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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한윤수의 '오랑캐꽃']<151>

충북 음성에 가있는 캄보디아인 놀린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글자 하나 안 고치고 그대로 여기 싣는다.

제목 : 인사요.

안녕하세요?
난 놀린 이고 캄보디아 사람이예요
네가(내가) 2009 년 11월 6일 고항에 가요

안녕히 가세요?(안녕히 계세요.)
그런데 한국사람(한국 분) 들이 캄보디아 에 가면(오면) 나 한테 등력 주게요(들려주세요)

연락처 Tel: 855-17-26 98 96
855-15-35 44 66
Email: mao_nolin2000@yahoo.com

놀린! 그는 2006년 11월 7일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프레스 공으로 일했다. 당시는 산업연수생이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시절이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10월 20일. 그가 한국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무렵이다. 그는 산재가 자주 발생하는 위험한 프레스 공장을 떠나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알아보니 그는 이미 재계약서에 싸인한 뒤였다. 주눅 든 산업연수생이 흔히 그러하듯, 사장님이 싸인하라니까 뭔지 내용도 모르고 싸인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었다.
"이미 싸인해서 다른 회사 못 가요. 1년 더 일해야 해요."
"괜찮아요. 1년 더 일하죠 뭐."
의외였다. 밝은 표정으로 말했으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낙망하여 얼굴이 어두워질 텐데 그는 전혀 안 그랬다. 매사를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 한복을 입은 놀린ⓒ한윤수

두 번째 만난 것은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08년 6월 7일. 프레스 공장이 경영이 어려워져 그가 졸지에 퇴직했고 퇴직금을 받아달라고 온 것이다.
산업연수생이 감히 퇴직금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7년 8월 30일 대법원에서 "산업연수생에게도 퇴직금을 주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놀린은 그 이후에 퇴직했으므로 당연히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산업연수생이 무슨 퇴직금?"
하며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두 달 동안 회사와 씨름하여 퇴직금 125만원을 받아 주었다.
놀린은 무척 고마워해서 그 답례로 캄보디아 말로 된 *직종 분류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엘리베이터 공장에 취직이 되어 충북 음성으로 내려갔다. 그리고선 소식이 끊겼다.
그런데 그가 귀국한다니? 혹시 회사에서 재입국을 안 시켜줘서 쓸쓸히 귀국하는 건 아닐까?
전화를 걸었다.
"놀린? 나 발안센터 목사님."
"아, 목사님."
"재입국 안 해요?"
"예. 재입국할 수 있지만 안 해요,"
"왜?"
"지금 캄보디아 일자리 많아요. 나 가면 한국 회사에서 통역할 수 있어요."
짐작이 갔다. 지금 캄보디아에는 한국 회사가 대거 들어가고 있으므로 통역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동안 한국말 많이 늘었어요?"
"예. 일요일마다 버스 타고 안산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말 공부했어요."
"그러면 많이 늘었겠네. 통역할 수 있겠네."
"그럼요. 통역할 수 있어요."
나는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다.
"놀린은 착해서 복 많이 받을 거야."
"고마워요. 목사님. 캄보디아 오면 꼭 들리세요."
"그래요. 그 동안 한국에서 고생 많이 했는데 잘 가요."
"안녕히 가(계)세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희망을 잃지 않던 캄보디아인,
고향에 가선 부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직종 분류표 : 직장 이동을 원하는 외국인과 상담하기 위하여 우리 센터에서 각 나라 말로 만든 직종(職種) 분류표. 노동자가 무슨 일을 잘 하나를 알기 위하여 이 표를 보여주고 묻는다. "옛날 회사에서 무슨 일 했어요? 사출? 도금? 전자?"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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