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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요한 갈퉁과 이동복이 만났을 때

세계적인 평화학자와 '반공의 戰士', 한반도 문제로 설전

'평화학의 아버지'와 '반공 전사(戰士)'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요한 갈퉁 세계평화네트워크 소장과 북한민주화포럼의 이동복 대표가 맞부딪쳤다.

매봉통일연구소가 주최하고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실이 주관한 '독일통일 20년과 한반도 평화' 세미나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요한 갈퉁 소장은 평화 문제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답게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선보였다.

갈퉁 소장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1948년 제주 4.3 항쟁, 한국전쟁, 1980년 광주민중항쟁 등 우리 역사의 분기점이 됐던 사건들을 일별하며 해박한 지식도 자랑했다. 그러나 반공·냉전주의자들이 듣기엔 불편한 말 투성이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해"

▲ 요한 갈퉁 ⓒ프레시안

"한반도 갈등의 원인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있다.(…) 미국은 1812년 이후 어떤 전쟁에서도 무조건적 항복을 받아낸 적이 없었는데, 1953년 (휴전협정 당시) 그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패배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는 상태에서는 6자회담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지 의문이다. 미국은 싫어하는 나라를 만나지 않겠다는 정책 기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지속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이론을 믿지 않는다. 여기 붕괴 이론을 좋아하는 분이 있다면 (<미 제국의 붕괴>라는 자신의 저서를 가리키며) 이 책을 권해 드린다."

"미국 사람들은 세상을 선악의 관점에서 보길 좋아하는데 지도자들이 보수적 복음주의 기독교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 탈레반, 이란, 헤즈볼라, 하마스를 다 '악마'라고 하지만, 내가 엔지오 활동을 하면서 그 '악마'들과 대화해보니 말이 잘 통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왜곡되고 과장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남북의 체제 통일은 불가능하다. 연방제나 '느슨한 연방제'는 가능하다. 통일이 국경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될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 사람의 자유 왕래는 가능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좋은 출발을 했다.(…) 중국과 홍콩, 중국과 타이완이 일국양제를 택했듯 느슨한 연방제는 가능하다. DMZ(비무장지대)는 환경 보호구역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이나 (북미) 관계정상화 없이는 어떠한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 (…) 내가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6자회담 틀 내에서 북미 양자대화를 하고,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을 강력히 추진하자'고 할 것이다. 그것이 갈등의 뿌리를 없애는 길이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도 비판적 시각

그러면서 갈퉁 소장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내에서 읽었다는 <코리아헤럴드> 기사를 보여주며 각기 짤막한 코멘트를 해 나갔다.

우선 한국과 미국이 최근 완성했다는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 '작전계획 5029' 관련 기사를 보여주며 갈퉁은 "내 생각에는 그런 일(급변사태)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며 오히려 미국의 경제적 '급변사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맹국을 너무 과신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결의안에 한국이 공동 참여국으로 들어갔다는 기사에 대해 그는 "한국에 군사 독재가 있던 시절에는 미국이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비난이 가능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이중잣대'를 꼬집은 것이다.

또한 갈퉁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기사를 가리키며 "자기들(미국)의 입장은 바꾸지 않으면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지금 교착상태이긴 하지만 6자회담 관련국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복 "통일은 남한 제도 속으로 북한 동포 끌어들이는 것"

한나라당 의원이 주관하는 토론회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 계속 나오자 세미나가 열리는 의원회관 128호의 분위기는 편치 않았다. 잔뜩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모로 앉는 참가자도 있었다.

▲ 이동복 대표 ⓒ뉴시스
보다 못한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질의응답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질문이 아니라 코멘트를 하겠다"며 긴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 대표는 "갈퉁 교수가 최근 20년 동안 미국에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계 문제를 논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 말을 들으니 생각보다 더 지독하다는 느낌"이라며 "한반도 문제를 미국 때리기의 맥락에서만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60년 전 분단 당시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제화, 개방화, 서방과의 밀칙을 선택했고, 북은 공산주의 경제, 폐쇄, 소련과의 공존을 선택해 180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며 "당시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가 훨씬 앞섰지만 오늘날 북은 세계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고 자력으로 회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상당한 민주화를 이뤘으며 G20 정상회의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북한의 2300만 동포들이 바닥을 헤매는 걸 그대로 둬야 하느냐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 갈퉁 소장이 말을 이어 받으려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금은 내가 코멘트하는 시간"이라며 마이크를 끄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갈퉁은 남북이 서로 타협하는 형태의 귀결을 자꾸 말하는데, 통일은 남한에서 성공을 거둔 체제와 제도 속으로 북한 동포들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갈퉁의 한반도관(觀)과 굉장히 다른 것인데,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구제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는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음을 갈퉁은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한다.

갈퉁은 또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 쪽으로 간다고 했는데(…) 갈퉁이 긍정적으로 말한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남한 정부가 끊임없이 개혁·개방을 권유했지만 북은 완강히 거부했다. (…) 남북의 정세를 희망적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있지도 않은 일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문제다.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갈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대표가 '흡수통일'이란 말을 명시적으로 한 건 아니다. 그러나 김정일이라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갈 수 없으니 남한 체제로 흡수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됐다.

갈퉁 "北의 김정일 숭배나 南의 '돈' 숭배나…"

그러자 갈퉁 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나는 미국 때리기가 아니라 미 제국주의를 때리고 있다"며 "미국은 제국주의적 성향만 버리고, 군사적 개입(intervention)이 아니라 모범으로 세계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남북의 차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북한의 문제는 김정일 개인을 너무 숭배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그건 남한이 돈을 숭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동복 대표가) 지적한 부분에서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은, 남북의 갈등이 빈부의 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 쪽은 관계정상화가 됐는데(한-러, 한-중 관계정상화를 말함) 다른 한 쪽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북-미, 북-일 관계를 말함)이다. 그런 현실을 부인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통일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는 한국도 미국에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 번 정부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햇볕정책은 북한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그대로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제 변화할 의향이 있다."


이동복 대표는 갈퉁이 햇볕정책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질의응답이 끝나자마자 갈퉁 교수에게 따로 가서 한참 동안 무슨 얘기를 했다. 묘한 분위기의 세미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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