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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모라꼿과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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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모라꼿과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

[中國探究]<53> 양안(兩岸)의 '재난 정치학'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로 국제적으로 티벳의 자유를 주창하면서 중국 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달라이 라마 14세가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대만을 방문하였다. 이번 방문은 양안관계가 지난 8년간의 반목을 청산하면서 밀월 단계로 접어든 시점에서 이루어져 향후 양안관계의 발전 방향을 둘러싸고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중국 최대의 민족분리주의자이며 종교라는 미명하에 분리주의 활동을 이끄는 정치적 망명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달라이 라마 문제를 종교나 인권 그리고 민족이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영토적 통합과 민족적 통합을 외치는 악의 구심점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중국은 세계 각국이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하거나 자국의 영토가 달라이 라마의 분리주의 기도에 이용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결코 안 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천명해왔으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하는 국가에게는 강력한 견제와 보복성 조치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이번에도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 발표를 듣고 즉각 '단호한 반대'를 성명을 통해 표명하였고, 대만과의 일부 교류 활동을 일시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달라이 라마의 이번 방문은 지난 8월 8일 태풍 모라꼿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은 대만 남부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7명이 실의에 빠진 주민들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초청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들은 이번 초청이 세계적 종교 지도자를 통해 위안을 얻고자하는 순수한 의도임을 강조하였다. 달라이 라마도 이번 대만 방문은 태풍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종교적 목적의 '도덕적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방문 기간 동안 티벳 문제나 중국을 자극 할 수 있는 정치적 언사는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비 정치적 초청과 방문'의 이면을 보면 적지 않은 정치적 요소가 들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번 달라이 라마를 초청한 주체가 대만의 야당인 민진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점이다. 작년 3월 선거에서 정권을 빼앗긴 민진당은 자신들과는 달리 양안관계의 개선을 추진하는 국민당의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애써 왔다. 때 마침 태풍 피해에 대한 늑장 대처 의혹과 비난으로 마 총통은 한자리 수 지지도라는 최악의 정치 위기를 맞았고 이는 민진당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종교적 측면으로 봐도 꼭 달라이 라마여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번 태풍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만의 원주민인 고산족(高山族)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천주교도들로 만약 종교적 부분의 위로와 위안에 치중했다면 바티칸의 종교 인사를 초청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이러한 점에서 이는 다분히 현 국민당 정권, 특히 마잉지우 총통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야당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달라이 라마의 입장에서도 국민당의 대만화를 주창하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인 1997년과 민진당 천수이비엔(陳水扁)집권 시기인 2001년의 방문과는 달리 양안관계 개선시기에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현 국민당 정부 역시 정치적 고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작년 5월 취임 이후 양안관계 개선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마 총통은 야당인 민진당에게 '양안 관계에만 신경을 집중해 중국이 싫어하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불허 한다'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대만 주민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중국 입장을 따르지 않는다는 모양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종교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위해 초청했다는 민진당 단체장들의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마 총통은 태풍 모라꼿 늑장대처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이번 대만 방문이 성사된 것은 중국 측이 그의 방문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양안 간에 일정한 의견 소통이 이루어진 데 기인한다. 대만의 집권 국민당은 이번 달라이 라마 방문과 관련 중국에 사절까지 파견하면서 중국 정부의 이해를 구했다. 대만은 중국 측에 마잉지우 총통을 비롯한 5부요인(대만은 입법원, 사법원, 행정원, 고시원과 감찰원의 5부 체제)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해 이번 방문을 야당 차원의 행위로 국한시켰다. 중국 역시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을 강력 비난했지만 비난의 화살을 마 총통이 아닌 그를 초청한 야당 민진당에 집중했다.

또 중국은 전세기를 통해 왕래하던 양안 간 항공편을 정규노선으로 예정대로 출범시켜 지난 1년간 공들여 추진한 양안 간의 협력과 발전 분위기를 깰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31일은 중국 민항총국이 양안의 16개 항공사에 정기편 운항 허가증을 발급함에 따라 주당 108편이던 상설전세기 운항이 270편의 정규노선으로 확대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당연히 양안관계 개선에 주력하는 마 총통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욕을 보였다.

이렇게 보면 이번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이 향후 양안 관계 발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이번 대만 방문이 큰 충돌 없이 끝났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우려를 남겼다.

첫째는 정치적 '수단 가치'가 종교적 '목적가치'를 넘어서고 말았다는 점이다.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은 초청자 측에 의하면 태풍 피해 주민을 위로하기 위한 종교적이고 인도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정신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치적 요소가 그의 방문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태풍의 피해자와 이재민들은 이번 방문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달라이 라마 역시 본인이 강조하는 순수한 비정치적 의도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 것인지도 모른다.

둘째는 달라이 라마 방문 허용에 대한 중국 측의 이중 잣대도 향후 중국을 곤란하게 할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은 독일이나 프랑스의 달라이 라마 방문 허용과 정치 지도자 접견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그대로 표현하면서 각종 회의를 취소하고 경제협력을 무산시키는 등 강경조치를 취했었다. 지난해에는 유럽연합 측과 정상회담을 연기한 사례도 있으며 호주와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둘러싸고 현재까지 소원한 상태다. 그러나 체코 방문이나 체코 인권상 수상에 대해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필요에 따른 이중 잣대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난에 빠진 무고한 백성들을 생각할 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르는 위정자는 없을 것이다. 재난에 봉착하면 이를 어떻게 구제하고 어떻게 재난 상황을 어떻게 재건 할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다. 더 이상 수단과 목적이 혼재하고 또 뒤 바꾸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양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 관계에서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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