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이 7일 사표를 제출했다.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우룡)의 표현에 따르면 "엄기영 사장과 MBC 이사 전원 및 감사의 재신임 여부를 묻기 위한 것"이다.
"엄기영 사장 사표 받아들여질 가능성 낮다"
이번 엄 사장의 사표 수리가 방문진을 앞세운 정권 차원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는 9일 "YTN에 이어 KBS 사장에 대통령 특보를 임명한 이명박 정권이 이제 마지막 남은 공영 방송 MBC마저 수중에 넣어 방송 장악을 완성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MBC의 한 관계자는 "엄기영 사장의 사표 제출은 방문진과 청와대가 사장과 임원진을 얼마나 핍박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상황"이라며 "방송의 독립성, 책임 경영 등의 원칙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번에 엄 사장의 사표가 실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김우룡 이사장도 9일 기자들과 만나 "전부 수리, 전부 반려, 일부 수리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엄기영 사장과 본부장단의 사표를 선별해서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번 시기에 엄기영 사장을 쳐내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면서 "이제까지 MBC 사장은 정식 주주총회를 통해 바뀌어 왔는데 만약 이번 사표가 받아들여지면 임시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뽑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격렬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제작 본부장 교체가 목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표 수리'가 노리는 것은 보도본부장, 편성본부장, 제작본부장 등 핵심 본부장의 교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방문진은 그간 이사회에서 MBC의 보도와 <PD수첩>, <100분 토론> 등 시사 프로그램을 두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MBC 경영진을 압박해왔다.
한 MBC 관계자는 "방문진은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는 본부장을 교체함으로써 MBC를 순치하는 기간으로 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MBC의 방송 내용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이번 사표 제출 사태의 본질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부당한 간섭에 맞서겠다"던 엄기영 사장이 본부장들의 사표를 모두 수리하고 본인도 사표를 낸 것을 두고 적절치 못한 대응이라는 비판이 많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퇴임 압박에도 끝까지 버티다, 최근 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까지 받아낸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대응 방식에 비교되기도 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낸 성명에서 "엄기영 사장이 본부장 전원의 사퇴서를 받았다는 것은 아무리 힘에 밀려서라고 하더라도 수장으로서의 적절한 처신으로 보기 어렵다"며 "MBC 구성원들은 핵심 본부장 또는 경영진 전부를 방문진 이사회의 손에 넘겨주고서라도 엄 사장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MBC를 살리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우룡-엄기영 밀약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 이사장과 엄 사장이 일부 본부장을 교체하는 선에서 '뉴 MBC 플랜 이행 부진'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것. 두 사람은 지난 4일 방문진 사무실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반대로 보는 해석도 있다. 한 MBC 관계자는 "엄 사장을 비롯한 임원 전체가 직을 던졌다는 사실은 엄 사장이 외부의 압력에 대해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대응한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느냐"며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임원진 사표 사태로 MBC 내부에 김우룡 반대 여론은 더 높아지는 분위기다. MBC 노동조합은 이날 김우룡 이사장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우리는 김우룡을 더이상 방문진 이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더이상 공영 방송 MBC를 더럽히지 말고 이사장 자리에서 물라니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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