구속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은 북핵 폐기의 실질적인 과정은 이후에 시작하더라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의지를 확인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5월 이전에 북핵문제의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강화된 NPT 체제가 북핵 해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미국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 금지를 명문화 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이 5월 이전에 미국 상원의 비준을 얻을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4)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가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자국의 비준을 명분으로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의 서명 혹은 비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추가 핵실험 포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NPT 체제내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방안을 강조하는 흐름에서, 9.19 공동성명의 미묘한 합의사항인 '적절한 시기의 경수로 제공'이라는 조항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북한은 '자체 경수로 건설'을 주장하며, 농축우라늄 개발을 정당화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 폐기 일정을 구체화하고, 그래서 북한의 NPT 재가입 가능성을 확보하는 조건에서 '경수로 건설'에 대해 진전된 지원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NPT 체제내에서의 경수로 건설이라는 기본구도는 부시행정부와 같지만,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 북핵 협상의 세 가지 흐름
북핵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포괄적 접근이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도, 2005년의 9.19 공동성명도 역시 포괄적 접근이었다. 그 핵심은 무엇인가?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해야만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둘러싼 적대관계가 청산되지 않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형성되지 않으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억지 필요성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 6자회담 참여국들은 포괄적 접근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2009년 12월 보즈워즈 특별대표의 방북 과정에서 양국은 9.19 공동성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문제는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2010년 북핵 협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며, 북미 양국은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가능성이 높다. 상응조치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과감하게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핵 없는 세계'를 위해서는 북핵문제의 진전이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상응조치는 제한적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국의 적극적 동참 없이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오바마 행정부 등장이후 경제적 포용정책(Economic Engagement Policy)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고 있으나,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해제는 시간과 절차, 그리고 북한의 상응노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은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 비-민감 품목 중심의 미국기업의 북한진출 등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상응조치로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 이행노력을 가져오기는 어렵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행정부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를 과감하게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대사급 관계는 상원의 2/3 찬성으로 비준된다는 점에서 당장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대통령 결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연락사무소 개설을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 연락사무소는 대사급 관계로 넘어가는 잠정적 과정으로 상징적 효과는 매우 크다.
북한은 북미 관계 진전의 과정에서 영변 핵시설을 과감하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영변의 핵시설이 노후화되어 있고, 불능화 중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재개 움직임이 거의 없으며, 농축 우라늄 생산을 새로운 협상카드로 강조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이 있다. 영변 핵시설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면, 북한은 불능화를 넘어서는 진전조치(폐쇄)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 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연락사무소 개설은 북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 민주당이 전후 외교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북아 공동체를 향해 적극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피해 갈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남북관계의 교착상황에서 일본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미국과의 협상 환경을 조성하고, 남한 보수정권에 대한 유리한 협상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전향적인 대일 접근을 고려할 것이다. 다시 말해 향후 북일 관계는 북한의 적극적 움직임과 일본의 새로운 동북아 외교가 어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둘째, 북핵 해결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며, 북중 경제협력의 활성화가 북핵 협상 환경의 악화를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계정세에서 중국의 부상은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 중국은 G2 시대라는 새로운 용어처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밀접해졌다. 일본의 민주당이 '동북아 공동체론'을 제시하며,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조정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도 결국, '중국의 부상'을 중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2010년 미중관계는 기후변화 협정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립, 미국 중간 선거 국면을 앞두고 분출할 보호무호주의 경향, 미국의 대만 패트리어트 판매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의 재개와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미중협조관계는 지속할 것이다.
