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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정치'를 말하자 '헌법 질서'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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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정치'를 말하자 '헌법 질서'는 무너졌다

[언론법 재논의하라] 방송법안 사건과 헌법 질서

지난 10월 29일 헌법재판소가 신문법·방송법 등 미디어 법을 두고 처리 과정의 위헌·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무효 확인 청구는 기각했다. 이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야당, 학계, 시민사회에서는 국회에서 재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일 방송법을 공포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시행령을 제정하는 등 시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보적 중견 언론인의 모임인 '언론광장'은 '미디어 법 재논의하라' 연재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판결의 의미를 따져보고 향후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방송과 헌법 질서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국민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자유뿐만 아니라 방송이, 자유롭게 보도를 하고 뉴스를 전달하며 논평을 하고 국민에게 국정 정보를 포함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도 보호한다. 물론 교양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편성하여 송출하는 행위도 방송의 중요한 영역에 속한다.

개인이 행사하는 의사 표현의 자유와 비교할 때, 방송을 통한 의사 표현은 그 수단이 다르고 공동체의 여론 형성에 미치는 파급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방송은 또한 공공재인 제한된 주파수를 이용한다. 이 때문에 헌법과 방송법은 방송에게 방송의 자유라는 기본권 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정성을 강조하며, 방송의 공적 책임을 부과한다.

방송의 자유는 정권으로부터의 자유,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방송의 소유권과 경영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 본질적 내용으로 한다. 방송의 편성권이 방송의 자유의 핵심 내용으로 자리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도출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방송은커녕 주식회사에서조차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전근대적 양상이 아직도 기업 경영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전근대적 경영 행태는 방송에도 상당 부분 전이되고 있다. 방송사의 일개 사장이 방송의 편성을 쥐락펴락 하는 작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학설과 판례는 방송의 자유를 가리켜 프로그램 편성의 자유(Programmgestaltungsfreiheit)라고 말한다. 방송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방송의 독립을 보장하여야 한다. 방송의 독립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방송의 소유권과 경영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다. 이러한 독립을 확보하지 못하면 방송의 자유는 종이 위의 자유에 불과하게 된다.

방송법 제4조 제1항은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헌법재판소식 황당한 해석 논리에 따라 풀어보면,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방송법이라는 법률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헌법상'의 자유와 독립이 아니라 '법률상'의 자유와 독립이다. 그러나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이미 헌법 제21조의 언론·출판의 자유의 해석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방송법은 그 당연한 의미 내용을 확인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최소한의 존립 이유이기도 하다. 방송이 사실을 왜곡·은폐하는 일을 일삼는 경우 방송의 공정성은 확보될 수 없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관련하여 방송법 제5조 제1항은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가리킨다. 방송이 정권이나 기득권자의 이익을 지향하게 되면, 그러한 행위는 방송의 자기부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방송은 민주주의의 실현과 발전에 기여하는 기능과 책무를 수행한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는 국민의 실질적 자유와 평등이고, 그 지배 형태는 국민의 의사에 따른 지배이다. 방송은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국가권력의 행사를 감시·비판·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방송법의 개정과 다수결원칙

방송이 헌법 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와 같은 비중 때문에 입법자는 방송법의 개정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방송법의 개정은 방송이 헌법 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그와 반대 방향으로의 개정은 헌법 질서와 충돌할 개연성을 높이게 된다.

국회는 입법기관이기 때문에 방송법을 포함한 모든 법률을 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가 행사하는 입법권은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건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내용의 법률 조항이라도 만들거나 개정하거나 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입법권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과 실체적 정당성이다. 절차적 정당성이란 헌법과 국회법 등이 규정하는 의사절차에 관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실체적 정당성이란 법률의 내용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방식 중 최선의 것은 합의의 원리이다. 여당과 야당이 충분한 토론과 설득 과정을 거쳐 타협의 산물로 나온 결과를 이의 없이 통과시키는 것이다. 국회법 제112조 제3항이 "의장은 안건에 대한 이의의 유무를 물어서 이의가 없다고 인정한 때에는 가결되었음을 선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합의의 원리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법률의 개정이 국민의 기본권, 헌법 질서, 민주주의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 클수록 다수결의 방식보다는 합의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한정 합의의 원리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다수결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수결이란 단순다수결을 말한다(헌법 제49조와 국회법 제109조가 규정하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헌법과 국회법은 안건의 내용이 중대할수록 단순다수결을 지양하고, 가중다수결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개정안(헌법 제130조 제1항), 국회의원의 제명의결(헌법 제64조 제3항), 탄핵소추의결(헌법 제65조 제2항)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우리가 다수결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다수결은 단순히 숫자의 우세를 가리는 기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가 정당한 다수가 되기 위해서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소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국민에게 명확히 알리고 그 의견을 수렴하는 다수이어야 한다.

