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벌었겠네요."
하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집도 못 지었는걸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돈 번 표시로 흔히들 새 집을 짓는다. 하지만 그는 그 흔한 집도 못 지었단다.
"그럼 그 돈 다 무엇 했어요?"
하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애들 공부 시켰어요."
그가 8년간 한 일은 아들 4형제를 모두 고등학교에 보낸 거였다.
그는 이싼 지방 우돈 시에서 상당히 떨어진 시골 출신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우돈 시내에 자취방을 얻어놓고 아이들이 시골중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하나 하나 자취방으로 올려 보냈다. 1인당 1년 교육비로 약 10만 바트(약 350만원)가 들어갔다.
둘은 이미 졸업했다. 큰아들은 벌써 26살인데 핸드폰 가게에서 일하고, 둘째는 전기 공장에 취직하여 제 밥벌이는 한다. 하지만 셋째와 넷째는 아직도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는 자식들에게 할 만큼은 했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자식 도리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한 달 전에 뇌혈관이 터져 입원했다. 인공호흡기 신세를 지고 있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그는 마음이 급하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귀국하려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법체류자로 퇴직금 600만원을 받지 못한 상태다.
▲ ⓒ한윤수 |
내가 물었다.
"언제 가려고요?"
"오늘요."
"엥? 오늘?"
"예. 오늘 저녁 9시 반 비행기로요."
"그럼 퇴직금 못 받는데."
"정말 못 받아요?"
"받을 확률은 10프로도 안되요. 그래도 괜찮아요?"
"예, 못 받아도 할 수 없어요."
"한 달 전에 아버지가 입원했다면서요! 그 동안 한 달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왜 이제서야 찾아왔어요?"
"도와주는 데가 있는지 몰랐거든요."
"그럼 오늘은 어떻게 왔어요?"
"곤지암 사는 친구가 가르쳐주었어요. 자기도 도움 받았다며 발안으로 가보라고."
나는 *한 달만 늦게 가라, 아니 20일만 있다 가라, 6백만 원이 아깝지도 않냐고 설득해보았지만 그는 요지부동으로 오늘 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자원봉사자가 감탄했다.
"6백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아버지 임종을 보기 위해서 포기하다니 효성이 지극하네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효성도 있지만 태국사람은 한 번 생각이 콕 박히면, 그 생각에 잡혀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 간다면 가는 것이다.
말려보아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며 흘낏 그의 볼에 패인 주름을 보는 순간, 이 사람 8년 동안 무척 고독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떠올랐다.
그가 퇴직금을 포기하고 오늘 귀국하는 것은 효성보다도, 태국인 특유의 강박관념보다도, 8년간의 고독 때문이라는 것이 내 가슴에 와 박힌 것이다.
그는 8년 동안 율리시즈처럼 고독하게 해외를 떠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몸서리치는 고독을 끝장내려고 귀국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로 퇴직금 받기 : 불법체류자들은 회사에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므로 퇴직금 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퇴직금을 받으려면 증인을 세워서라도 자신이 그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그 회사의 직원이 5명 이상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한 달만 늦게 가라 :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확정 받으려면 약 한 달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노동부에 진정서를 보내고 출석하는 데 약 14일이 걸린다. 여기서 끝나면 좋다. 하지만 만일 회사 측에서 출석하지 않거나 특별히 대질 심문까지 해야 할 경우라면 14일 정도가 더 소요되므로 합해서 한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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