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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로 사교육비 잡는다?…30년째 반복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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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로 사교육비 잡는다?…30년째 반복된 거짓말"

[기자의 눈] '교육'도 '방송'도 사라진 EBS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사장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방통위는 이날 회의에서 EBS 감사, 이사 임명에 관한 건을 심의 의결하고 15일 사장 임명식을 연다.

지난 10일에는 EBS 사장 후보자 공개 면접도 있었지만 면접 이후 우려하는 여론이 더 높아졌다. 후보자 가운데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은 없다시피하고 '사교육비 경감 방안'만 쏟아졌기 때문이다. 사장 선임 이후에도 'EBS의 향후 방향'을 두고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년 내에 사교육비 20%를 줄이고 EBS 시청률과 만족도를 두 배 증대시키겠다"
"국제중, 특목고 대비 학생들을 위한 고급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EBS역량의 80%를 사교육 억제에 활용하겠다"


이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스스로 '사교육 절감'이라는 깃발을 세웠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 임기가 끝날 때 쯤 전체 사교육비의 20%를 감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전에 이명박 정부는 "EBS 내실화 방안"이라며 'EBS 수능 강의 파견 교사제 도입, 스타 강사 영입 추진' 등을 주요한 의제로 내세웠다.

<TV 가정고교>에서 이어지는 '엉터리 사교육비 대책'의 역사

사교육비 논란에 'EBS'를 대증요법으로 갖다붙이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최시중 위원장만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오히려 전두환 정권에서부터 반복된 시대착오적인 '주문'에 가깝다.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7.30 교육 개혁 조치'를통해 과외 금지령을 내리고 1980년 6월 KBS에서 '대입 TV 과외 방송'이라며 <TV 가정고교>를 시작했다.

▲1980년 4월 19일 <한국일보> 보도. "과열 과외를 흡수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TV 가정고교'를 실시한다"는 문교부의 발표를 전하고 있다. ⓒ한국일보
사교육을 방송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전두환 정부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던 것. 그러나 과외금지령이라는 강제 수단까지 동원했던 당시에도 과외는 오히려 성행해 '몰래바이트'라는 은어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TV 및 인터넷 방송으로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시도는 무한 반복됐다.

방법도 비슷하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과외금지 조치를 일부 풀면서 TV 교육방송을 강화했다. 방송시간을 오후 10시 이후로 옮기고 방송시간도 2시간 연장하면서 이른바 스타 강사였던 서한샘 씨를 영입하는 등 유명 강사들을 대거 기용했다. 김영삼 정부 때에는 1997년 위성교육방송을 개국하면서 당시 박흥수 사장이 "과외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과외 수요 40%를 흡수하고 사교육비를 수천 억씩 줄이겠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도 가장 핵심적인 정책으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EBS 수능강의' 였다. 노 정부는 'EBS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인터넷 서비스를 출범시키고 위성방송 서비스를 강화했다. 2007년 4월에는 영어 전문 채널도 개국했다. 학원가에서 잘 나가는 스타강사를 선발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TV 과외로 사교육비가 줄었나? 천만의 말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공언대로라면 이미 한국의 사교육비는 낮아지다 못해 눈녹듯 사라졌어야 한다. 전두환 정부의 <TV 가정고교> 이후 지난 정부가 필사적으로 추진해온 정책과 이명박 정부이 내세우는 정책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최근 통계청은 2008년 전국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전체 규모는 20조 9000억 원으로 2007년 20조 400억에 비해 4.3%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두환 정부의 <TV 가정고교> 시절부터 사교육비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해온 것은 이미 알려진대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개인과외와 학원비 등 사교육비는 1985년 4조 원이었던 것이 1990년 7조 원, 1998년 11조 9000억 원, 2001년 26조 6736억 원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계층별 사교육비 차이에 따른 교육 불평등 역시 확대되기만 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700만 원 이상을 버는 가구는 자녀 1명당 월 평균 47만 원의 사교육비를 쓰지만 100만 원 미만은 5만 원에 그쳤다. 이러한 투입의 차이는 수능 성적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대학 합격자 부모의 월평균 소득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246만 원)이 가장 많고 이어 '지방 4년제 대학(189만 원)→전문대(146만 원)→대학에 가지 않은 학생(131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방송통신위원회
"교육방송을 입시방송으로 바꾼들…문제는 경쟁과 서열화"

이러한 성적표가 보여주는 것은 한 가지다. 'EBS 내실화', '교육 기능 방송 강화' 등 정책 목표는 무엇으로 붙이든 사교육비를 'TV 과외'로 대체하겠다는 정책은 그저 빛좋은 개살구,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반복된 구호에도 사교육비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교육 체제가 경쟁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지 EBS가 수능방송이 못되서가 아니다.

특히 '경쟁 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에서 'EBS로 사교육비 절감'을 내세우는 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SKY'로 지칭되는 대학의 서열구조에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는커녕 고등학교에까지 특수목적고니 자율형 사립고 등을 확대하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EBS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것은 한쪽에서는 둑을 무너뜨리고 한쪽에서는 모래성을 쌓아 막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다.

EBS 방송본부장을 지낸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는 "EBS로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겠다는 정책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난 역사가 말해준다"며 "정부에서 또 다시 EBS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EBS의 새 경영진에게 그와 같은 목표달성을 요구한다면 결과적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행위일뿐더러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방송'은 까먹은 최시중 위원장의 '문어발 본능'

이에 더해 더 걱정되는 것은 최시중 위원장의 '문어발' 본능이다. 요즘 최시중 위원장은 어느 위원회 수장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공영방송에는 '산업성' 논리만 들이대더니 교육방송에는 '사교육비 절감' 논의만 내세운다. 그리고는 정작 '방송'은 잊어버린 모양새다.

이 때문에 최시중 위원장의 눈에는 <지식채널e>, <다큐프라임>, <스페이스 공감> 같은 EBS의 다큐, 교양, 문화 프로그램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방송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린이 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나 <방귀대장 뿡뿡이>가 국내외 시청자들에게서 얼마나 찬사를 받는지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5명의 EBS 사장후보 가운데 '방송 전문가'는 하나도 없다"(EBS 노동조합)는 비판을 당연시 해야하는 것일까?

방송과 통신 정책을 아우르는 방통위원회에 방송은 없고 '정권 홍보' 깃발만 휘날린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 양성, 사교육비 절감과 같은 정권 홍보용 목표에 방송들은 잇달아 희생된다. 이러한 난장판의 중심에 최시중 위원장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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