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이야긴 전혀 달랐다.
"우동이 트럭을 모는 기사 아저씨한테 미움을 받았다면서요?"
내가 서두를 꺼내자마자 사장님은 기막혀 했다.
"기사 아저씨가 아니라 <총무부장>입니다."
명칭부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물론 이해는 갔다. 작은 회사니까 총무부장이 트럭을 몰 수 있다. 하지만 총무부장을 보고 기사 아저씨라니 우동이 너무한 것 아닌가?
사장님이 말했다.
"우동 때문에 속 많이 썩었습니다."
놀라서 반문했다.
"그래요?"
"매일 밤 술 파티를 열고 심지어 집기를 부순 적도 있어요. 무엇보다 불량이 많이 났거든요."
"아, 그래서 직장 이동에 싸인해주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런 애는 빨리 나갈수록 좋거든요."
이것도 이야기가 다르다. 기사 아저씨의 악평 때문이 아니라 사장님이 스스로 판단해서 내보낸 거니까.
나는 진작부터 묻고 싶었던 체불임금에 관해 물었다.
"20일치 임금은 왜 안 주셨어요?"
"그것도 좀 늦었지만 주려고 했죠. 하지만 지금은 괘씸해서 못 줍니다."
"왜요?"
"며칠 전 점심시간인데 덩치 큰 태국 애들을 회사 식당으로 데리고 와서 돈 내놓으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난리를 쳤다지 뭡니까?"
"사장님이 직접 보셨어요?"
"아뇨."
"왜 못 보셨어요?"
"난 현장에 없었거든요. 하여간 총무부장이고 생산부장이고 한국 사람은 무서워 다 도망쳤답니다."
"만일 그랬다면 유감입니다. 하지만 사장님, 소리 친 건 잘못되었지만 그래도 체불임금은 주셔야 합니다."
내 용건을 간단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총무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는 흥분해 있었다.
"근로자 거기 있습니까?"
"아뇨. 갔죠."
"걔 어디 있는지 제발 좀 가르쳐 주세요."
"왜요?"
"보이면 XX려구요. 내가 이놈 경찰에 고소할 겁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고소는 고소구, 그래도 체불임금은 주셔야 합니다."
"받으러 오라구 하세요."
"받으러 가진 못하죠. 어디 무서워 가겠어요?"
"안 오면 못 줍니다."
"안 주시면 노동청에 진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더 흥분했다.
"노동청? 좋습니다. 노동청으로 사건 이관시키세요. 나도 한국노총 출신입니다. 내가 노동청에 경찰 대동하고 가서 구속시킬 겁니다."
나는 재차 진정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동이 다시 온 날은 좀 추웠다.
그에게 월급 달라고 소란을 피운 적이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부인했다. 그럼 누구 말이 옳은가? 우동인가? 총무부장인가? 알 수 없다.
진정서에 서명을 받아놓고 일단 그를 보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식당으로 가는 길에, 우동이 태국 여성 두 명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성의 외투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면서 어깨에다 자연스럽게 손을 얹는가 하면, 껑충껑충 뛰다가 건들건들 건달처럼 걸었다. 자신만만한 게 마치 농카이의 불꽃같다고나 할까? 전혀 외국인 노동자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힘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저 정도로 다정한 걸 보면 틀림없이 총각이지 싶어 다가가서 물었다.
"우동, 결혼했어요?"
"아뇨."
"몇 살인데?'
"서른이요."
얼굴도 잘 생겼지만 말도 서걱서걱 잘한다.
"결혼해야겠네."
하자 그가 당당히 말했다.
"한국 여자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그렇구나! 우동과 회사측과의 다툼에는 뭔가 설명되지 않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이거였구나!
비로소 한국인들이 우동을 싫어한 진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동은 너무나 당당해서 건방지게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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