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고 생각하면 초당적 협력에 나서야
우선적으로 위기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라는 말이 넘쳐나지만, 과연 위기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진짜 어려운 상황이라 느끼면, 말과 행동이 신중해진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무책임한 말들이 왜 이토록 넘쳐나는가? 그것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근거 없는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는가? 한반도 정세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중요한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으로 위기를 인식하면, 해결의 수단과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위기국면에서 지혜를 모은다. 초당적 협력이 자연스럽게 가동된다. 서독에서 1982년 보수적인 기민당이 집권했을 때, 헬무트 콜 총리는 동방정책의 상징이며 사민당 총재인 빌리 브란트를 공개적으로 만나 지혜를 구했다. 서독의 대동독 정책에서 초당적 협력의 역사는 배울 만하다. 미국도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면 항상 초당적 협력을 추진한다. 1998년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했을 때, 혹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출구를 모색할 때, 초당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해법을 찾았다.
▲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북핵 문제의 적절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회동한 박 대통령(가운데)과 황우여(왼쪽)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오른쪽)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
그런 점에서 인수위에서 시도한 북핵문제에 대한 초당적 협력은 잘한 일이다. 다만 선진국들의 초당적 협력은 단순히 만남의 모양이 아니라,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북핵문제의 해법을 둘러싸고 의견차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협력의 출발이다. 우선적으로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가능한 수준에서 차이를 줄이는 노력, 즉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 정치사에서 초당적 협력의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지혜를 모으고,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문화된 '남북관계발전법'을 실질적으로 가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2005년 여야가 초당적으로 합의해서 만든 법이 아닌가? 여야가 함께 남북관계 발전을 고민하고, 토론하고, 발전계획을 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정부의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국회가 초당적으로 중장기적인 남북관계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일, 그것이 초당적 협력의 시작이다.
말의 관리가 필요
둘째, 말의 관리가 필요하다. 외교는 말로 시작하고 말로 끝난다. 대북정책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 주는 메시지와 국내정치적 메시지가 충돌하는 경우다. 이명박 정부처럼 남북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말이 험악해 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태도에 비판적인 다수의 국민들을 생각하면, 그것이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고, 국내정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적 언술은 일반적으로 감정을 억제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다. 외교정책에서의 말은 선거 국면에서의 말과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정치와 외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새 정부가 발표한 외교·안보 분야의 국정과제 내용에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여전히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선제타격과 같은 용어는 작전계획으로 검토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튼튼한 안보는 행동으로 뒷받침되는 것이지,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다.
말의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부처마다 말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면 국민에게도 상대에게도 신뢰를 주기 어렵다. 새 정부에서 정보실패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분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책임감을 갖고 정보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부처 내의 정보소통과 협력·조정 체계가 가동되어야 한다.
정부안에서 말이 일관성이 있으려면, 전략적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목표를 공유해야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전략이 있어야, 일상의 부처 간 조정이 가능해진다.
셋째, 정책은 능동적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대북 정책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북한이 결정한다는 말인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7.4 남북공동성명부터 2007년 10.4 합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의 중요한 성과들은 북한이 하자고 해서 한 것이 아니다. 모두 우리 정부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설득하고, 협상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이다.
대북정책이 북한의 태도에 종속되는 수동적 정책이 되면, 다양한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기 어렵다. 대북정책을 포함해서 외교 정책은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역시 능동적인 정책개입이 아니라, 수동적이라면 도발-제재-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어렵다.
내부의 신뢰를 얻는 일부터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관건이다. 신중하게 능동적으로 대북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과제도 있고, 단기적으로 우선 추진해야 할 일들도 적지 않다. 특히 쟁점 현안에 관한 기본 입장을 우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금강산 관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산가족 상봉을 어떻게 추진할지, 5.24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현안에 관한 입장은 중장기적인 전략이 있어야 정리가 가능하다. 현재의 정책이 미래의 비전과 충돌하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리고 대북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의 신뢰다. 외교 안보 통일 부처의 조정과 협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관한 철학과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대북정책은 외교정책과 더불어, 대통령 아젠다이다. 대통령의 생각이 분명하면, 제도가 없어도 정부 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선은 불가피하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도 중요하다. 서로 다른 의견의 차이를 존중하며, 대화와 소통으로 합의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면 정책에 관한 신뢰는 조성된다. 우리 내부의 신뢰가 정책 상대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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