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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즉명(不平則鳴), 공평하지 못하면 제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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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즉명(不平則鳴), 공평하지 못하면 제기하라!

[소준섭의 正名論ㆍ끝] 후배 세대에 드리는 편지

88만원 세대의 아픔

마치 중3, 고3처럼 오늘도 취업시험 준비에 눈코 뜰 새 없는 젊은 후배 세대들을 보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극심한 취업난에 밀려 88만원 세대나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고단한 삶의 굴레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일본을 참 많이도 모방해왔지요. 언어생활을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는 실정은 이미 앞에서 많이 설명을 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베끼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데 가장 커다란 문제가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도 기실 일본을 그대로 배우면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제 그만 일본을 모방할 때가 되었지요. "솟아오른 용은 반드시 후회한다."는 말처럼 일본은 극성기를 맞이하는 그 순간부터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징후는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연된 무사안일과 무기력증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젊은이를 닮아가서는 안 됩니다.

불평즉명(不平則鳴), 공평하지 못하면 제기하라!

'불평즉명(不平則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평하지 못하면 곧 그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라!"는 말이지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우선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 해결책을 제기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적인 문제보다 공익적인 문제제기라면 더욱 바람직하겠지요. 그것이 민원으로 불리든 주민운동으로 칭해지든 아무튼 공익을 위한 활동을 각자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관심을 가진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전 독재 정권 때 선배 세대들은 온몸을 던져서, 때로는 목숨까지 던지면서 실천했지만, 지금 달라진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그러한 정신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이러한 운동을 실천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경우 가로수 가지치기에 대하여 5년째 민원운동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필자가 길을 걸을 때면 길가의 나무만 쳐다보고 다닐 정도로 나무를 특별히 좋아하기 때문에 가로수를 마치 적의 목을 치듯이 젓가락처럼 흉물스럽게 잘라놓는 모습에 너무 분노한 것이지요. 더구나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 보호 차원에서 가로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담당 공무원과 업체들은 마치 나무가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익을 위한 민원 운동을 실천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물결이 되어 반드시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이며, 동시에 근대화된 시민으로서 公民으로서 갖춰야 할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민원 제기도 상대측이 시간 끌기, 말 바꾸기, 대충 얼버무리기의 대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겠죠? 최소한 몇 년은 계속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끈질기게 실천해야 합니다. 대개 이런 싸움이란 끈기의 싸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법률 규정과 제도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외국의 법과 제도를 참조하는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정확한 관련 법 규정을 찾아내느냐의 여부는 이러한 운동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도「서울시 가로수관리조례」를 찾아내 현재의 가로수 전지가 위법임을 지적할 때부터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가로수 관리 절차를 사례로 예시하고 나중에는 중국 상하이 가로수관리 사진까지 찍어와 설득력을 더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뭘 그리 '찌질한' 작은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거느냐, 왜 현미경만 보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큰일을 하라고요. 그러한 말을 통하여 온갖 모욕을 주고 또 좌절감을 안김으로써 스스로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가만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큰일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작은 일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나 깨나 조심해서 살고 문제제기는 나중에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해도 된다고. 그러나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 뒤 초심을 살려 올바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간혹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결국 그런 주장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아무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면 결국 현존하는 사회구조의 시스템만 더욱 강화되어 가진 자, 기득권층만 계속 더 좋아질 뿐이고, 필연적으로 젊은이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집니다. 지금 선배들이 무얼 해주었냐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여러분 역시 여러분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냐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이만큼이라도 민주주의가 이룰 수 있는 원인도 사실 선배들의 투쟁을 밑거름으로 하여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제가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할 때만해도 '자유'라든가 '정의'라는 말만 입밖에 꺼내도 감옥행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고 삼촌도 일터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운동을 하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최소한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측면에서는 상당히 좋아진 조건이 되었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외형적인 총론의 틀만 이제 겨우 세워진 것이지 구체적인 각론에서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수준이라고 해야겠지요. 시작이 반입니다. 그 내용을 충실하게 채워나가는 것은 이제 여러분의 과제로 남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러분의 힘과 자각 그리고 실천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매우 똑똑합니다. 지식도 풍부하고 직관도 빠릅니다. 더구나 민주주의 의식이라든가 환경 의식도 투철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대부분 자신만 혼자 생각하고 즉자적으로 잡담 수준이나 비난조의 댓글 다는 수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의식을 사회적으로 전파하고 끈질기게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실천의 측면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시민대표 구성으로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을

노르웨이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청년포럼(Youth Forum for Democracy)'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이 조직은 전국 각지에서 청년단체를 대표하는 16명의 대표로 구성되어 있지요. 청년층의 정치참여 확대 방안과 사회활동 참여 방안 등에 대한 정책안을 만들어 아동가족부 장관(Minister of Children and Family Affairs)에게 제출합니다. 협력자로서의 이러한 정책결정 참여의 경우 비록 최종적인 결정권은 갖지 못하지만, 대표성을 지닌 참가자들이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한 권고안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란 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 되는 것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의 의회제도는 민의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현재의 취약한 대의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그 중요한 방안으로 온라인으로 대표를 선출하여 온라인 의회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추천해봅니다. 온라인 시민대표의 구성으로써 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으며, 이는 동시에 오프라인의 국회가 진정한 민의의 반영기구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라는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쟁과 당파 갈등이 만연된 오프라인 국회와 달리 진정으로 대중을 위한 공적 가치와 합리성의 추구야말로 가장 우선적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젊은이를 비롯하여 많은 대중들이 참여 민주주의를 몸소 실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라인 대표를 구성해가는 과정은 반드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비약적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성찰하는 자가 미래를 주도합니다

흔히 약육강식의 시대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완전히 옳은 주장만은 아닙니다. 그 논리에 따른다면 생물계를 가장 강했던 공룡이 멸망하고 호랑이가 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곧 그 논리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생물계는 다양성의 확대라는 방향으로 진전해왔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온난화, 신종 플루 등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의 출현,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급증하는 '묻지마' 살인 등등..... 특히 2000년을 넘어서면서 기존에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던 성장과 개발의 모형은 더 이상 우리 인류에게 반드시 이득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개발과 속도 위주의 세계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알려주는 바의 '주입식' 삶을 즉자적으로 살아가는 자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참된 목표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진진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많이 갖는 사람이 다가올 미래 세계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나 감성 중심의 사고로부터 가치 중심의 삶으로, 외면과 표피적인 호기심만이 아니라 내면과 근본을 성찰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 아닌 점수에 의한 평가를 하자

마지막으로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어느 사물 혹은 인물에 대하여 "좋다"와 "나쁘다"의 판단 기준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오랫동안 '○× 문제'에만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100점 아니면 0점만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점수에 100점과 0점만 있겠습니까? 60점도 있고 30점도 있고, 78점도 있고 49점도 있는 것이지요. 100점과 0점만 존재하는 이러한 흑백논리의 사회가 그간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다양한 점수를 매기십시오. 여러분이 각자의 생각대로 다양한 점수를 매기게 된다면, 곧 이 사회도 흑백 논리와 획일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다원화된 사회 그리고 창의성 있는 사회로 발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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