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계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식당을 하는 한 아주머니가 천정배 민주당 의원에게 커피를 건네며 질문을 던졌다. 천정배 의원은 20일부터 2박 3일간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노숙 철야 농성을 하고 있는 중. 21일로 하룻밤을 넘겼다.
"알고 보면 단순한거에요.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신문사가 방송국까지 갖게 하는거죠. 이 신문사들은 지금도 골프 채널 같은 거 같고 있긴 한데, 집에서 케이블로 TV 보죠? 케이블에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방송을 만들고 조·중·동이 하게 만든다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삼성 같은 재벌들이 방송을 갖게 하는거고. 그러면 결국 우리나라 언론은 한나라당, 조·중·동, 재벌 이런 사람들이 가져가 버리고 서민들이 목소리 낼 곳은 없어지는 거죠."
천정배 의원의 '투쟁'은 그리 낯설지 않다. 천 의원은 지난 7월 한나라당이 언론 관련 법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 뒤 '민생 포차'를 끌고 천안, 대전, 광주, 목포 등 전국을 순회했다. 2007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에 반대해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치고 25일간 단식을 했다.
"단식이나 '민생 포차'에 비하면 지금은 호화판이다. 밥도 먹고…. 어제는 침낭에서 자려고 했더니 시민들이 '1인용 텐트'를 주셔서 따뜻하게 잤다. '민생 포차' 때는 정말 무지하게 힘들었다. 나는 그래도 폼만 재는 거지만 음식을 조리하고 팔아야 하는 보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정말 죽어났다. 새벽 2~3시에 자고 다음날 다른 곳으로 먼 거리를 옮겨가고…. 어쨌든 많이 만났고, 만나는 분들이 다 스승이 되어 주셨다."
'언론 악법 무효'를 내걸고 노숙 투쟁을 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 천 의원은 "그냥 보고 지나가는 분들이 대다수고 다가와서 인사하거나 가던 차를 멈추고 인사하는 분도 있다. 또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렇게 한가하세요?'라고 구박을 하기도 한다. 언론 악법을 둘러싼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체제 민주당,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15대 국회에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을 때도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던 그다. 4선 의원에 노무현 정부 때 법무장관을 지냈고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까지 맡았다. 그러다 자신의 표현대로 '30년간 매어오던 넥타이'를 풀고 거리로 나섰다. 보좌진들이 "이정도는 단련됐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 2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2박 3일' 노숙 투쟁을 하고 있는 천정배 민주당 의원. ⓒ프레시안 |
천 의원은 '민생 포차'를 하면서 느낀 것은 세 가지로 정리해 말했다.
"하나는 대다수 국민들 삶이 매우 고달프고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는 그 어려운 국민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비전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정세균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 쓴소리를 던졌다.
"지난 1년 3개월간 민주당은 시대적 과제, 대안 등을 연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세균 지도부는 작년 7월 취임하면서 올해 1월 1일에 '뉴 민주당 플랜'을 내놓겠다고 하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에 초안을 내놨다. 그러다 서거 국면을 지나며 오리무중이 됐다. 결국 1년 3개월 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민주당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재창당'을 해야 한다. 민주당의 정체성, 정책에 관한 재정비를 해야하고 그를 바탕으로 이에 동의하는 민주단 안팎의 세력이 모여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융합'이 어려우면 '연대'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개혁 진영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 쉬운 일은 아니나 못 만들 것도 없다."
"헌법재판소 '무효' 외에 도저히 다른 판결 내릴 수 없을 것"
천정배 의원은 '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1976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변호사로 활동했고, 15대 국회부터 국회의원으로서 '법'을 만들어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법무부 장관을 맡았고, 지금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천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국민들이 직접 재투표와 대리 투표 현장을 봤고, 최근엔 개별적으로도 어떤 의원이 대리 투표를 했는지 움직일 수 없는 동영상 증거에 따라 입증됐다"며 "헌법재판소가 도저히 다른 판결을 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이 헌법재판관들이 위협이나 협박을 받는 시대도 아니고 임기도 보장되어 있지 않나. 또 이미 더 높이 올라갈 자리도 없는 최고의 재판관 자리에 앉아있다"면서 "인적 구성으로도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신껏 판결할 분위기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에서 날치기에 원천 무효 결정을 내리면 사퇴한 사유가 원천적으로 소멸되는 것"이라며 '국회 복귀' 의사를 밝혔다. 그에게 "하루 바삐 국회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언론악법이 무효화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래야 하는데…. '민생 포차'를 하면서 스스로도 반성하게 됐다. 사실 밥벌이 하자고 국회의원 된 것 아니다. 더 좋은 밥벌이가 많이 있었다.(웃음) 그러나 어쨌든 13년 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국회의원이 '직업'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국회의사당도 중요하지만 꼭 정치가 국회에 한정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시민들이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을 꿈꾸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지금의 상황, 이명박 정권이 국회와 야당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국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시 의원직을 사퇴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국회를 꼭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문순 의원은 확실한 사람이다. 언론운동 과정에서 훈련이 됐겠지만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민들과 끈끈하게 결합하는 파워를 발휘하는 분 같다. 그런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라고 평가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노숙 투쟁 중인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찾아온 시민과 대화하고 있다. ⓒ프레시안 |
"법치주의의 근본은 권력자들이 법을 지키게 하는 것"
천 의원에게 '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평생 동안 연구한 고수의 비법을 전수해 주겠다"며 농담으로 응수했다.
"간단히 말하면 법이란 좋은 상식,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법률 전문가니까 어떠어떠한 문제에 해답을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물론 법에는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차적인 것이고 '양식'이기 때문에 수학 문제처럼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동시에 법은 '권력'과 결합하면서 화석화 된다.
가령 '용산참사'를 보면 법적으로 피해자들이 '공무 집행 방해'를 했다고 해도 공권력이 진압한 것을 건전한 양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공권력이 살인을 한 것이다. 이 경우에 어느 쪽이 법인가. 어찌됐든 '양식'이라는 측면이 우위에 서야 한다. 대부분 법이 권력자에 의해 힘없는 사람을 통제하고 협박하는 수단으로 쓰이지만 사실 법의 '실효성'과 근본 정신은은 권력자들이 법을 지키게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디어법도 마찬가지다. 결국 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의 자유와 권리, 기본적 인권 보장에 있다. 프랑스어에서는 법과 권리가 같은 단어다. 'Droit'. 법의 정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참 잘되어 있는 말이다. 법치주의의 근본은 사회적 약자를 권력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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