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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장·물가 잡기…'개혁 불만세력' 관리와 대외여건이 성공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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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장·물가 잡기…'개혁 불만세력' 관리와 대외여건이 성공 열쇠

[전문가 진단] 전격 화폐 개혁 단행한 北의 정치·경제는 어디로

북한이 11월 30일 전격적으로 화폐 개혁 조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이날 오전 11시를 기해 교환비율 '100대 1'의 화폐 개혁을 단행하고, 오후 2시부터 교환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월 1일부로 단행됐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다. 북한은 과거 4차례의 화폐 개혁을 실시했고, 가장 최근에는 1992년에 있었다.

이번 화폐 개혁은 2002년 7.1 경제개혁 조치 이후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음성적인 화폐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를 공고화하거나 고위층의 부정축재를 척결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좋은벗들'이 발행하는 북한 내부 소식지 <오늘의 북한소식>은 1일 이번 화폐 교환은 매 세대 당 10만 원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한도를 넘는 돈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전했다. 또한 화폐 교환은 오는 6일까지만 진행된다고 한다.

▲ 북한의 화폐 ⓒ연합뉴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화폐 개혁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며 "유관기관과 함께 사실 여부를 다각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외무성이 관리가 평양 주재 각국 외국 공관들에 대해 화폐 교환을 공식 통보했다는 중국 <신화통신>의 평양발 기사로 볼 때 화폐 개혁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왜 갑자기 화폐 개혁을 단행했을까? 그 배경과 의미, 향후 전망을 북한 정치·경제 전문가인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에게 들어 봤다.

■ 이정철 숭실대 정외과 교수

1992년 화폐 개혁은 사회주의권 붕괴 후 북한이 나름대로의 구상을 가지고 체제 안정화를 위해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였는데 부작용이 더 컸다. 2002년 7.1 조치를 할 때는 화폐 개혁 논쟁을 하다가 그런 부작용을 우려해서 안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화폐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대체로 인플레이션 문제, 북한 원화의 가치 절하 문제가 가장 큰 변수였다. 일단 화폐 개혁을 단행하면 배급경제와 화폐경제가 맞물리면서 경제가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다. 소위 암시장을 공격해 공식 경제를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조치인 것이다.

단기적으로 그런 효과가 있지만, 개혁이 실제로 성공하려면 공식 경제가 상품 공급을 계속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건 결국 북한의 대외관계와 연결되는 과제인데, 대외관계 개선은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북미관계 변수에 달려 있다.

외부에서의 상품 공급이 활성화되고 자본이 유입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북미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는 8일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양에 다녀온 뒤에 북미관계에 어떤 진전이 있을지에 이번 화폐 개혁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큰 그림으로 보면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2005년 미국의 대북 제재 이후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안정화되지 않으니까 방어적인 차원에서 화폐 개혁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국내 쌀값의 경우 국제 쌀값하고 같은 수준으로 가다가 작년에 급격히 올랐다. 과거 1kg 당 0.3~0.4달러였는데, 작년에 0.7~0.8달러까지 올랐다. 올해 약간 내렸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2년 경제개혁 조치 때 쌀값을 기준으로 다른 가격을 정했는데 쌀값이 그렇게 올라가면서 국내 인플레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화폐 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내 가격의 안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번 화폐 개혁이 주민들의 구매력을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는 데에 있다. 교환 한도를 10만원으로 정했다는 보도가 맞다면, 그 이상의 돈을 가진 사람들은 사실상 저축한 돈을 빼앗기는 셈이 된다.

현재 북한에서 10만 원이란 돈은 그리 큰 돈이 아니다. 평양 사람들의 월급이 대체로 3~4만원이니까. 그럼 1년 이상 저축한 사람들은 자기 소득을 빼앗긴다고 봐야 한다. 거기에 대한 불만이 커질 것이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달러나 위안화에 대한 수요가 폭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그걸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사실 2002년에도 그 두 가지 부작용을 우려해서 화폐 개혁을 안 한 것이다. 암시장 공격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경제가 달러화하는 문제, 주민 소득의 이전(갈취) 문제 때문에 못 했다. 그러나 현재 경제의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을 것이다.

▲ 이정철 숭실대 정외과 교수
2005년 이후 시작된 대북 제재가 이런 결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2002년을 기점으로 박봉주 당시 내각 총리가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2005년 쯤 되면 박 총리가 사실상 실권하고 2007년 3월에 교체됐다.

