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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센 놈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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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센 놈Ⅰ

[한윤수의 '오랑캐꽃']<172>

필리핀 여성이 울면서 왔다. 두 살 연하의 남편과 함께.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다.
그녀는 한국에 들어온 지 1년도 안되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3번의 직장 이동 기회를 다 썼다. 몸이 아픈 남편과 같은 직장에 근무하기 위해서!
따라서 이젠 더 이상 직장을 이동할 수 없는 상태에서 또 직장을 나왔으니 뭐가 되나? 꼼짝없이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다.
"목사님, 도와주세요."
하지만 어찌하나? 방법이 없는 걸!

평택 고용지원센터에 전화해 보니 퇴직 사유가 <본인의 희망>이다. 이런 사유라면 더더구나 구제할 방법이 없다.

내가 물었다.
"정말 본인이 원해서 나온 거예요?"
리나가 말했다.
"아뇨. 저는 있고 싶었어요. 사실은..."
이야기는 꼭 이렇게 된 것이다.
리나와 남편 불통(가명)은 안성의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유명 가구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알짜 기업이다. 한국인 36명, 외국인이 12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남편 불통은 알아주는 숙련공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월급도 더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갑상선 종양을 앓고 있어서 일 자체를 힘겨워했다. 그 공장은 일거리가 많아서 화요일과 금요일은 밤 11시까지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불통의 건강을 염려하여 9시까지만 잔업을 시켰지만 그는 너무 힘이 들어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이 그만두기로 결정하자, 그 공장에서 유일한 여성 노동자인 리나의 거취가 문제였다. 사장님 입장에서 보면 남자만 득시글거리는 기숙사에 여성 혼자만 두는 게 무지하게 신경 쓰였으니까. 왜 신경 쓰이냐구? 올 여름 리나가 샤워를 할 때 다른 외국인 남성들이 몰래 훔쳐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리나는
"성추행이야!"
하고 소리 지르며 얼마나 난리를 쳤던가! 그래서 사장님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리나, 남편 그만두면 너도 그만두는 게 좋겠어."
그래서 리나도 남편 따라 덩달아 그만둔 것인데, 그 결과 불법체류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그녀는 얘기하면서도 계속 울었다.

그녀가 다시 합법으로 회복되려면 회사에서 퇴직을 취소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번 내보낸 사람을 다시 받아준다는 게 가능할까?
사장님을 만나서 부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복직을 부탁하러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기에 사장님에게 드릴 선물을 사라고 시켰다. 불통은 음료수와 세상에 저렇게 초라하고 볼품없는 케익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케익을 샀다. 차라리 안 주고 말지, 주면 오히려 욕먹을 것 같은 케익을 왜 살까? 돈이 아까워 저러나?

N간사가 리나 부부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불통은 중고 아반테 자동차를 갖고 있었다. 오후 3시쯤 안성을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이 차는 보험금 포함 총 150만원에 구입한 똥차여서, 오산도 못 가서 마후라가 달아났고 결국 차체가 주저앉아 버렸다. 레카 차를 불러 견인하고 오산 정비공장에서 수리하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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