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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조사처의 '독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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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조사처의 '독립성'

[소준섭의 正名論]<17>

국회 입법조사처는 "입법 및 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조사·연구하고 관련 정보 및 자료를 제공하는 등 입법정보서비스와 관련된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2007년 설치되었다. 국회 입법지원 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미국의 의회조사처(CRS: The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를 모델로 삼아 설치된 국회 입법조사처는 설치 후 짧은 시간 내에 적지 않은 성과를 내면서 입법지원 기구로서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입법조사처의 독립성,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그런데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대한 이른바 '외부 압력'을 둘러싸고 국회 입법기구의 이른바 '독립성'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었다.

"국회 입법조사처법과 국회 예산정책처법에 규정돼 있듯이 양 기관의 직무수행에 있어 외부로 부터의 '독립성'은 그 생명이다."


"국회가 독립적으로 입법 활동을 하려면, 그걸 뒷받침하는 연구·조사 기관들의 왕성한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독립성' 주장은 일견 타당한 논리인 듯하지만 여기에도 '말'의 함정이 있다.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의 국회의 '독립성'과 국회 내 입법지원 기구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말에서 비록 '독립성'이라는 용어는 동일할지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내용은 각기 상이하다.


홉스에 의하면, 의회란 "대표 역할을 수임하도록 사전에 공식적 승인(authorization in advance)을 받은 자"에 의해 구성될 때에만 정통성을 갖는다. 따라서 선거에 의하여 사전에 의회에서 활동하도록 공식적 승인을 받지 않은 입법관료에게는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편 의회를 조직체의 관점에서 이해할 경우, 입법관료는 일종의 막료기관에 해당한다. 그런데 테일러(Taylor)를 비롯한 고전적 조직이론가들은 막료기관을 '중립적이고 열등한 수단적 장치(neutral and inferior instrument)'로 파악해왔다. 국회의원과 입법관료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논리는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국회의원은 의회의 주도적이고 본질적인 기관인 데 반하여 입법관료는 파생적이고 부가적인 기관으로 된다.

제한적 주장성, 복종성 그리고 익명성

이러한 의미에서 입법관료의 중요한 행위 규범은 '제한적 주장성(limited advocacy)'과 '의원에 대한 복종성(deference)'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으로 된다. 그리하여 입법관료란 국회의원에 대한 입법보조 활동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신의 정책적 선호나 입장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상기한 '제한적 주장성(limited advocacy)'과 '의원에 대한 복종성(deference)'의 불문율은 '익명성(anonymity)의 규범으로 연결된다. 이 익명성의 규범은 입법관료가 지켜야 할 최대의 규범 중 하나로서 이는 입법 과정에서의 모든 활동이 국회의원 명의로 수행되어야 하며,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박재창, "국회 입법지원체제의 개편방향과 과제").


앞에서 언급된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회 내에 설치된 비당파적 보조기관, 즉 입법지원 기구의 하나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국회 입법조사처는 과연 입법에 대하여 어떠한 '결정' 혹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구일까?


입법지원 기구란 상기한 바와 같이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그 기본 업무로 하며,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정책 입안이나 입법에 관한 제안은 하지 않는다. 입법에 대한 가치 판단은 오직 국민에게 입법권을 부여 받은 국회의원만의 고유한 권한이다. 따라서 엄격하게 말해서 입법이든 국정현안에 대한 비판이든, 가치판단은 의원들이 할 몫이고, 입법조사처는 주요한 객관적 사실을 의원들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입법조사처의 고객은 국민이 아니라 바로 의원들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만약 입법조사처에서 독자적으로 입법에 대한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국회의원의 입법권에 대한 침해로서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의회 내 입법지원 기구 소속 직원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며,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부여 받지 못하였다. 오직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부여 받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지원하기 위하여 고용된 국회 공무원일 뿐이다. 만약 의회 밖에 설치된 민간 연구기관의 경우라면 얼마든지 입법에 대한 의견과 주장을 독립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 그러나 의회 내에 존재하는 입법지원기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비록 박사급 전문 인력이 주축이라 할지라도 이를테면 '법제연구원'과 같은 국책 '연구기관'은 아닌 것이다.


입법조사처의 '유권해석'이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입법조사처는 근본적으로 유권해석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처음부터 전혀 성립할 수 없는 논리이다(물론 "국회사무처의 유권해석"이라는 말도 당연히 성립할 수 없다).

비당파성과 객관성을 추구하기 위한 미 의회조사처의 노력

실제로 미국 의회조사처(CRS)에서도 그러한 행위는 금기 사항이며 위반했을 경우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 미국 의회조사처는 중립성(neutrality) 견지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만약 의회지원 기구가 정파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어느 특정 정당을 편들고 나서게 된다면 그 권위도 쉽사리 의심받게 되고 존립 자체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CRS는 특정 사안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출판하지 않는다. 상원 규칙위원회나 하원 정부위원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서는 공식적인 자료를 출판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의회조사처에서는 실제로 각종 보고서의 출판 전에 미리 동료들 간에 상호 재검토되며, 모든 출판물들은 정책국(Agency Office of Policy)에서 몇 번에 걸쳐 치밀하게 검토되어진다. 그래서 CRS 연구보고서들이 때로 장황하고 지나치게 사실 확인적이거나 서술적이며 이론적인 측면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바로 비당파성(non-partisan)과 객관성(objective)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실제 CRS의 '규정'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문제(특히 업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거나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물론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업무에 있어 의견과 권고 그리고 조사보고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처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입법지원 기구로서 입법 활동을 지원한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최대한 비당파성과 객관성을 추구하여 적용하는 것이 비록 단기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그러한 방향이 입법지원 활동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이 있다. 입법조사처에는 이제 막 입법고시를 합격하여 들어온 신입직원들이 '조사관'의 직위를 가지고 '박사급 조사관'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이는 입법지원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입법조사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역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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