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수유리 화계사 대적광전. 마루를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불교신자들 뒤에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이 '언론 악법 원천 무효 2만 배 참회와 정진' 이라는 이름으로 절을 하고 있다. 하루에 3000배 씩, 이날로 엿새째다.
▲ 최문순 민주당 의원(가운데)와 보좌들이 함께 절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 최 의원은 숙인 고개를 들 줄 몰랐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주변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
▲ '언론악법 원천무효 2만 배 참회와 정진' ⓒ프레시안 |
29일 헌법재판소의 언론 관련법 판결을 앞두고 다른 것도 아닌, 왜 절을 하기로 했는지 물었다. 헌법재판소 앞이나 국회 앞이 아닌 화계사로 들어와 2만 배를 하는 것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여져야 하는 '정치'나 '운동'과는 사뭇 달라보이는 것이 사실. 그는 '언론 악법 원천 무효 2만 배' 뒤에 '참회'와 '정진'이라는 말도 붙여놨다.
"민주·개혁 진보 세력을 규합하는 사람들이 뭘 잘해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국민에게서 호응을 못받았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못하는데도 우리 지지율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쪽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자신의 문제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 아닌가. 이제는 이명박만을 욕하지 말고 우리 자신부터 참회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화계사에서 2만 배를 하게 된 것은 화계사 주지를 맡고 있는 수경 스님이 흔쾌히 허락한 덕이다. 올해 문규현 신부, 전종현 신부와 오체투지를 했던 수경 스님은 4대강 사업 등에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며 민주당 등을 질타했다.
최문순 의원은 화계사 일대를 가리켜 "이 골짜기가 민주주의가 쫓겨오는 골짜기"라고 말했다. 화계사에 들어오는 골목에 있는 한신대학교와 크리스천아카데미 등이 문익환 목사와 함께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복음'을 알렸고 화계사에 수경 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이곳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됐다는 것. 최 의원은 "결국 우리도 다시 이곳으로 쫓겨 들어오지 않았느냐. 여기에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또다른 비극"이라고 말했다.
▲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 "이곳은 민주주의가 쫓겨오는 골짜기다." ⓒ프레시안 |
▲ "헌법재판소가 언론 관련법을 '유효'로 판결 하면 3권 분립, 민주적 의사 결정구조 등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진다. 그것이 가장 걱정된다.." ⓒ프레시안 |
시민들의 성원도 답지했다. 이들의 2만 배는 24시간 인터넷 생중계가 되고 있다. 이 생중계를 누가 볼까 싶지만 예정보다 늦게 시작하면 어김없이 "어디갔느냐"는 댓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처음 2만 배를 시작했을 때에는 "자세가 형편없다. 누가 좀 가르쳐주라"는 반응이 올라오고 그걸 보고 실제로 동국대 예비스님이 찾아와 절하는 법을 다시 가르쳐주기도 했다. 최 의원은 "지금은 정석대로 하고 있다"고 웃었다.
"절을 하다보면 온갖 잡생각이 다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후회도 들고, 나중에는 화도 난다. 나 자신도 화가 나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화가 난다. 그런데 수경 스님이 화를 내면 안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피해자 아니냐'고 하더라. 이명박 대통령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747이니 주가 3000이니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는 스스로 어려워 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보면 피해자라는 말씀이다.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대결 구조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잘못했지만 언론 악법 같은 잘못도 우리가 교정을 해나가야 한다."
▲ 개량한복을 입은 최문순 의원. 그는 지난 금요일 2만 배를 시작한 이후 이 방에서 숙식을 해결해 왔다. ⓒ프레시안 |
"언론 관련 법은 KBS 수신료 문제, 미디어렙 문제 등과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 처음부터 언론 전반을 종합적, 입체적으로 보고 마스터 플랜으로 풀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를 단편적으로 보수 신문에 방송을 주기 위한 것만 하려고 하니 문제가 많다. 사실 언론 관련법이 통과되고 완전 경쟁 체제 미디어렙이 들어오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MBC가 아니라 신문이 될 것이다."
최 의원은 지난주 금요일 2만 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대적광전 아래에 있는 방에서 숙식도 해결하고 있다. 그는 "집에서야 안보니까 더 좋아하지"라며 농담을 던졌다. 짧지 않은 시간 2만 배 정진을 하며 느낀 것이 없을 수 없다. 그는 "절을 하다보면 이제는 생각조차 무게로 느껴져 내려놓게 되더라"고 말했다.
"우리가 스스로를 더 쳐내어야 한다. 지금 재보선이나 언론악법에 대응하는 과정, 4대강 사업 반대 등을 한나라당을 상대로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비슷할 수 있지만 정쟁으로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한나라당 보다 민주당이 더 국민과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국민들에게 정말 사과하고 우리 스스로도 돌아보고 반성하고 새로 출발하는 변곡점이 됐으면 한다."
▲ 최문순 의원을 응원차 찾아온 이들은 오히려 얼굴이 맑아졌다며 농답을 건넸다. 확실히 명동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받을 때보다는 얼굴색이 밝아졌다. 최 의원은 "술을 안 마셔서 그렇다"라고 웃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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