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지금 한국인들은 지옥에서 살고 있다. 정의나 사회원칙으로의 법이란 아예 설 자리가 없다.
29년 전 전두환 때다. 박정희 피살 사건을 다루던 대법원에서의 김재규 재판 때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자 전두환은 80년 5월 20일 대법원 앞에 탱크를 세우게 하고 선고공판을 열게 했다. 김재규에 대한 상고는 기각되었고 나흘 뒤 5월 24일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재심 청구 건은 법적으로 형 집행을 미루는 것이 관례였지만 소용없었다. 변호인들도 입회할 수 없었고 소수의견을 낸 대법원 판사는 보안대 고문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법이란 법은 모조리 총칼 찬 전두환 일당들에 의해서 유린됐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사실이다.
29년이 지난 오늘 또 사법침탈(司法侵奪)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두환 식도 아니다. 헌법재판소 정문 앞엔 탱크도 없었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보안대 서빙고 고문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할 현실은 분명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법현실은 거의 걸레가 됐다. 헌법을 지켜야만 할 헌법재판관들, 그들이 나서서 스스로 법란(法亂)을 초래했다. 왜? 무엇 때문일까?
그러나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지난 100년간 대한민국 고통의 역사가 여실하게 말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한국에는 길고 긴 역병(疫病)이 돌고 돌아 그 절정에서 이명박 집단이 등장했다고 나는 이미 <프레시안> 칼럼에서 얘기한 바 있다.
용산 학살사건에 대한 사법판결과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이 동일 항(項)에 놓여있다. 이처럼 국가 법기구의 직무유기는 사실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니다. 기실, 이런 사실 또한 전혀 낯설지도 않다.
지난 100년간의 세월동안에 구한말, 일제식민지시대, 전쟁, 분단, 군사독재시대를 지나는 동안 끈질긴 기득권 세력의 발호와 준동으로 인한 반정의(反正義)의 역사, 반국가, 반체제-나는 오늘같은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야말로 반정의의 역사, 반국가, 반체제 집단이라고 이들을 규정한다.-란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그래서 지난 20년 전부터 비로소 싹을 틔운 실낱같은 민주주의 가능성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고 국가 공동체의 정통성을 비로소 갖춰나갈 수 있었던 근거였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좌초의 위기에 빠졌고 제대로 싹도 키우지 못하게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기막힌 오늘 현실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헌법재판소 그들 존재 이유를 선명하게 자기부정하면서 그 기능과 역할을 그들 스스로 거의 정지시킨 자기모순의 결과가 오늘의 사태다.
설사 이렇게 저렇게 헌법재판소가 현실에서는 굴러간다고 해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명박은 "역사의 빛이 이명박을 어둠으로 내던지고 처박아 어둠 깊숙이 던져버렸다."고 나는 지난 칼럼에서 말했듯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빛이 헌법재판소를 어둠으로 내던지고 처박아 어둠 깊숙이 던져버렸다."고 나는 말한다. 이게 아주 극명(克明)한 '현실읽기'다.
이런 헌법재판소가 어둠에서 과연 기어나 나올 수가 있을까?
불가능이다. 재판관들의 판단은 오작동이고 그들 의식이 정상작동이 불능인 이유가 바로 그들 기득권 삶의 안일과 부패가 구조화, 중층화(重層化), 일상화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질러서 바로 말하겠다. 이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사태를 정확하게 청산하지 못한 죄, 그 죄상이 현실로 이어짐이고,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 등 반란군을 이후에도 정확하고 준엄하게 단죄하지 못한 죄, 그 혹독한 파급(波及)이 바로 오늘 현실이다. 역사란 한편으로는 이렇게 징그럽고 무섭다.
이는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 100년의 부패가 구조화, 중층화, 일상화된 오늘 현실의 반영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헌법재판소 판결이란 100여 년간 나라를 파먹고 또 파먹기만 하는, 오직 사리사욕에 눈먼 기득권 후안무치들의 100년의 행각 그 현실 결과다.
경찰, 검찰, 국세청, 국정원, 최고사법부까지. 온갖 국가 기관이 이명박 집단의 시녀가 됐고 권력기관들은 스스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자기들이 나서서 해체하면서까지 정치권력의 '시녀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젠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이명박 정권에 빌붙는 권력 추종의 하일라이트에서 오늘 판결처럼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있다.
이는 금권(金權)에 골수가 흐물흐물 녹아든, 참으로 한심한 몰골 그대로를 말함이다.
그렇다면, 100년 간 지탱해온 이들은 과연 누구들인가? 바로 이네들은 그저 금권의 이해관계로 이래저래 얽힌 잡종(雜種)의 '굶주린 집단'일 뿐이다. 이들 집단의 정체는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신자유주의도 아니며 자유민주주의는 더욱 아니며 법치주의는 가당치도 않다.
오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이 무정체성의 탐욕적인 금권추구에서 그들만의 이해관계가 합종연횡으로 맞아 떨어졌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의 역사가 마구 거꾸로 달려왔지만 그래도 슬퍼하지는 말자.
차라리 이들 집단의 정체가 이번 기회에 또 한번 일목요연하게 드러났음을 다행으로 여기자. 그래서 과연 어떤 누가 민(民)의 적(敵)들인가가 확연하게 드러난 기회로 삼자.
그러나 한편 우리는 여기서, 지난 100년의 한국 역사가 아주 일방적인 비극만의 역사가 아님을 또 상기할 필요도 있다. 지난 100년 간 역사의 무덤을 거듭 다시 깨치고 일어나고 일어나던 불굴의 인간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임도 반드시 기억하자.
우리 한국의 역사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으로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민이 불의에 저항하여 자기를 불태우고 불사른 항거로 민이 행동한 역사였음을 또렷하게 말하자. 지난 100년의 역사에는 어둠을 깨치고 일어난 역사적 사실들이 얼마든지 있음을 우리는 더 강조하고 이를 알아야만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우리는 저마다의 입장에서 참으로 부지런해야만 한다. 자꾸만 민주주의를 말하고 부르짖고 외치고 일깨워야만 한다, 민이 스스로 세상을 살피고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인 민주주의를 목청껏 외쳐야만 한다. 딴 도리란 없다.
그래서 100년의 무덤을 다시 깨치고 일어나자고 서로서로 말해야만 한다. 패배를 무서워하지 않는 행동을 격려해야만 하고 모두 냉철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서로를 불러 모아야만 한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번 재보선 결과에서 보듯이 이명박의 "중도실용-친서민"'의 거품을 "서민"들은 확인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철저한 위장과 거짓이었음을 '민'은 진작 알아차렸음을 선거결과에서 우리는 보았고, 특히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 "위법" 사실을 적시하고도 법안의 가결 선포는 "유효"라고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자기모순' 판결에서 읽듯이, 이들 '이명박 집단'은 지금 총체적인 난맥상으로 그 허약함이 일시에 드러났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바로 희망적인 사실이다.
이는 이명박 집단이 오늘의 현실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위법이지만 휴효"라는 식으로 어불성(語不成)의 국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헌법재판관들이 '후원'하는 정권이란 얼마나 박약(薄弱)한 것인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하루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찾는 노력들이 절대 허망하지가 않음을 매일 매일 확인하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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