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미국의 천연자원 보호 협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NRDC)는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냈다.〈한반도 핵사용 시나리오(Nuclear Use Scenarios on the Korean Peninsula)〉보고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하나는 미국이 '벙커 버스터' 핵폭탄을 북한의 군사 요충지에 투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북한이 서울 용산에 핵공격을 가했을 경우다. 북서풍이 부는 가을에 미국이 평양에서 북서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북창 공군 기지를 400킬로톤의 핵폭탄으로 공격하면 40만 명, 1.2메가톤의 핵폭탄은 110만 명의 사망자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됐다.
북한이 서울을 핵공격할 경우엔 피해 규모가 더욱 끔찍하다. NRDC는 북한이 이북에까지 방사능 낙진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15킬로톤의 핵폭탄을 북서풍이 부는 날에 국방부와 합참, 주한미군 사령부와 한미연합사가 있는 용산의 삼각지에 투하할 수 있다고 지목했다. 용산 상공 500미터에서 폭발할 경우 예상 사망자는 62만 명, 100미터 상공에서 터지면 84만 명, 지표면에서 터지면 125만 명까지 나올 것으로 봤다. 이러한 피해 규모는 핵폭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치이고, 여기에 도시가스 저장소와 주유소 화재, 건축물 폭파로 인한 잔해와 유리 파편으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까지 고려하면, 그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NRDC는 분석했다.
북이든, 남이든 핵이 떨어지는 순간 '코리아 아마겟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 "자위적 핵억제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강변한다. 한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핵무장론부터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및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그리고 선제타격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백가쟁명식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론은 아직까지 정책결정자들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아니다. 이에 반해 북핵 사용 징후시 선제타격론은 정부와 군당국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 현실성과 타당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북핵 불안감'에 편승해 군당국의 공식 정책으로 굳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 국방부는 북한 핵실험 다음날인 지난 13일 핵위협에 대비해 필요시 북한 전역 어디라도 즉각 타격할 수 있는 순항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4월 국방부가 공개한 한국군의 순항미사일 ⓒ뉴시스 |
선제타격론 공식화하는 한국 정부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초읽기에 들어간 2월 6일 정승조 합참의장은 국회에 출석해 "북한이 도발하거나 핵공격 징후가 발견됐을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전쟁을 감수하고라도 선제타격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적이 (핵무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징후가 확실히 보일 때는 맞고 전쟁하는 것보다는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선제타격할 것"이라며,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발표 다음날인 2012년 10월 8일에도 "전시에 북한의 핵사용 임박 징후가 포착되면 선제타격까지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2월 12일에도 이러한 군당국의 입장은 거듭 확인됐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핵무기를 투발했을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전에 파기시키는 게 최선의 대안"이라며 선제타격 의사를 피력했다. 그는 다만 "핵무기 징후를 파악하는 게 선결돼야 한다"며 "자체적으로 하더라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위치를 탐지하고 합의하기까지 한미협의체의 협의가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간에도 본격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제3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 참석차 워싱턴 D.C를 방문한 임관빈 국방부 정책실장은 2월 23일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확실한 징후가 있으면 자위권 차원에서 당연히 선제조치해야 한다"며 선제타격론을 거듭 제기하면서 "이는 국제법적으로 인정된 것으로, 미국도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선제타격론을 존중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선제타격 시 중국군까지 개입되는 전면전의 우려가 크고 미군도 참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반면에, 미국 내에서는 대규모의 병력 투입을 요하는 전쟁을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핵 사용 징후시 선제타격론'이 공식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탐지-분석-결심-타격'으로 이어지는 '킬 체인(kill chain)'이 주목받고 있다. '킬 체인'은 북한의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조기에 제압하기 위해 추진되어온 한미 간 '맞춤형 억제 전략'의 일환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킬 체인' 구축을 2017년에서 2년 정도 앞당기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북한 전역을 사거리에 둔 지대지, 공대지, 함대지 미사일의 개발·배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제타격론은 북핵 위협 대처에 현실적이고도 타당한 전략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핵이 떨어지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런 끔찍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북핵 발사 징후시 선제타격을 통해 수도권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결의는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수반되는 문제 역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국제법적인 문제가 있다. 유엔 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할 때, 본 헌장의 어떤 조항도 (회원국의) 고유한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무력 공격을 당한 당사국이 개별적으로나 동맹국과 함께 응징에 나서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인정받는 '자위권'에 해당된다. 문제는 상대방의 무력 공격이 '임박하다(imminent)'고 판단될 때이다. 적의 무력 공격, 특히 핵 공격은 가공할 피해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사후 대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적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주관성이 개입되어 오해와 오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이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 당시 국무부 법률 자문관으로 있었던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는 국제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선제공격의 조건으로 "필요의 개념"을 제시했다. 