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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더 이상 MB정부에 보조 맞추기는 어렵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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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美, 더 이상 MB정부에 보조 맞추기는 어렵다는 생각"

[인터뷰] 백낙청 "한반도 문제의 주된 '전선'은 한국 사회로 왔다'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는 최근 미국에 다녀왔다. 미국 정부와 의회, 민간을 상대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능동적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민간외교' 차원의 방문이었다.

백낙청 명예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오재식 전 월드비전 회장, 이문숙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 등으로 구성된 시민사회 대표단은 미국 방문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포괄적 접근'을 통해 북한과 관계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괄적 접근'은 북미가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다 내놓은 뒤,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핵 문제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1일 미국에서 제안한 북핵 '원 샷 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이다.

백낙청 명예대표는 24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시민사회 대표단이 주장한 '포괄적 접근'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제시한 '포괄적 패키지'와 유사하다고 말했다.(☞시민사회 대표들이 미 행정부·의회에 전달한 입장문 '능동적 협상만이 비핵·평화를 보장한다' 전문 보기)

시민사회 대표단은 특히 이번 방미에서 미 국무부 한반도 담당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했다.

국무부 관리들로부터 들었던 얘기에 대해 백 명예대표는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일본 등 동맹국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자신들의 대북 접근에 대해 엇박자를 놓는 이명박 정부에 더 이상 보조를 맞추지만은 않으리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백 명예대표의 이 같은 판단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에 대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냉랭한 반응에서 어느 정도 입증된 듯하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이번에 불거진 한미갈등이 북미 대화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다음은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프레시안>은 백 명예대표 외에도 최근 미국에 다녀온 인사들에 대한 연쇄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다.

'분단체제론'을 정립한 백낙청 명예대표는 6.15 남측위원회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면서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인사들로 최근 구성된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임동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관련 기사 : "한반도 위기 풀자"…통일·외교·안보 거물들 '총집결')

▲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 ⓒ프레시안

미 국무부 한반도 담당자들과의 '특별한' 만남

프레시안 :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누구를 만났나?

백낙청 명예대표 : 12일에 출국해서 22일에 귀국했다. 대표단의 공식 일정은 워싱턴 DC와 뉴욕에서 있었다. 나는 그 후 LA에 며칠 더 머물면서 동포 강연회·간담회 등을 하고 왔다.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주최하고 미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포럼'에 참석한 것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15일에는 국무부를 방문했고,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전문가들과 간담회도 했다. 뉴욕에서는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포럼에 참석하고 뉴욕대(NYU)에서 교수, 대학원생, 인근 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했다.

미국 측 인사를 접촉하는 게 방미의 주된 목적이었다. 케리 위원장실의 전문위원인 프랭크 자누지(오바마 대선 캠프 한반도팀장 역임)가 대표단 방문 초기부터 깊이 관여했다. 자누지 위원은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토론도 했고, 국무부·브루킹스 간담회에 동행했다. 또,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도 동석하는 등 늘 같이 하면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줬다.

국무부 방문이 특이했는데, 국무부에 간다고 하면 대개 되도록 고위급 인사를 만나 악수하고 사진 찍고 약간의 의견을 교환하고 마는데, 자누지 위원이 국무부와 협의를 해서 다른 형식으로 만났다.

업무가 끝난 후에 만난 것인데, 성 킴 6자회담 수석대표를 포함해서 국무부의 한국 관련 실무자들이 거의 전원 나왔다. 사진도 찍지 말고 나눈 얘기도 공개하지 말자는 합의 하에 대화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무슨 밀담을 나눈 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정리해 간 문건을 전달하면서 우리의 얘기를 솔직하게 했고, 그쪽의 입장도 들었다. 국무부 사람들도 우리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였다. 자누지 위원에 따르면 그것이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외교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광범위하게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는 그날 마침 취임식을 했고 그 직후 동아시아로 떠났기 때문에 못 나왔지만, 그 밑에 있는 부차관보와 성 킴 대표, 한국 데스크의 부책임자, 북한팀 실무자 등 6~7명이 나왔다. 실질적인 대화를 하겠다는 자세가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대화하기로 했다.

오바마의 동맹국 배려 의지, 강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프레시안 :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오바마 미 행정부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나?