▲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의 호위 속에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이윤성 부의장. ⓒ프레시안

방송법안의 처리, 재투표, 일사부재의 원칙

지난 7월 22일 국회는 이윤성 부의장의 사회로 방송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사회자의 투표 종결 선언 후 전광판에는 재석의원이 145명(당시 재적의원은 294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윤성은 곧바로 "재석의원이 부족해 표결 불성립되었으므로 다시 투표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재투표가 실시된 후, 방송법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 것처럼, 방송법안은 1차 투표시 이미 부결된 것이다. 그 근거는 일반의결정족수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49조와 국회법 제109조이다. 헌법 제49조에 따르면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의사정족수는 국회법 제73조가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안이라는 하나의 법률안이 일반의결정족수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요건을 채워야 한다. 하나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이고, 다른 하나는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다. 그런데 방송법안은 1차 투표에서 첫 번째 요건인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을 채우지 못해서 부결된 것이다.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국회법 제92조). 즉, 부결된 법률안을 같은 회기 중에 (설사 차수를 바꾸더라도)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면 그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 부결된 법률안은 같은 회기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재투표에 붙이지도 못한다(재투표에 붙이지 못한다는 명시적 조항이 없지 않느냐는 얼간이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부의장 이윤성은 부결된 방송법안을 재투표에 붙인 다음 가결을 선포하였고, 국회의장 김형오는 이 법안을 정부에 이송하였으며,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공포하였다. 그러자 방송통신위원장은 즉각 방송 사업자 선정 신청 작업에 착수할 것임을 밝혔다. 모든 것이 군의 작전명령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여기에서 일사부재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회의체의 의사 결정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회의체에 상정되는 안건을 표결에 붙인 결과 부결로 나타나면 같은 회기 중에는 그것을 다시 안건으로 상정하지 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일단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몇 번이고 표결을 붙일 수 있도록 한다면 그 회의체는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회의체 구성원의 권리 또는 권한(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은 권리가 아니라 권한이다. 이 때문에 권리와는 달리 그것은 포기할 수도 없다)이 침해될 수 있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또한 안건 확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체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인간의 경험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근로자 해고의 경우 법원은 징계 사유를 사전에 설명하고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경우, 해고 사유가 존재했는지를 묻지 않고,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해고무효판결을 선고한다. 이는 공무원 징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주주총회의 결의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했다는 이유로 주주총회결의 무효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법원은 예외 없이 무효확인판결을 선고한다. 상법에 일사부재의 원칙에 관한 명문의 법조항이 없는데도 법원은 그렇게 판결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국회의 의사 절차에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국회의 의결에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및 공신력을 부여한다. 이 원칙은 또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만약 일사부재의 원칙이 파괴되면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불법의 소굴로 전락하게 된다. 일사부재의 원칙이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법원칙은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을 때 비로소 법원칙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명시적 법조항이 없더라도 법원칙으로서의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시적 조항이 없을 경우 이를 가리켜 불문의 법원칙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회의공개의 원칙(헌법 제50조), 다수결원칙(헌법 제49조)과 함께 국회의 의사 절차를 기속하고 지탱하는 3대원칙이다. 국회에서의 법률안 처리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하는 경우, 그것은 헌법 질서에 위해를 가하는 작용을 한다.

▲ 신문법·방송법 등 미디어법을 둔 공개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모습. ⓒ뉴시스

방송법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방송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이 헌법재판소에 청구되자 헌재는 상당히 요란스럽게 나왔다. TF 팀을 구성하고, 이례적으로 직권증거조사까지 실시했다. 방송법안이 부결되었는가,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투표에 붙인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을 침해한 것인가, 방송법안 투표에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는 대리 투표가 있었는가, 대리 투표가 있었을 때 해당 법안에 대한 투표 행위의 효력은 어떻게 되는가 정도가 핵심 쟁점이었고, 그러한 쟁점은 법리상 난해하지도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방송법안 투표는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다, 재투표에 붙인 것은 일사부재의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는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방송법안 가결선포행위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은 인용하고, 가결선포행위가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는 주장은 기각했다.

