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가 소송을 하려면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별별 서류를 다 떼어야 하는데 외국인은 절차도 모를 뿐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도 서류를 못 뗀다. 평일에 서류를 떼어야 하는데, 공장에서 못 빠져나오니까. 이럴 때는 한국 사람이 도와줘야지 별 수 없다.
소송을 시작하려면 우선 체불한 사업주의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하다. 근데 요것을 떼는 게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잘 보면 길이 있다. 3가지 서류만 있으면 (외국인이 출석하지 않고도) 대리인이 주민등록초본을 뗄 수 있다. 그 3가지 서류는
1. 체불금품확인원
2. 접수되지 않은 솟장
3. 위임장.
그런데 일선 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은 이 절차를 모르는 수가 많다.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럴 때 우리 직원들은 답답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틀림없이 된다니까요! 되나 안 되나 행정안전부에 한 번 문의해보세요."
필리핀 사람 레이몬드를 비롯한 3인이 임금 약 5백만원을 못 받았다. 사장님은 무슨 배짱인지 돈을 줄 의사가 전혀 없단다. 소송을 시작해야지 별 수 없다.
사장님의 주민등록초본을 떼러가기 전에 전화로 미리 H읍사무소에 부탁했다.
"되는 거죠?"
"글쎄요."
"정 의심나시면, 사무편람 304페이지 질의응답 36번을 확인해보세요."
남자 직원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확인해보죠."
그러나 읍사무소에 도착하니 아까 통화했던 남자 직원은 없고 엉뚱하게 여자 직원이 맞는다. 하지만 이 직원은 뭘 모르는지 여간 냉랭하지가 않다.
"외국인 본인이 안 오면 안 된다니까요."
할 수 없이 방법을 가르쳐 주고 제안했다.
"되나 안 되나, 행안부에 문의해보세요."
여직원은 행안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솟장 얘기는 쏙 빼고 묻는 게 아닌가!
"체불금품확인원과 위임장 가지고는 안 되죠?"
"안 되죠!"
*왠지 안 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
"왜 솟장은 빼고 말합니까?"
그제서야 여직원은 다시 조심스럽게 질의한다.
"참, 솟장도 가지고 왔는데 그럼 되나요?"
"되죠!"
성질 같아선 한 번 들었다 놓으려다가 참았다.
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인데 어쩌겠는가!
*왠지 안 되는 방향 : 왜 이 공무원은 안 되는 방향으로 몰아갈까? 아마도 남의 주민등록을 떼어주는 게 꺼림칙해서 그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극적이라는 얘긴데, 이게 심해지면 결국 복지부동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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