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역 일정도 있고 해서 1만 배가 좀 늦어졌다. 어제 오늘 6500배를 했는데 아직 3500배가 남아 있어 빨리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날 최상재 위원장은 밤 11시께 9300배를 채웠다.
▲ 서울 계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배를 하고 있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언론노보 |
차가 시끄럽게 지나고 벌써 쌀쌀해진 바람이 불어오는 길가에서 연달아 절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 위원장을 지켜보는 이들은 "옷을 따뜻하게 입어야한다", "한기든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언론노조 집행부 구성원들도 연신 최 위원장을 걱정스럽게 들여다봤다.
헌법재판소 정문 보도블럭에 앉아 휴식 시간을 갖는 최 위원장은 오히려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는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머리도 맑아지고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며 "절을 하면서 그간 언론법 투쟁 해온 것도 정리하게 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반 사이 언론노조 총파업만 3번. 실제로 그로서는 바쁘고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은… 파란만장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민들과 함께 싸워왔다는 것이 가장 잘해온 것 같다. 앞으로도 정권에 맞서 우리가 언론, 민주주의를 지키며 싸울 수 있을 유일한 동력은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문제이라는 공감일 것이다. 전국에서 폭넓게 지지하고 참여해준 시민들이 우리의 소중한 성과다."
언론 관련법 투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는 헌법재판소 앞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1만 배를 처음 시작할 때 최상재 위원장은 동참하겠다는 각 언론노조 지·본부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 했다. 그러나 곧 최상재 위원장의 옆 자리에 연달아 방석이 놓이고 여러 사람이 찾아와 108배로 최 위원장의 만배에 동참했다. 이날도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 함께 절을 올렸다.
이중에는 최상재 위원장의 부인 소설가 명지현 씨와 딸 최윤서 양도 있었다. 윤서 양은 최 위원장이 자택 앞에서 체포될 때 체포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막내딸. 초등학교 6학년인 그는 "법에 맞지 않게 날치기를 해 통과시키고는 법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이해할수 없다"며 "헌법재판소가 잘못된 판결을 내린다면 앞으로도 헌법재판소를 불신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1년 반 동안 파란만장했다. 특히 시민들과의 연대가 소중한 성과였다." ⓒ언론노보 |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년 반,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 위원장의 반성은 냉정했다.
"반면 각 언론사마다 저항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아직까지 언론사 안팎에서 심각하게, 드러내놓고 탄압을 하지는 않는데도 알아서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거나 눈치보기를 하는 언론사, 언론인들을 보면 가슴아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앞으로도 법안 투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지지와 함께 하려면 각 언론사 내부에서도 보도와 관련한 내부 구성원들의 문제제기가 강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특히 그것이 지금처럼 어려울 때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해서 단호히 해야한다고 본다. 각 언론인들도 자기 내부의 문제로 여길 것이 아니라 밖으로 끄집어 내어 시민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이루지 못하면 이명박 정권이나 반 민주세력 이전에 언론인들이 또다시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똑같은 실수를 또다시 재현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미래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노조위원장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언론인, PD로서 최상재 위원장의 회고이기도 하다. 그는 "내가 지금 왜 만배를 하고 있는가. 참지 못하는 분노 때문에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또 앞으로 언론인들이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못한다면 이러한 만배와 같은 활동은 결국 무의미한, 우리 자신을 위한 행사에 불과하리라는 부담감도 있다"면서 "그러나 결국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해나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하지만 언론인들이 자기검열, 눈치보기를 하는 모습은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앞으로 법안투쟁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언론인들의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다." ⓒ언론노보 |
▲ "헌법재판소는 절차에 대한 판단을 내릴 뿐이다. 판단은 헌법재판관이 아닌 국민이 한다. 일희일비하거나 조급해할 것 없다." ⓒ언론노보 |
수많은 이들이 헌법재판소 앞에 와서 절을 하는 것처럼 시민사회가 2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거는 기대도 크다. 그러나 정작 만배를 하고 있는 최상재 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멀리보면 어느 쪽으로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우리 사회가 좌우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언론 관련법 법안 자체가 아닌 절차에 대한 판단을 내릴 뿐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우리 국민들의 의견이나 상식을 충분히 수용할수 있는 기관인지를 스스로 내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그정도의 권위와 신뢰를 갖는 기관인지에도 회의적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연연하지 않고 심판은 국민이 내리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결국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나의 주요 관심사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는 것이지 결코 헌법재판관에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맡기는 것은 아니다. 일희일비하거나 조급해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바른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인 정책을 끝낼 수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 29일로 9700배를 마친 최상재 위원장이 응원차 찾아온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언론노보 |
최 위원장은 "상식이나 법리에 비춰봐도, 국민, 언론인, 법학자 누구의 의견을 묻더라도 60~70% 이상이 '무효 결정'이 맞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상식과 법리, 국민의 생각을 정확히 반영한다면 당연히 무효처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상식과 다른 결정을 내렸을 때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는 당장 내일부터 의견을 모아 지체없이 해나가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언론노조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를 묻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과 함께 언론, 민주주의의 문제를 의논해서 앞으로 어떤 정치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지금처럼 너무나 쉽게 과거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도록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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