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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난민 여성, 비참한 생계형 성매매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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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난민 여성, 비참한 생계형 성매매 실상

[현지통신] 혼란의 자타리 캠프, 전쟁의 피해자는 여성

자타리 캠프에는 약 15만 명 정도의 시리아 사람들이 임시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 캠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캠프 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캠프로 통하는 모든 구호물품과 기부금을 요르단 정부 관련 자선단체가 독점하여 관리하다 보니 기부금이 온전히 난민에게 가지 않는 문제를 비롯한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고, 거대 규모의 캠프 내 치안문제도 심각했다. 비록 캠프에 형식적으로 군인과 경찰이 존재해 있었으나 주로 캠프 외곽 경비, 구호인원 보호 등 임무가 제한적이었고 그 수도 충분치 않아 캠프 내부는 공권력의 부재에 따른 각종 범죄가 심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캠프 내부에서의 폭행, 살인 등의 폭력사건이 만연했으며 알콜, 마약 등의 약물 밀수도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캠프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 직접 자타리 캠프를 방문하고 캠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은 거친 캠프환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캠프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 보다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캠프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는 구호직원 다수와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혼, 난민촌에서는 더 어린 나이에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대다수는 시리아 남부 도시인 다라의 농촌 출신이었다.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조혼문화가 발달한 시리아 남부 출신 사람들의 문화는 전쟁 이후 캠프에 와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캠프 내 여성 부문을 담당하는 직원에 따르면 불안정한 미래와 경제 상황의 악화로 인해 지참금이 저렴해지고 캠프 내 강간 및 성추행 등 각종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를 결혼시키는 부모가 많아졌다고 했다. 12, 13살도 결혼하기에 어린 나이는 아니었고 캠프 내에서 14, 15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이 둘, 셋을 낳아 데리고 다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게 됐다.

▲ 요르단 내 시리아 최대 난민촌 자타리 ⓒ김태언

난민 여성 두 번 울리는 위장결혼

예전부터 시리아 여성은 중동지역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했고 많은 중동 국가 남성들의 이상형이었다. 이들이 난민으로 요르단에 몰려들면서 이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바로 위장결혼이다. 캠프에 정통한 여러 명의 관계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공통된 이야기는 아랍 주요 산유국의 부유한 사람들이 일정 금액의 기부금 전달 명목으로 자타리 캠프에 방문해 캠프를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여성을 물색하고, 선택한 여성의 가족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지참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택된 예비 신부에게 외국에서의 화려한 삶을 약속했지만, 요르단 내 도시에 집을 단기간 임대하거나 호텔로 데려가 1주~1달간의 동거 생활을 한 후 여성을 홀로 남겨두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절박한 경제 상황과 난민으로서의 특수 상황 때문에 공식적인 결혼 문서 없이 구두로 약속한 결혼을 믿고 딸을 보냈지만 결국은 버림받는 고통을 안게 된 것이다. 난민 생활에 위장결혼까지, 이들 여성은 이중고통을 받게 됐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고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캠프에 있는 가족에게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여성의 정조를 특별히 중요시하는 이들 문화에 의해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수치스럽게 살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는 2012년 여름 캠프 초기에 특히 많이 발생했으며, 캠프의 인구가 거의 10배 넘게 증가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인 법적 절차 없이 구두로 약속한 위장결혼은 피해 여성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 결국 결혼을 빙자한 성매매나 다름없게 돼버렸다.

생계형 성매매

성매매는 자타리 캠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업 중 하나였다. 어느 사회나 성매매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하지만,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하게 미치고 있던 보수적인 시리아 남부에서 성매매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타리 캠프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매매의 성격은 절대적으로 생계형이었다. 남편을 전쟁으로 잃고 홀로 남은 여성은 많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을 팔기 시작하였고, 좁은 캠프 내부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캠프 내 갱조직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난민촌 내부에는 성매매 전용 컨테이너가 있었으며, 여성들은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 몰래 자기 텐트에서 이 컨테이너로 이동하였다. 이런 조직적인 성매매 외에도 드문 경우로 가족의 가장이나 남자 형제가 성매매를 알선한 경우도 보고됐다.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는 자타리 난민 여성들

공식적으로 자타리 캠프 내에는 경찰이 없고 난민 중에는 범죄자, 스파이,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모여 있기 때문에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갓 벗어난 사람들로 가득한 캠프에서는 폭력과 혼란은 일상이 되어버린 듯했고 성폭력도 그 일부였다. 자타리 캠프 내 여성 의료인에 따르면 캠프에서는 시리아에서 친정부군 민병대에 강간을 당하고 캠프로 온 사람들뿐 아니라, 캠프 내부에서 강간을 당한 경우도 꽤 많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밤에 발생했다.

난민촌 캠프 특성상 간이 화장실과 샤워실은 거주용 텐트 바깥에 일정 간격으로 있었고 식수 탱크도 200미터에 한 대씩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텐트 바깥으로 나가 상당한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데 많은 경우 이때 성폭행이 발생했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성을 가문의 얼굴로 생각하는 이들 문화에 집안 여성의 성폭행은 가문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것이었다. 피해 여성들은 성폭행 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경우 가족의 남자 구성원에게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자신의 피해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이나, 캠프 내 성폭행에 대한 공식 집계도 거의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이런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텐트 내부에 머물러 있고, 화장실이나 샤워도 가족끼리 함께 가서 차례로 볼일을 본다. 이러한 캠프 내 여성에게 매우 가혹한 환경 때문에 부모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딸들을 일찍 결혼 시키거나, 몰래 캠프 바깥으로 빠져나가 도시로 가기도 한다.

시리아의 문제는 시리아 내부의 전쟁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을 한곳에 몰아넣은 이곳 자타리 난민촌은 그 인구만큼이나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다양했다. 전쟁은 사회를 보수적으로 만들었고, 여성을 더욱 억압하고 남성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극단적인 광기로 몰아넣은 전쟁에 난민촌의 특수상황까지 더해져 자타리 난민의 여성들은 더욱 불리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됐다. 결국 시리아의 전쟁에서 가장 크게 고통을 받는 이는 바로 이들 여성이었다.

*시리아 난민을 위한 모금 캠페인 바로가기
(이 캠페인에는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참여연대, 개척자들, 평화바닥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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