백낙청 : 미국이나 중국 같이 큰 나라들은 외교에 상당히 신중하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더라도 느리게 바꾼다는 느낌이 있다. 또, 미국에서도 이번에는 풀면 제대로 풀어야지 조금 나가다가 되돌아오는 건 이제 지겹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방에 대한 배려도 상당히 강한 것 같았다. 한반도와 관련해 그간 일본이나 한국의 자세는 문제 해결에 역행하는 쪽이었는데, 그렇긴 하더라도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인 외교를 비판했고 자기가 집권하면 우방들과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우방의 태도가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그들을 따돌린 채 앞서 나가는 모양새는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것만큼 한미 찰떡공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는 어쨌든 한국과 일본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 사이 일본 정부가 바뀌었는데,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이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한국이 같이 가주면 좋지만, 그렇다고 자기들이 끝까지 한국 정부에 보조를 맞출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프레시안 : 미국 내 대북 강경론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부담은 없었나?

백낙청 : 오바마 행정부가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한 가지 유리한 것은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존 볼턴(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미국 네오콘의 대표적인 인물) 같은 사람이 이따금씩 정면 공격하는 걸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게 곧바로 의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훨씬 편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의료보험 개혁 같은 국내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같은 대외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치자본이 풍부한 것 같진 않다.

특히 오바마가 그간 여러 가지 상징적인 제스처는 많이 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바꾼 건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 아주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폴란드와 체코에 설치하려던 MD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그건 미국의 군수산업이나 보수층에게는 굉장히 아픈 것이어서 그들의 반발 때문에라도 한반도에서 과감하게 대북 제재를 풀면서 협상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내가 알기로 제재는 당분간 계속하면서 대화도 한다는 게 국무부의 확고한 입장이고, 북은 제재하는 동안에는 핵 억지력을 강화하겠지만 그러나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양측 모두 대화를 하겠다고 해서 곧 만날 예정이고, 대화가 어느 정도 잘 되면 핵문제 해결의 제2단계 불능화까지는 단기간에 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제재 해제도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가 가서 '포괄적인 접근'을 강조한 것은 핵 문제만으로는 한반도 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큰 그림을 가지고 해결하려 해야 하고, 그것도 상당히 고위급에서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북미간에 막연하더라도 원칙적인 이해와 합의가 이뤄졌을 때, 그 맥락 속에서 구체적인 조처가 진행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 백낙청 명예대표가 참여한 시민사회 방미단과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14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한반도 평화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에니 팔레오마베가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연구소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문숙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 케린 리 북한문제협의회(NCNK) 사무총장 ⓒ연합뉴스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 한국 시민사회의 '포괄적 접근'과 가까워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엇박자가 감지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내외의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보고 있나?

백낙청 :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서로 자제했다. 나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까지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미국 사람들, 특히 관리들이야 한국 정부에 대해 우리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전달하는 입장이 이명박 정부의 현재 태도하고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고, 특히 우리가 주장하는 포괄적인 접근과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그랜드 바겐'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미국에 있을 때는 이 대통령의 제의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게 됐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일괄타결론(패키지 딜)을 말하고 있는데, 그 용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패키지 딜을 얘기했을 때는 핵 문제만 따로 하지 말고 다른 문제도 동시에 거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처럼 핵 문제를 일거에 '원 샷 딜'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미국에서 그 제안을 하고 미국이 냉랭하게 반응하면서 '원 샷 딜'이라는 게 얼마나 허황되고 현실성이 없는 발상인지가 더 명백해졌다. 내가 왜 '포괄적 접근'이 '패키지 딜'과 다르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이렇게 이명박 대통령은 늘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준다.(웃음)

프레시안 : 그렇다면 포괄적 접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백낙청 :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는 건 아니지만 서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슈를 일단 만나서 다 털어놓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핵문제를 중심으로 하되 북의 인권 문제를 말할 수도 있겠고,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걸 다 털어놓고 상당히 고위급에서 대화를 해서 구체적인 합의는 아니더라도, 모호하더라도 그 전체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나 이해를 공유하면서 그 맥락 안에서 우선 해결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자는 것이다.

실은 이게 9.19 공동성명의 해법이었고, 6.15공동선언의 해법도 그런 것이었다. 6.15선언 제2항에서 통일방안에 대한 애매모호한 합의를 함으로써 3~5항의 인도주의, 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신뢰구축, 빈번한 당국자회담 등이 이뤄질 수 있게 됐다.