다만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 주도적으로 동북아 질서를 관리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구체화함에 따라, 중국식 북핵 해법이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1월 방중과정에서 북중 정치관계의 안정적 구축과 더불어, 동북경제권의 새로운 모습도 등장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나진 선봉을 특별시로 지정하여, 러시아의 극동지역, 중국의 동북지역을 잇는 새로운 삼각협력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나아가 중국의 동북진흥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북중 접경지역의 철도, 도로, 항만을 포함하는 새로운 물류망이 구축될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동해로 나아가는 출구이며, 저렴한 노동시장을 의미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남쪽으로 향하는 문이 닫히면서, 현실적으로 북방경제권으로의 편입이 불가피해졌다.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는 지리적 이점과 유리한 노동 분업, 그리고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북경제공동체의 꿈이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할 현상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가 북핵 협상에서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나, 미국내에서 국무부와 국방부의 갈등이 표출되고, 미국 국방부와 한국 정부가 반대동맹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보즈워스의 방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했다. 북한은 핵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평화보장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마바 행정부 역시 북핵 폐기를 위한 포괄적 접근에서 관계 정상화와 더불어 평화체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재래식 군비경쟁 또한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2010년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북한이 강력한 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6자회담 재개 문제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별도포럼'(4자회담?)의 일정과 연계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태도다. 이미 휴전선에 대한 관리권이 유엔사령부에서 한국군으로 많이 이양되었다. 한미 양국간에는 2012년을 목표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개국이 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등은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소극적 입장을 갖고 있다면, 논의가 진전하기 어렵다.
평화체제로 가는 길은 멀다. 비핵화가 과정이듯이, 평화체제 역시 과정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잠정적 단계로 '한반도 종전선언'을 구체적으로 추진했으며, 2007년 10.4 정상회담에서 남북한이 합의했다.5) 종전선언이란 무엇인가? 한국전쟁의 법적 종료를 의미한다. 정전과 종전의 법적 효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장 검토해야 할 현안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여전히 정전상태를 관리하는 법적 주체로서 유엔사령부의 정체성 문제가 있다. 유엔사령부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결의로 만들어진 기구다. 전쟁의 법적 종료를 선언하게 되면 유엔사의 설립근거가 상실된다.
후텐마 기지이전을 둘러싼 미일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부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협력 체제를 가능케 하는 유엔사의 법적 지위 변화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이 평화체제에 대한 미래구상보다, 현존하는 대북억지력 강화 우선 노선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당사자인 한국이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3. 남북관계 전망
1) 2009년 남북접촉이 2010년에 미치는 영향
2009년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둘러싼 대화의 1막이 마무리 되었다. 2010년 대화의 2막은 1막이 남긴 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2009년 남북대화 추진에 대한 평가는 2010년을 예상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2009년 8월을 전후하여 북한의 적극적 개입과 한국의 소극적 대응의 기본구도가 만들어졌다. 비선의 개입으로 남북의 물밑 접촉은 정상회담 논의까지 이르렀으나, 결국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대북정책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우선적으로 정책결정체계의 혼선이 드러났다. 1막 1장에서의 비선의 개입으로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접촉이 이루어진 과정과 1막 2장에서의 통일부 주도의 대북협상 과정은 명박한 차이를 드러내 주었다. 비선의 활용은 문제점으로 남겨져 있으며, 정무적 접근과 정책적 접근의 연결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의 전체적인 대북전략이 부재하고, 대북정책 결정구조가 정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문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은 이 과정에서 협상창구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으며, 이 문제는 2막의 재개를 위한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통일부 주도의 1막 2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의제의 선정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일회적 성과주의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군포로 문제는 한국전쟁의 전후 처리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군포로 문제가 이승만 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점에서 상호주의의 문제도 남아 있다.
납북자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납북자 문제는 생사확인, 상봉, 그리고 송환 등을 사례에 따라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는 공통적으로 남북의 신뢰구축을 전제로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남북관계의 포괄적 관계개선의 큰 틀에서 접근해야 효과가 있다. 포괄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구축에 대한 적극적 의지 없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 2010년 남북관계의 주요 흐름
북한은 대미 협상의 환경을 조성하고, 경제정책에서의 공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 대남접근을 계속할 것이다.
