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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민 北…기로에 선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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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민 北…기로에 선 이명박 정부

현인택 장관 北조문단 만나기로…대화의 폭과 깊이가 변수

이명박 정부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는 국제 정세와 북한의 유화 제스처 속에서 북한이 내민 손을 잡을지 그냥 뿌리칠지 갈림길에 섰다.

최근 북한의 대남 행보는 전면적이고 적극적이다.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인 후 개성에 억류됐던 현대아산 직원을 풀어준데 이어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5개항의 합의를 도출했다.

20일에는 작년 12월부터 취해졌던 남북간 통행 및 북측 지역 체류 제한·차단 조치를 전면 해제했다. 지난달 30일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는 이유로 예인해 간 '800 연안호'도 머잖아 풀어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정점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전에 조문을 하기 위해 내려 온 조의방문단이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조문단 앞에 '특사'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남측 당국이 원한다면 이들이 자신을 대신해 대화할 것이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라면 대화 상대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조문단은 서울 체류 일정을 1박 2일로 잡아 이명박 정부에 시간 여유까지 주었다. 또한 조문단 구성도 화려하면서 실질적이다.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 등은 "대남 전략팀의 실세들"이라는 게 과거 이들과 수차례 협상했던 전직 고위 당국자의 평가다.

▲ 김기남 노동당 비서(오른쪽)와 김양건 부장(왼쪽)이 21일 저녁 숙소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쪽에 대해 시종 강경했던 북한의 태도는 왜 바뀌었을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맹국인 한국·일본과의 협의를 중시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북미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남북관계도 같이 풀어 달라'고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달 초 평양을 방문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그런 말을 했을 것이고, 클린턴 방문을 전후로 한 북미 뉴욕 접촉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갔을 것이다. 19일 김명길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공사를 만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 역시 대남 강경 일변도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대북 행보에 제동을 걸 경우 미국 역시 마냥 외면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지난 1년 반 가량 봐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역할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한데 이어 이달 17일부터는 4박 5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평양에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우 부부장은 미국과 마찬가지의 논리로 북한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바쳐진 김정일 위원장의 화환 ⓒ뉴시스

그렇게 해서 결국 공은 남쪽 코트로 넘어오게 됐다. 이명박 정부는 일단 북측이 현정을 회장을 통해 간접 제안한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금강산에서 여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자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안부터 화답을 한 셈이다.

그러나 서울에 도착한 직후 홍양호 통일부 차관에게 "다 만나겠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까지 말하며 손을 내민 조문단을 앞에 두고서는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끌고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핵심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여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로부터 "북한의 조문단은 사설 조문단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런 속내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북미관계는 서서히 풀려가고 있고 그 흐름은 대세가 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북측이 남측의 요구 사항들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면서 태도를 바꿨는데 남측이 또 다시 외면했을 경우 북측도 '더 이상 뭘 어쩌란 말이냐'고 미국에 항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어 미국이 북한을 이해하는 쪽으로 나간다면,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한국이 발목을 잡더라도 북미관계 개선 프로세스를 밀어 붙일 수밖에 없다. 그 경우 한국이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결국 22일 오전 북한 조문단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러한 상황 전개를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한반도 국면 전환 분위기도 있고, 남북이 모두 최근에 해 놓은 게 있기 때문에 속내를 알기 위해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임을 강조하고 있는 조문단이 현인택 장관을 만나는 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지는 미지수다. 현 장관이 형식적인 말이나 하고, 연안호 송환 등 요구사항만 전달하는 경우 조문단은 남쪽에 무시를 당했다고 여길 수 있다.

특히 북한 조문단은 현 장관을 만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남측의 이행 의지를 타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현 장관이 기존의 모호한 얘기만 내놓는다면 이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설 공산이 크다. 3년 반 남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외교정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좌우할 중대한 만남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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