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지난 3월 제가 동교동 사저에서 대통령님을 뵈었을 때, '역사를 확신을 갖고 보되 긴 안목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던 대통령님이 오늘 따라 몹시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행사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처음으로 '주인공 없이' 치러진 이날 행사에는 1000여 명의 인사들이 운집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사상가적 면모를 처음으로 조망하는 특별강연이 열려 주목을 끌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행사가 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뉴시스 |
'김대중의 평화사상과 한반도'라는 주제로 강연한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그는 국내정치에서도 남북관계에서도 대외관계에서도 라이벌은 있었지만 적은 없었다"며 "소통과 연합, 화해와 협력, 평화의 리더십을 자존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실천한 지도자요 사상가였다"고 평가했다.
백학순 연구위원은 김대중 평화사상의 특징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기초를 두었고 △현실 정치에서 직접 실천했으며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핵심 실천 과제로 삼으면서도 한반도를 넘어 전지구적으로 대상과 범위를 넓혀갔다고 정리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해 백학순 위원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정보기술(IT)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들며 "모든 국민들이 '지식 헤게모니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의 기반이 어디 있으며, 정보화가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더 나은 방법이 어디있겠냐"고 강조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올 3월 18일자 일기에서 인류의 역사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과 대비해 '지식 헤게모니의 역사'로 파악하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고 백 연구위원은 소개했다.
또한 백학순 연구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주인의식과 자존,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의 본연의 자세로 독재, 불의, 반인권, 전쟁위협과 투쟁해 승리를 일궈낸 정치가요 실천사상가"였다며 그 같은 면모를 느낄 수 있는 DJ의 오래 전 글을 소개했다.
"(나는) 독재체제에 항거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를 강도가 침입한 집의 주인같이 느꼈습니다. 내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안위는 접어두고 맨손으로라도 침입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과 관련해 백학순 위원은 유고 연설 '9.19로 돌아가자'를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끝내 하지 못한 그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백학순 위원은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해 지금 이 시간 북한과 회담하고 있다"며 "이 모든 일이 그동안 김 전 대통령이 누누이 했던 충고의 말 그대로다. 그가 만약 북핵 문제의 성격과 협상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해결책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정확한 충고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백학순 박사 강연 전문 보기)
강만길 "국민의 정부 업적 많지만 신자유주의 후유증 안타까워"
역사학자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이라는 강연에서 김대중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발족시켰다는 점을 최우선 치적으로 꼽았다. "군사독재 시기의 이른바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하고 한국을 국제 수준의 인권국가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강만길 교수는 이어 "공화주의 역사상 최초로 여성부를 두어 여성의 권익을 높인 점"을 평가했고, 아울러 "시민사회가 크게 성장해 40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총선연대'를 구성해 일찍이 없었던 선거 정화운동을 펼 수 있게 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김영삼 '문민정부' 때 초래된 IMF 관리체제에서 세계가 놀랄 만큼 빨리 벗어난 점도 큰 업적으로 지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방법밖에 있을 수 없었고, 따라서 그 후유증 또한 대단히 심각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그 과정을 통해 실업자와 개인 신용불량자, 버려진 아이들, 노숙자 등이 양산됐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이 극심해져서 비정규직 문제가 급부상했으며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격차가 심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대중참여경제론'에 대해 "자유경제 체제를 보장하면서도 노사간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분배 정의를 실현하려는 경제정책"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그러나 IMF 체제를 벗어나는 방법이 노동자와 중산층의 파멸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DJ가)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중참여경제론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반인 '국민의 정부'가 IMF 관리체제의 뒤처리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은 국가적 견지에서는 그 불행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음으로서 다행한 일이었다"면서도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에게는(…) 평소의 경제적 지론을 정책상에서 구현할 수 없게 된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만길 교수 강연 전문 보기)
이희호 여사 "지금이야 말로 김대중 정신으로 돌아갈 때"
이날 행사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도 참석했다. 이희호 여사는 인사말에서 "(현재) 정부정책에 대한 갈등이 커지고, 남북관계는 긴장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으며 서민 생활은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때야말로 제 남편이 추구했던 정신과 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대화와 관용, 화해와 협력, 어렵고 힘들게 사는 우리 이웃을 돌보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며 "오늘 행사가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협력과 대화를 다짐하고 실천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아프리카 케냐 어린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의 추모 공연도 열렸으며, 행사 참가비로 받은 3000만 원은 불우이웃, 1만 달러는 케냐 어린이들을 위한 성금으로 각각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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