북한이 대남정책에서 적극적 이니셔티브를 행사하는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우선적으로 대미협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북미 관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며, 남북관계는 동시에 미국내 대북정책의 여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대남접근은 북한의 경제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폐개혁을 통한 북한 경제의 리셋 상황에서 물가안정과 북한 원화의 안정적 가치는 결국 공급에 달려 있다.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대내적으로 생산을 증가시키거나, 대외 경제관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국내 차원의 공급확대와 관련, 북한 당국의 입장은 모순이다. 생산성 증가를 위해서는 인센티브의 확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북한 당국은 계획을 강조한다. 그것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 왜 최근 몇 년 동안 생산이 증가했을까? 그것은 시장거래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현물지표보다 금액지표를 앞세우고, 기업의 이익처분권을 부여한 효과다. 임금과 물가안정, 모든 것을 공급확대에 의존하게 해놓고, 오히려 생산증가에 반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물가 안정화를 위해서는 특히 식량공급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식량가격이 기준가격이기 때문이다. 식량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중가격이 다시 발생한다. 국정가격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시장으로 간다. 그러면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북한 원화의 가치 또한 다시 하락한다.
북한의 대내적인 공급확대정책의 혼선으로, 대외 공급문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왜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에 적극적인지, 혹은 북중 관계를 활성화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북한의 경제상황과 관련이 있다. 특히 남북관계가 중요하다. 북한의 대외무역 구조가 남북경협에서 흑자를 보고, 그것으로 북중 무역의 적자를 보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식량이나 비료, 금강산 관광 대가, 개성공단의 임금으로 중국산 중저가 소비재와 생산설비를 구매해 왔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대남 접근은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지방선거 이전까지 보수적 의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상반기 중으로 남북관계 정상화가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대북정책 프레임은 여전히 선핵폐기론, 인권문제 우선해결론(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포함)에 치중돼 있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접근 중에서 한국이 중요하게 역할을 해야 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전략은 부재하다.
예를 들어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연락사무소' 제안은 북미 관계 개선에 대비하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동시에 내용의 부재를 형식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형식에 집착하는 현상은 정책내용이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런 결과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해서 대화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대화의 형식은 부차적이다. 정책에 대한 내용이 준비되면, 형식은 자연스럽게 마련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수적 의제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것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10.4 합의 이행문제를 정치적 시선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지속할 것이다. 상반기에 장관급 회담 등 남북 당국자 관계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의제의 우선순위 차이로 접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북 전략의 부재는 정책결정 과정의 혼선으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을 포함해서 국제사회는 한국에서 대북정책의 주요 결정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풍경이 지속될 것이다.
하반기 대북정책에서는 서두르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며, 1995년 쌀 회담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상반기의 한반도 정세변화에서 뒤처지는 현상이 나타날 경우, 하반기 들어와서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초조감이 드러날 것이다. 북미 관계에서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북일 관계가 급진전한다면, 대북정책에서 서두르는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 외교안보 조정체계가 부재하고, 통일부 중심의 이념적 대북접근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에는 다시 비선이 개입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정국 반전을 위한 정치적 카드로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비선 활약은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서두르다 낭패를 본 1995년 쌀 회담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5년 쌀 회담은 임기 중반 시점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생했고, 불신의 증폭으로 이후 남북관계 악화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주석>
1) NPT 체제는 크게 세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핵보유국가의 핵무기 감축 노력, ② 비확산, ③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핵보유 국가의 솔선수범이다. 현재 NPT체제에서 핵보유 국가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나 핵 폭발장치를 보유한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에 한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Oliver Thränert, "The Crisis of the NPT: Ahead of the 2010 Review Conference" CSS Analysis in Security Policy no. 65 December 2009. 참조
2) CTBT는 지난 1996년 9월10일 미국 뉴욕에서 체결됐으며, 현재 181개 국이 서명했으며 151개 국이 비준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였던 미국은 서명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비준에는 실패했다. 미국이 비준한다면,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 서명이나 비준을 미루고 있는 국가들에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3) 한국의 국방부는 2010년 NPR에 '확장억지' 개념을 반영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른바 '핵 우산'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2010년 북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핵 폐기를 위해서는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표시인 '소극적 안전보장'을 북한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북핵 폐기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확장억지'의 강조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4) 현재 민주당은 상원의석 100석중 58석을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무소속 2석의 도움을 얻어 상원에서 공화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봉쇄할 수 있는 60석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2/3 찬성을 얻기 위해서는 공화당 의원 7명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5)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3자(남북한과 미국) 혹은 4자(중국 포함) 정상회담을 한반도 지역내에서 열어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권 교체와 부시행정부의 임기 만료로 종전 선언 합의가 이행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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