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저명한 외교관이자 1996년 '핵무기 폐기를 위한 캔버라 위원회'를 주도했던 리처드 버틀러(Richard Butler)가 '비확산의 명제'라며 한 말이다. 그는 "불공평과 이중 잣대는 매우 불안한 상황을 생산한다"며 "인간이 불공평을 참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물리학의 기본 법칙만큼이나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1997년부터 99년까지 이라크 무기 해체 유엔감독위원회(UNSCOM) 의장을 지내기도 했던 버틀러는 평생을 핵문제 해결에 쏟아왔던 경험을 미국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이중 잣대의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나는 화성인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고 토로한다. 그리고는 "미국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만큼이나 문제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는 이러한 불공정과 이중 잣대의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 이란을 상대할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美核→北核→南核?
버틀러와 로즈가 지적한 '불공평을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은 북한에도, 남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북한이 핵과 로켓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데에는 미국의 위협에 맞선 안보상의 이유와 3대 세습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미국 주도의 강대국 정치가 품고 있는 이중 잣대와 불공정에 대한 항의와 도전이라는 '전략 문화'도 한몫하고 있다. 하여 북한에게 핵과 로켓은 곧 주권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 북한의 3차 핵실험이후 여권인사들 사이에서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황우여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뉴시스 |
그렇다면 남한은 어떨까?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사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남한은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북한 위협 대처 못지않게 주권의 문제로 간주한다. 핵은 어떤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됨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비핵국가는 한국과 일본만 남은 상황이다. 그런데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수백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다량의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 또한 핵무기 제조로 전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시설을 갖고 있지 못한 나라는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보면 한국 내에서 '핵 주권론'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북아 6개국이 모두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그 잠재력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한국의 핵무장론의 기원은 북핵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보다 먼저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나라는 남한이었다. "1970년대 동북아시아에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국민들을 고문하는 나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그건 남한이다. 1970년대의 남한과 오늘날의 북한은 여러 점에서 흡사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총책임자로 있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의 말이다.
박정희의 좌절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핵무장론이 다시 부상한 계기는 역시 북핵 문제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론도 고개를 들었다가 수그러들기를 반복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는 결이 다른 부분들이 있다. 우선 '핵보유국 북한'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은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북핵 위협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고, 이는 '눈에는 눈, 핵에는 핵'이라는 한국 핵무장론의 인식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또 하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 협정을 개정해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미국 의회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원자력 협정이 개정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 바로 시작되니까 우리의 핵 재처리 기술 등에 대해서는 한미 간에 합의를 봐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기류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14년이 개정 시한인 원자력 협정 문제는 북한의 핵과 로켓 능력 강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핵무장 추진시 한미동맹 파기 각오해야
한국의 핵무장론은 '미국 핵우산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도 바탕에 깔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어왔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하면 '과연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희생을 감수하려고 하겠느냐'는 반문이 생길 수 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런데 핵 억제는 근본적으로 '너 죽고 나 죽고 모두 죽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한다'는 인간 이성의 최저치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억제 이론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남한에 핵 공격을 하더라도 미국이 핵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한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미국이 이런 확신을 북한에게 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한국에게 더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핵우산 제공을 공언할 것이고, 북한에게 오판하지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한국측에서 미국에게 핵우산의 신뢰의 문제를 제기하면 미국은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핵을 사용하는 순간 지구상에서 북한이라는 나라가 없어지는 선택을 북한 지도부가 하겠느냐?'