적의 공격이 "믿을 만하고 임박한 위협(a credible, imminent threat)이어야 하며 평화적 방법이 소진된 이후에" 자위적 선제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이미 핵과 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수시로 핵 공격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는 핵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실제 공격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미사일에 핵탄두가 탑재되어 있는지를 사전에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한국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평화적 방법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선제타격론이 핵전쟁 위험 높일 수도
남한이 선제타격론을 공식화해 전력 증강과 경계 태세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경우 북한의 맞대응과 맞물려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한-미-일에게 북핵은 유사시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북한에게 "핵 억제력"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선제공격론을 공식화하자 북한이 선제공격 권리는 미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발한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역시 선제타격론을 들고 나올 경우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미동맹의 선제타격론에 맞서 취하게 될 유력한 경로는 2차, 3차 핵 공격 능력의 확보가 될 것이다. 핵무기 보유고를 늘리고 여러 곳에 은폐·분산시키며 이동식 발사대를 대거 배치하면 핵미사일의 생존율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핵무기 개발용으로 본격 전환하고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험용 경수로의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면 연간 5~10개 정도의 추가적인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국토의 약 80%가 산악 지형이고 수천 개의 지하 요새가 있기 때문에 핵미사일을 은폐·분산시키기에도 대단히 용이하다. 아울러 남한 전역을 사거리에 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핵탄두 탑재, 고체 연료 및 이동식 발사대 사용이 장거리 미사일보다 용이하다.
이는 북한이 '핵 억제 이론'에서 필수적이라는 2차, 3차 공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남한이나 미국이 선제타격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일부를 파괴하는데 성공하더라도 북한의 핵보복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고 증강을 저지하기 위해 지상에 노출된 영변 핵시설(우라늄 농축 공장, 실험용 경수로, 재처리 시설 등)을 공습하면 '한반도판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북한이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선제타격 징후가 포착되면 핵미사일을 즉시 발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상대방의 선제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냉전 시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군비경쟁의 요체이자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만약 북한이 이런 조치를 취하면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양측의 '더 빨리'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상대방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고 이는 인간의 오판과 오인의 위험을 수반하게 된다. 미국과 소련에서 다반사로 일어났듯이 레이더 등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론과 남한의 '선제타격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일상화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코리아 미사일 위기' 막아야
전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로지 (적의) 무기가 실제로 발사되는 상황만이 (우리의) 국가안보에 명백한 도전이라고 간주되는 세계에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 필요하다면 쿠바나 소련에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케네디 행정부의 선제공격론이 소련의 흐루쇼프에게 어느 정도의 심리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실 끝에 매달린 인류의 운명'을 구한 것은 양측의 양보와 타협이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남한도 미사일 전력 증강과 함께 선제타격론을 공식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코리아 미사일 위기'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상호간의 확증파괴 전력을 갖춘 남북한이 전면전에 돌입하면 '민족공동체의 공멸'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전면전 위기만으로도 대외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하여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의 예방은 더더욱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프레시안(최형락) |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확실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에 신뢰를 쌓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도 밝혔다. 그러나 선제타격론은 억지(혹은 억제)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북한보다 10~20배의 군사비를 쓰고 있고 세계 최강 미국의 확고한 안보 공약을 받고 있는 한국은 이미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점에 주목해 이명박 정부의 선제타격론을 비롯한 국방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억제 이론 자체가 100% 완벽한 것은 아니더라도 선제공격론보다 더 안전한 안보전략이라는 점은 세계의 숱한 분쟁사가 입증해주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키워드인 '신뢰'는 선제타격론과 양립할 수 없다. 북한이 먼저 핵공격을 가해올 수 있다는 가정에 바탕을 둔 선제타격론은 최악의 불신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호하면서도 절제력 있는 대북 억지 전략과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을 병행하는 것이야말로 당분간 북핵 위협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이다. 신뢰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최악의 상황, 즉 전쟁을 예방하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MB 정부의 위험한 유산인 선제타격론을 전면 재검토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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