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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商圈)

[한윤수의 '오랑캐꽃']<165>

집에서 쓰는 TV가 수명을 다했다. 15년이나 썼더니 브라운관이 완전히 나갔다. 브라운관을 가는 데 8만원이 든다니 차라리 그 돈으로 중고 TV를 사는 게 나을 것 같다.
발안 시내에 있는 중고 알뜰매장에 갔다. 그러나 오래된 제품도 8, 9만원이고 쓸 만한 제품은 10만원이란다. 예상 밖으로 비싸다. 신품도 14만원이면 사는데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아날로그 TV가 왜 이렇게 비싸요?"
"외국인들이 많이 찾거든요."
"아!"
"3년 있다 갈 애들이니까, 중고만 찾아요."
"그렇겠네요."
비로소 중고품이 비싼 이유를 알 것 같다. 외국인 때문이다.

외국인 밀집지역인 발안은 독특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거의 모든 가게가 외국인이 주 고객이다. 그들을 무시하고 한국인만 상대해선 장사가 안 된다. 마트, 식품점, 음식점, 옷가게, 핸드폰 가게, 화장품 가게, 미장원, 이발소, PC방, 노래방. 심지어 장날에만 여는 닭고기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가게가 외국인에 초점을 맞춘다.

외국인이 발안에 거의 나오지 않는 경우가 1년 중 몇 번 있다. 출입국의 단속이 심할 때다. 불법체류자는 잠적하고 합법체류자 역시 위축되어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상인들은 울상이 된다.
"왜 이렇게 조용하죠?"
하고 물으면 가게 주인들은 으레 말한다.
"단속 시작된 거 모르세요?"
발안의 상인들은 출입국의 단속에 예민하다. 덕분에 나는 그들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

외국인이 발안에 이렇게 돈을 많이 풀지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중심가의 한 빌딩은 주인의 아들 3형제가 한 층씩 맡아 운영하는데 솔직히 외국인 때문에 먹고 산다. 1층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유명한 00마트이고 2층은 당구장과 레스토랑이고 3층은 노래방이다. 그런데 3층 노래방에서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

자원봉사자 C씨가 외국인 몇을 데리고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주인은 들어온 손님이 외국인이란 것을 알고는, 보는 둥 마는 둥하며 재떨이에 쌓여있는 꽁초며 방구석에 나딩구는 빈 깡통조차 치워주지 않았다. 손님이 한국인이라면 이랬을까? C씨가 주인을 불러 따졌다.
"외국인 때문에 먹고 살면서, 이렇게 외국인을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주인은 그제서야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바빠서 그랬습니다."

▲ 닭과 생선을 사가는 외국인들ⓒ한윤수

그러나 대부분의 상인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고마워한다. 더구나 외국인은 주로 카드를 쓰지 않고 현찰을 내므로 상인들이 좋아한다.
외국인이 진짜로 좋은지 예를 들어보자. 금융위기가 터져 수원 같은 큰 도시에서도 택시 손님이 줄었을 때 발안의 택시는 불황을 몰랐다. 외국인들이 꾸준히 타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원 택시는 발안 택시를 부러워한다.
외국인이 무슨 택시냐고?
많이 탄다!
외국인이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나오면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기 때문에 양손에 물건이 가득하다. 이런데 어찌 택시를 안 타리요? 더구나 그들은 지리에도 어둡기 때문에 무조건 택시부터 타고 본다.
"걔들 고맙죠! 한국 손님보다 나아요"
어느 택시 기사의 말이다.
"뭐가 낫습니까?"
하고 묻자 그가 말했다.
"세 가지가 낫죠. 첫째, 잔소리가 없구요. 둘째, 술주정이 없구요. 셋째, 요금을 달라는 대로 다 주거든요."

고마운 걸 아는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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