일각에서는 그러면 '미국 핵우산 정책을 보장하기 위해 전술핵이라도 들여놓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성의 문제를 떠나 실효성 자체가 없다. 미국 핵무기가 미국 영토에 있던, 바다나 하늘 위에 있던, 한국 땅에 있던, 그 사용 권한은 미국 정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사용 권한을 가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한미동맹은 전형적인 '안보와 자율성의 교환' 모델이다.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에 정책 자율성, 즉 주권의 일부를 양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동맹이라는 것이다. 60년 넘게 전시 작전권이 미국에 있었고, 주한미군 범죄에 대해 사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며, 핵은 물론이고 탄도미사일도 마음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일종의 기회비용인 셈이다. 이는 거꾸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은 곧 미국에게 동맹을 깨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박정희의 좌절과 극소 2004년 핵물질 실험 파문의 교훈
다시 한국의 핵무장 문제로 돌아가 보자. 세 가지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만들어야 하는가? 만들 수 있는가? 득실관계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의 과거 및 다른 나라의 사례, 한국의 핵무장 능력과 국내적·국제적 제약 요인, 군사적 타당성, 북핵 문제 및 한미동맹, 그리고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역사를 돌아보자. 두 가지 사례가 눈에 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비밀 핵무기 개발이고, 또 하나는 한국이 IAEA에 신고하지 않고 극소량의 핵분열 물질을 추출했다고 곤욕을 치른 사례이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패배와 철수,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비밀리에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의 약해진 안보 공약을 자주국방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문서에 따르면 청와대는 '이스라엘 모델'을 기대했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단기적으로는 반대하겠지만 결국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에 감아줬던 눈을 한국에는 부릅떴다. 캐나다와 벨기에 등 한국에게 핵 시설과 기술을 팔려고 했던 나라들에게 압력을 가해 취소시켰고, 박정희 정권에게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압박했다.
대신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중단하는 한편, 대북 핵 공격 계획이 포함된 대규모의 연례 합동군사훈련인 '팀 스피리트'를 개시해 박정희 정권을 달래려고 했다. '한국의 핵개발 포기'와 '미국의 안보 공약 강화'의 교환이었다. 뒤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미국에게 핵무기 개발을 영구히 중단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정권을 인정받았다.
▲ 기밀해제된 CIA 문서와 박정희 전 대통령 ⓒ글로벌아시아 |
한국이 IAEA에 신고하지 않고 핵분열 물질을 추출했다가 2004년 발각돼 곤욕을 치른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IAEA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1982년에 농도 98%의 플루토늄(Pu-239) 0.7g, 2000년에는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실험을 통해 농도 77%의 우라늄(U-235) 0.2g을 추출했다. 대개 핵무기 1개를 만드는 데 플루토늄은 5kg 안팎, 고농축 우라늄은 20kg 안팎이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이 추출한 양은 극소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AEA는 사찰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시의적절(timely)하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우려사항(serious concern)"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것은 미국의 태도였다. 한국이 사전에 IAEA에 보고하지 않고 핵물질 실험을 한 것은 안전조치협정을 위반한 것이지만, IAEA가 이를 조사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한국과 IAEA 사이의 '비밀'이었다. 그런데 당시 부시 행정부의 일부 관리들은 2004년 9월 초부터 이러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 한국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또한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한국이 IAEA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어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유엔 안보리 회부 가능성을 거듭 흘리면서 한국을 압박했다.
당시 미국이 이중 플레이를 한 데에는 동맹국인 한국도 핵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안보리에 회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한국을 안보리에 회부하면 북한이나 이란을 안보리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점도 계산했을 것이다. 다행히 안보리 회부는 면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큰 망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력을 총집중했어야 했다.
이러한 두 가지 사례는 핵무장 '야망'과 미국 주도의 비확산 체제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국을 설득하면 이스라엘처럼 양해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스라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이스라엘은 NPT 체제가 공식 출범하기 전에 이미 핵무기를 손에 넣었고 NPT 자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처럼 NPT와 IAEA를 탈퇴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핵보유국이다. 반면 한국의 핵보유 시도는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고, 이렇게 되면 몽골을 제외한 동북아 국가들 모두가 핵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실험을 어디에서 할 수 있나?