북미간에 포괄적인 상호 이해 내지 합의가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원점으로 되돌아간 핵문제 1, 2단계를 단기간에 마무리짓는 것이다. 포괄적인 이해가 있으면 1, 2단계를 갖고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제재도 어느 시점에서 해제될 것이고 북이 문제 삼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같은 것도 적절한 시점에서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도 포괄적인 합의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 정치적인 자본이 축적되는 것이다. 북은 북대로 제재가 해제되고 군사훈련이 중단되면 '아, 이번에는 미국이 진짜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구나'하는 신뢰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의 행동이 취해지고, 또 그러고 나면 포괄적인 합의가 조금 더 구체화되고…. 이런 식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포괄적 접근과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겐'에 그런 차이가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가 말하는 포괄적 패키지는 어느 것과 가까운 것인가.

백낙청 :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말하는 포괄적 패키지는 우리가 주장하는 포괄적 접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포괄적인 접근 속에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 있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번에 미국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아직도 너무나 미국 중심으로 생각하는구나, 역지사지하는 능력이 부족하구나 하는 점이었다. 그동안 일이 꼬인 건 전부 북한이 신용 없게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미국 스스로 얼마나 일을 꼬이게 했는지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다.

또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 사람들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통일이란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남북이 단일 국민국가를 이루는 개념으로 본다면 현실적으로 가망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특별한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다. 미국은 핵문제 해결하고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게 아니고, 6.15공동선언 2항의 합의에 따라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향해 그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지속·촉진시키는 일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을 미국 사람들은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부닥쳐 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왜 그러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북이 불능화 단계까지는 쉽게 갈지 몰라도 핵을 완전히 포기하려면 군사적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경제지원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상황 전체가 자신들에게 덜 위협적으로 되는 장치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걸 미국 사람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갑자기 통일을 할 수도 없고 통일이 안 된 상태에서, 미국이 안 쳐들어가고 외교관계 정상화를 하겠다고 하더라도 남북이 느슨한 결합을 이루면서 북이 독자적인 국가로 존속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포괄적 접근과 포괄적인 상호 이해의 내용의 일부로 통념상의 통일 즉 완전통일이 아니라 한반도 특유의 '통일 과정'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미국사람들도 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과정으로서의 통일, 그 구체적인 장치로서의 국가연합 같은 개념에 대해서는 한국사람들도 인식이 깊지 않다. 통일이라고 하면 어느 날 갑자기 단일국가가 되는 걸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백낙청 : 그렇게 된 건 통일운동 측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통일운동 하는 분들이 다 의견이 같은 건 아니지만, 상당수는 아직도 8.15 해방 당시 건설하려다가 못한 자주적인 통일국가, 단일형 국민국가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 그를 위해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등의 얘기까지 나오면 상당수 국민들은 그건 일부 활동가들이나 주장하는 남의 얘기로 치부하기 쉽다. 그래서 내가 늘 주장해왔지만 통일의 개념도 바꾸고 통일운동을 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고무적이었던 것은 이에 대한 우리 동포사회의 고민이 상당히 깊다는 걸 알았다.

왜냐면, 통일을 외쳐봤자 미국의 주류사회가 무관심한 건 물론이고 재미 한인사회에서도 별로 호응이 없다. 그래서 통일운동을 그만하고 다른 걸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반도 특유의 통일 과정을 얘기하고, 그 과정은 우리는 물론이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미국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니까 의문이 하나 풀렸다는 듯이 기뻐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건 해외동포 특유의 경험에서 나온 반응이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 여론조사를 하면 통일에 관심이 없다는 응답이 많고 특히 젊은층에서 심한데, 그렇다고 분단상태를 그대로 놔둔 채로 제대로 발전하고 소위 선진화를 하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문제에 부닥치면서 그런 문제와 분단체제의 연관성을 인식하게 되면 통일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리할 필요를 실감할 거라고 본다.


▲ ⓒ프레시안

한국 시민사회의 제언, 오바마 정책의 명분 될 수도

프레시안 : 이번 민간외교 활동이 오바마 행정부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나? 오바마 행정부가 앞으로 잘 할 걸로 기대하나?