박봉주 총리가 일종의 급진적 개혁안을 제출한 것인데, 2005년 BDA 금융제재가 시작되면서 그 개혁안이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남쪽에서 2005년과 2007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쌀 지원을 하지 않아 쌀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북한의 시장이 2002년 계획 당시 상정했던 상황에서 벗어난 측면이 있었다. 이번 조치는 그렇게 왜곡된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

출발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조치라고 본다. 7.1 조치 이후 인플레가 상당히 진행됐다. 2002년 당시와 비교해 보면 국정가격으로 보더라도 물가가 300~500% 이상 올랐다. 그런데다가 시장물가가 상당히 요동치고 있다. 특히 2007년부터 시장 통제를 하면서 파동의 폭이 굉장히 컸다. 공산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식량가격 파동이 가장 심하다. 그러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당국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북한 주민의 2/3 정도는 국가가 배급을 못해주는 미공급 대상이다. 결국 자기가 벌어서 소비재와 식량을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물가가 자꾸 요동치면서 주민들의 경제 활동이 불안해졌고, 결국 체제 위기적 요소가 됐다. 따라서 화폐 개혁은 경제적 이유로 시작했지만 정치·사회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올해 북한 당국이 잇달아 벌인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도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1980년대 경제력으로 회복하기 위한 '경제 정책'이기도 했지만, 사회 기강을 확립하겠다는 의도도 컸다고 본다.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결속력 이완을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이번 화폐 개혁도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안을 잡겠다는 것이다. 빈부격차 해소에는 당·정 중간 관료들의 부패를 뿌리 뽑는 게 중요하다. 북한 사회의 근간인 그 사람들이 오히려 부정부패에 몰두하면서 하층민들에게 불만이 생겼다.

화폐 개혁으로 교환할 수 있는 상한선이 10만 원이라는데, 그 때문에 타격을 받는 것은 중간층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인구 50%의 밑바닥 계층은 돈을 가지고 있어 봤자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중간 계층의 한 달 생활비가 10~15만원 정도이고, 인구 10% 이내 상류층은 100만 원 이상 소비지출을 하기 때문에, 화폐 개혁을 하면 결국 이 사람들이 된서리를 맞는다.

따라서 그동안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싹튼 밑바닥 계층의 체제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상당히 자본주의화된 계층의 생활 방식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다.

이번 조치 때문에 물가가 당장 상승하진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급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엄청난 물가 상승이 있을 것으로 본다. 돈 가진 사람들이 된서리를 맞았으니 상업 활동이나 유통이 침체되고, 거기에 공급 부족까지 겹치면 중장기적으로 초인플레이션이 오는 것이다.

결국 대외 경제 여건의 개선 여부가 화폐 개혁 성공의 관건인데, 북한의 대외 경제는 역시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중심이다. 원자바오 총리의 10월 방북 이후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변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의 지원이 꽤 되고, 원 총리가 또 다른 적극적 조치를 해줬다면 부족한 재화가 흘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외 경제 환경이 좋아져서 재화가 흘러 들어간다 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상인자본이나 시장경제를 억압하는 정책을 계속 한다면 전망이 밝지는 않다.

개혁·개방은 결국 후계체제 확립 이후에나 적극적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으니까 2012년 이후에나 본격 추진될 수 있을 것 같고, 그때까지는 우선 북한 체제의 정상화가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이번 조치는 결론적으로 체제정상화를 위한 것이다. 시장이 너무 커버려서 당국의 경제 정책이 무시되고 계획경제도 어렵게 만든 상황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 것이다.

합해서 '250일 전투'를 하면서 시장경제가 위축되고 있었는데, 이번 화폐 개혁 때문에 시장경제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한국은행 통계로 북한의 경기가 플러스 성장으로 나왔던 것은 시장경제의 활성화 때문이었는데, 시장경제를 위축시킨다면 거시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
물론 그렇다고 해서 7.1 조치에서 시작된 경제 분권화 조치가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가가 기업소를 통제하는 가장 큰 힘은 자재 조달인데, 지금도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분권화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계획경제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조치인데, 현실은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피해를 받는 (중간층 이상) 주민들의 반발이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반발을 관리하는 게 북한 당국의 중요한 과제다. 화폐 개혁을 하면서 인민보안성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했다는 보도가 있던데, 사실이라면 반발을 우려해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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