여기에서 생기는 의문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 어느 정도의 절차상의 하자가 있어야 법률안 가결선포행위가 무효임을 확인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 의사절차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제49조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제50조에서 '회의공개의 원칙'을 각 선언하고 있으므로, 결국 법률안의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은 입법절차상 위 헌법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하자가 있었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헌법전문가들도 헛갈리게 만드는 이 말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법 제61조 1항에 따르면 권한쟁의심판 청구의 사유로는 피청구인의 처분 또는 부작위가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하여 부여받은 청구인의 권한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현저한 위험이 있어야 한다. 침해된 권한이 법률상의 권한일지라도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재의 태도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무효 확인은 하지 못한다. 헌재는 이런 반론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법이 법률상의 권한침해의 경우에도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심판청구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둘째, 헌법재판소의 태도에 따르면 방송법안 가결선포행위가 다수결의 원칙이나 회의공개의 원칙과 같은 헌법상의 원칙을 침해했다면 무효확인을 해 줬을 것이지만, 일사부재의 원칙이라는 국회법상의 원칙을 침해했기 때문에 무효확인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던지는 질문은 헌법재판관들은 일사부재의 원칙을 헌법상의 원칙이 아니라 법률상의 원칙이라고 생각하는가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철저하게 법실증주의적 해석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하나의 법원칙은 전체의 법질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그 법적 성격이 결정되어야 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국회법 제92조가 규정하고 있지만, 설사 국회법 조항이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인정되는 (불문의) 헌법원칙이다. 입법론적으로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국회법이 아니라 헌법에 규정해 놓는 것이 옳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법의식 수준이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헌법재판관들이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초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회의 공개의 원칙을, 일사부재의 원칙과 비교해 보자. 두 원칙의 법적 비중을 가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법적 비중이 높은가? 실제로 헌재는 국회가 본회의를 비공개로 하고 법률안을 처리했다는 이유로 접수된 권한쟁의심판청구에 대해 그것은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고, 그러한 법률안 가결선포행위는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또한 헌재는 방송법안 처리절차에 대리투표라는 범죄행위가 개입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범죄 행위가 개입된 법률안 가결선포행위는 무효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건 달리 말하면 국회의원들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시켜 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헌법재판소 덕분에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면책특권뿐만 아니라 법죄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특권도 누리게 되었다.

헌재는 이렇게 항변한다. "법안의 효력은 유효하지만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헌재의 결정도 유효하다. 앞으로 국회의장이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처리해야 할 문제"다. 재판관은 판결문으로 말하는 것이다. 재판 결과의 의미를 별도의 서면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 재판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의 의미

헌재는 방송법안을 재투표에 붙인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고, 결국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보았다. 헌재는 또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가리켜 "국회입법권의 근본적 구성요소"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국회입법권의 의미에 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필자가 대신 설명하기로 한다.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입법권이란 법률제정권을 말한다. 입법권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법률안 발의권, 심의권, 표결권, 의결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질적 구성요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중의 어느 하나라도 침해되면 그것은 입법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헌법적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헌재재판관들은 의사공개의 원칙, 다수결원칙, 일사부재의 원칙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게을리 했다. 이 부분 역시 대신 설명해 보기로 한다. 국회의 의사 절차를 기속하는 3대 원칙은 바로 국회의 입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입법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헌재재판관들은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은 국회입법권의 근본적 구성요소라는 표현을 쓰면서 과연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효력

방송법안에 대한 결정과 관련하여 헌재와 헌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헌법재판소법 제67조 제1항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는 것이다. 즉, 헌재가 방송법안이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이를 재투표에 부쳐 가결선포한 것은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피청구인을 기속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기속력의 실제적 힘이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기속력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헌재의 결정에 피청구인이 묶이지 않으려고 할 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헌재 결정 이후 국회의장이나 한나라당이나 전투는 끝났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헌재가 국회의장이 야당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확인한 결정이 기속력을 가진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기회는 하나 있다. 그것은 국회의장 김형오가 헌재가 결정문에서 확인한 방송법안 처리절차상의 하자를 제거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때, 이를 이유로(즉, 부작위를 이유로) 야당의원들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면 그 청구를 인용하고, 방송법안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국회의장은 방송법안 처리와 관련하여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 즉, 입법권을 최일선에서 수호해야 할 자가 최선두에서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다. 국회의장은 이미 스스로 국회의장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법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점이다. 국회의장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밝혔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방송법안과 관련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공적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헌법비전문가들을 법조인의 자격이 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관으로 충원하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헌법에 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관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전문성을 채우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내린 결정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야간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계속적용명령을 내린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정의의 원칙을 강조하는 형벌법규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적용하라는 명령을 붙였기 때문이다. 헌재가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헌법불합치결정은 본질적으로 위헌결정이다. 계속적용명령은 무엇을 말하는가? 위헌법률을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라는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판사들은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것은 헌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법관의 심판의 독립을 건드렸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법률이란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 법률을 가리킨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헌재가 형벌법규를 위헌법률이라고 선언해 놓고, 그 법률에 따라 피고인을 처벌하라고 하면 법원의 판사들은 헌재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헌법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수도의 위치는 관습헌법이므로, 수도의 위치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한 말(굳이 이론이라는 말도 붙이지 않겠다!)은 두고두고 비아냥거리가 되고 있다.

헌재가 하는 일은 무엇이 헌법인가(때로는 무엇이 법률인가)를 말하는 것이지, 무엇이 정치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헌재가 헌법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하는 순간에 정치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헌법질서는 와해의 수순을 밟는 것이다.

(이 연재는 '언론광장' 기획으로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 <대자보>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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