한국은 현재 21기의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원전만으로는 안 된다.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재처리 시설이 있어야 한다. 여건상 고농축 우라늄 방식은 대단히 어렵다. 핵 개발에 착수하는 순간, 우라늄 수입을 금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핵연료를 꺼내어 고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그러려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이에 따라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사용후 연료봉의 보유량이 1만 톤에 달해 이를 재처리하면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적으로 대안이 되기 어렵다. 미국이 한국의 사용후 연료의 형질 변경, 즉 재처리 시설 보유에 동의할 것인지도 극히 불확실하지만, 설사 미국이 동의해주더라도 핵무기화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재처리 시설을 과연 원활하게 지을 수 있을 지부터 의문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들의 반발을 야기해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재처리 시설을 만들어 가동하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피격 대상이 될 수 있고 피격시 그 자체가 엄청난 방사능 물질을 뿜어내는 핵폭탄이 될 위험이 크다. 또한 실질적인 핵무장을 위해서는 수차례의 핵실험이 필요하다. 과연 좁은 영토에 5천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 실험할 수 있을지 극히 의문이다.
경제적 피해는?
그렇다면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이 NPT와 IAEA를 탈퇴하면 유엔 안보리 회부는 불가피해진다. 1993년 북한이 그랬고, 21세기 들어서는 'NPT를 탈퇴할 경우 안보리 차원에서 다룬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비밀리에 핵 개발은 불가능할뿐더러, 그러다가 발각되면 2004년보다 훨씬 큰 곤욕을 치러야 한다. 그래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우선 '전력 대란'을 각오해야 한다. 다량의 우라늄 광산이 있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농축 우라늄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가장 먼저 받게 될 국제적 제재가 바로 우라늄 금수 조치이다. 자체적인 핵연료 저장량이 넉넉하지 않은 한국으로선 '원전 제로'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기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그 충격파를 가늠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의료 대란'도 불가피하다. X레이, CT 촬영, 항암 치료 등 현대 의학은 방사성동위원소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는 한국의 핵 개발 수위에 따라 높아질 것이다. 이에 따라 그 파장은 모든 경제분야로 퍼지게 된다. 과거의 이라크, 오늘날의 북한과 이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사회의 수출 통제 품목은 핵과 미사일, 그리고 생화학무기 등으로 전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공산품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베어링이나 시계, 전화기 같은 경공업 제품은 물론 고무, 소금, 석고, 시멘트, 비료 등 기초재료까지 사실상 대부분의 공산품이 여기에 속한다. 산업기술 선진국이 대부분 가입해 있는 해당 조약이 한국을 의심국가로 지목할 경우 반도체와 자동차, 선박, 철강 등 주요 산업이 받을 타격은 거의 궤멸 수준에 이른다." <신동아> 2011년 4월호의 보도 내용이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85%에 이른다. 국제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의 움직임에도 대단히 민감하다. 북한처럼 우라늄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란처럼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물론이고 이란보다도 훨씬 국제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이는 핵무장 시도 시 한국이 치러야 할 경제적 비용이 북한이나 이란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로 막대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결국 한국은 핵무장 추진 시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다.
'남핵'이 무서워 '북핵'을 포기한다고?
모든 제약을 극복하고 엄청난 비용을 감수해서 핵무장에 성공하더라도 과연 실효가 있을지도 극히 의문이다. 핵무장론자들은 '공포의 균형'을 통해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1만 개 안팎의 핵을 갖고 있는 미국도 핵 위협을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을 핵무장의 빌미로 이용했다. 그런데 한국이 몇 개의 핵무기, 혹은 핵무장 잠재력을 갖춰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발상의 근거가 무엇인가? 오히려 이런 식의 주장은 핵무장으로 미국의 핵 위협을 제거해 "조선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던 북한의 궤변과 너무나도 닮은꼴이다.
역사적으로도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 폐기에 성공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대개의 경우는 핵 군비경쟁을 통한 '공포의 확대재생산'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 그랬고,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이 그렇다. 미국과 소련의 핵협상은 핵 '감축' 협상이었으며, 이마저도 레이건의 '변신'과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힘입은 결과였다. 미소 탈냉전 이후 찔끔찔끔 핵무기를 줄여온 두 나라는 여전히 각각 1만 개에 가까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과 안보전문가들, 그리고 언론인들은 희생을 무릅쓰고 용단을 내려야 한다며 핵무장론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건 용단이 아니라 만용이다. 미래의 한국이 오늘날의 북한처럼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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