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평화·화해·협력을 위하여'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멜란 버비어 미 국무부 국제여성문제 대사 등이 나와 연설했고, 행사 참가자들은 7일 미 의회 방문에 이어 8일에는 국무부를 방문했다.
이번 회의를 주최한 '동북아 여성평화회의 추진위원회'는 한국여성단체연합,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민화협 여성위원회가 주관하는 조직으로 2008년 서울에서 첫 동아시아 여성평화회의를 열었다.
▲ 정현백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프레시안 |
<프레시안>은 13일 추진위의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현백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성균관대 교수)를 만나 이번 여성평화회의의 성과와 미 국무부 방문 얘기 등을 들어 봤다.
정현백 교수는 국무부 방문이 갑자기 성사된 상황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한국 내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고 활용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인터뷰 전문이다.
프레시안 : 동북아 여성평화회의에서 무엇을 했는지 개략적으로 소개한다면.
정현백 : 첫날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기조연설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포괄적 접근을 해야 하고, 미국은 북한과 '비핵화를 통한 관계정상화'가 아니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헤이즐 스미스 영국 크랜필드대 교수가 '동북아 평화 실현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고,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에서 온 여성 대표들이 각국의 관점에서 본 동북아 평화 문제에 대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저녁때는 멜란 버비어 미 국무부 국제여성문제 대사가 '평화 정착을 위한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둘째 날은 한국 대표들이 미국 의회·행정부에 제출하려고 가져간 정책 제안서를 수정하고 발표하는 작업을 했고, 오후에는 의회를 방문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존 케리 위원장의 전문위원인 프랭크 자누지(오바마 대선 캠프 한반도팀장 역임), 외교위 공화당 측 간사인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의 보좌관 키스 루스 등을 만났다.
프레시안 : 미 국무부 방문이 취소됐다가 다시 성사된 이유는?
정현백 : 버비어 대사가 와서 강연을 했기 때문에 국무부에 또 갈 필요가 있느냐고 해서 취소했는데 둘째 날 오후 의회에 들어가 있을 때 국무부의 성 김 6자회담 수석대표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다음날(8일) 오전 국무부에 가게 됐다.
국무부에서 왜 그랬는지 의도는 분명치 않지만, 미국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한국 내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고 활용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성 김 대사는 국무부에서 인도적 지원과 인권 등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서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북한 여성 인권, 인도적 지원, 포괄적 접근 같은 얘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한테 특별히 들을만한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텐데, 성 김이 급하게 만난 걸 보면 우리의 목소리를 적극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국무부 사람들이 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측 인사 중 한 분이 다른 자리에서 미국의 관리 몇 명을 따로 만났는데 한국 정부에 대해 꽤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고, 불편하다는 점을 털어 놨다는 얘기도 들었다.
프레시안 : 미국 쪽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나?
정현백 : 우리는 미 의회와 행정부 사람들을 만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풀어야 한다는 포괄적 접근을 강조했다. 미 의회 쪽 인사들은 민주당·공화당을 불문하고 거기에 다 동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북미 양자대화에 대해서는 미국도 굉장히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들었다.
그런데 이번 회의를 후원하고 미국 측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던 한 분에 따르면, 현재 북한 문제는 국무부보다 백악관에서 직접 챙기고 있기 때문에 국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오는 말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를 보는 시각과 결단이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상황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이번 평화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면?
정현백 : 미국의 여성단체와 학계에 한국의 여성운동과 한반도 평화 문제를 알리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우리가 만들어간 자료집과 제안서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한국의 여성들이 주도해서 6자회담 참여국 여성들의 만남을 가졌다는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프레시안 : 베이징에서 열렸다면 북한 여성들도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정현백 : 현실적으로 힘들다. 북한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없어 보인다. 남북간 협상을 할 때 보면 북한의 여성들은 누구보다 경직돼있고 주장이 강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그 사회에서 여성들의 운신 폭이 그만큼 좁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여맹(민주여성동맹)은 불러내지 못했고, 북한 국적을 가진 조총련계 사람들이 미국에 약 200명 정도 있는데 그 사람들도 못 왔다.
프레시안 : 중국, 러시아, 일본에서 온 사람들의 반응은?
정현백 : 북한의 여맹도 그렇지만 중국의 부녀연합이나 러시아의 여성연합은 사실 여성부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중국의 부녀연합을 초청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들은 약간 예민한 얘기가 나오는 자리에는 나오지 않아 결국 국제관계학 교수를 불렀다. 러시아에서는 여성연합이 왔다. 중국과 러시아 참가자들은 한반도 문제의 본질에 있어서 미국을 비판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평화 운동이 활발하고 한반도 문제에 관해 일본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왔는데, 문제는 그들이 워낙 소수라는 점이다. 또한 일본은 부문 운동은 활발한데 중앙집권화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어쨌든 일본 대표들도 적극적으로 얘기를 했고, '우리는 미군기지 반대 운동 같은 것만 했는데 이런 회의에 와 보니 방법을 달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 워싱턴 방문에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다면.
정현백 : 이명박 정부 측 사람들이 워싱턴에 가서 행정부는 물론 싱크탱크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잘못됐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그 증거다'는 얘기를 많이 해서 실제로 워싱턴 조야에서 그런 시각이 많이 유포됐다.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가 나서서 말해야 하는데, 우리의 접근은 아직 거칠고 로비를 하는 훈련도 전혀 안 돼있다고 본다. 이번에 우리가 간 것은 일종의 예행연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에 대해 좀 더 정교하게 알고 파고들어야 한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의 싱크탱크에 의미 있는 파트너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 참여연대 초청으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에 왔을 때 그런 얘기를 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모든 한반도 문제를 미국이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당황스럽다. 한국의 발언권이 상당히 높은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시민사회 내부의 합의가 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 수 있는데, 미국의 결정권을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면 우리가 움직일 공간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셈이 된다고 본다. 따라서 재정적으로나 여러 문제로 어려운 부분이 굉장히 많지만,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미국의 싱크탱크나 엔지오들이 한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간주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미국에서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것은 30~40명의 전문가들인데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우리 시민사회가 모드 전환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돈을 많이 들여서 미국에 가끔 갔지만, 서로 각자 할 말만 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미국 사람들을 만나 야단을 치고 오는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지난달 백낙청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와 오재식 전 월드비전 회장 등이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런 활동도 정례화해야 한다.
또, 이번 여성평화회의를 하면서 너무 한국 문제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다는 다른 나라 참여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국제 평화의 한 문제로 가져다 놓는 시도를 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응징해야 할 북한, 그리고 약간의 만용을 부리면서도 평화적이지 않은 미국'의 구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