백낙청 : 오바마 행정부에 당장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시민사회가 그렇게 실력이 있는 집단이 아직까지는 못 되고, 우리 나름으로는 협의를 통해 방미 대표를 뽑았지만 공식적인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오바마 행정부의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는 게, 미국이 우리가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갈 생각이 있으면 우리의 말을 활용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에 정책건의를 할 때도 그 자체로 정부를 직접 움직이겠다는 것보다 정부가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있으면 외부의 정책건의가 하나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우리의 생각을 얼마나 활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미국 국민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면 특별한 관심을 갖는 정책 당국자, 전문가 집단, 의회 관계자들이 한반도 정책을 좌우하는 경향이 많다. 우리가 그런 쪽하고 대화의 길을 텄다는 게 의미가 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향후 민간외교 계획은?

백낙청 :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그러나 지난 7일 출범한 한반도평화포럼 사업계획에는 미·일·중을 상대로 한 민간의 전략대화가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평화포럼은 지금 모양새를 갖춰가는 단계인데, 제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무슨 계획이 나올 것이다.

나로서도 이런 식의 민간외교에 나선 건 처음이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정부가 주선한 민간 사절단 같은 게 있었지만 내가 참여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우리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의견차가 심하니까 민간을 동원해서라도 설득하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정부의 알선 없이 민간이 독자적으로 발의하고 우리 호주머니에서 비행기 값을 대가면서 간 것은 최초의 일이다.

프레시안 :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의 정치·사회에 대한 인상은? 그것이 한국 정치·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백낙청 : 미국에서 가장 시끄럽게 논의되는 것은 의료보험 개혁 문제인데, 그 과정에서 한 하원 의원이 의사당에서 연설하는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쳤던 사건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 의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반대로 우익세력이 그를 옹호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극렬한 언사를 퍼붓는 걸 봤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때 미국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그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고, 그걸 조정해서 기대치를 좀 낮춘다 해도 그것조차 만족시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러다 보면 한반도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더 밀리기 때문에 어려워질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바마가 뭔가 실적을 내야 하는데 핵문제를 2단계 불능화까지만 빨리 매듭짓고 3단계 핵폐기는 정말 포괄적인 틀 안에서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풀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어떤 의미로는 한반도야말로 오바마가 손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지 않나 싶다.

그러나 그 전제는 역시 포괄적인 접근이고, 상당히 고위층이 움직여야 한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은 하나의 예비단계일 뿐이지 거기서 될 일은 아니다. 존 케리 상원의원도 북에 갈 모양인데, 행정부 특사로 간다면 모를까 의회에서 가는 한 역시 결정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고위급 특사가 가야 해결책이 보일 것 같다. 그게 북미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히 비중 있는 인사가 가면 실마리가 풀릴 거라고 본다.

제멋대로 발언하는 MB정부 내 공직자들 견제해야

프레시안 : 미국에서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들었나?

백낙청 : '북이 과연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나를 붙들고 물어보는데, 그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그래서 나는 "아니, 대화도 안 해보고 핵을 포기할지 말지 어떻게 아느냐. 그리고 기왕 대화를 할 거면 적극적으로 해야지 팔짱끼고 앉아서 '저 친구들이 핵을 포기할까, 안 할까, 안 할 것 같은데…' 그러고만 있으면 문제가 풀리겠냐?"고 답했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미국을 다녀오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다면?

백낙청 : 역시 한국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북미간의 대립, 즉 부시 행정부 처음 6년간의 대북 적대정책이 가장 큰 문제였고, 그것 때문에 남쪽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보려는 정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잘 안 나갔다.

그런데 2006년 말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바뀐 이후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된 전선이 남쪽 사회 내부로 이동해왔다. 그 전선에서 남북의 화해·협력, 통일과정의 촉진을 주도하던 세력이 대선과 총선에서 대패했다. 북측과 미국 측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바로 남한사회의 역진이 미국에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꼬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일이 잘 되려면 역시 우리가 한국사회 내부에서 정치사업이랄까를 좀 제대로 해서 이명박 정부, 특히 그 안에 포진해서 한반도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정부의 고위 공직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텅텅 해대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정책을 주무를 수 없도록 국회와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이 견제해야 한다.

지금 일본이 바뀌었고 오바마 행정부도 본격적으로 대북외교에 시동을 거는 참에 한국 정부가 계속 엇박자를 놓지 않도록 우리 내부에서 제대로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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