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가 일주일 남았음에도 이미 부정선거 시비가 일고 있다. 약 1600만 개 유권자 등록증 가운데 300만 장 정도가 복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해 '사전 조작'을 감행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르자이 대통령은 45% 정도의 득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
▲ 아프가니스탄의 '위험한' 투표 열기. 지난 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축구경기장 밖에서 여성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 후보인 압둘라 압둘라를 기다리고 있다. ⓒ신화통신=뉴시스 |
투표소의 10%가 폭력에 노출돼
문제는 독특한 선거 절차다. 20일 투표는 1차 투표다. 만약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0월 1일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러야 한다. 1차 투표 후 결선투표까지 70일 이상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카르자이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51% 이상의 득표를 원하고 있다. 반면, 여론조사에서 약 25%의 지지를 얻으며 2위로 카르자이를 추격하고 있는 후보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은 결선투표가 목표다. 1차 투표에서 카르자이의 과반 득표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미 유권자 등록증 위조를 놓고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공교롭게도 아프가니스탄은 이란 이슬람공화국과 접하고 있다. 공식 국명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이다. 이란과 마찬가지로 대선 이후 부정선거를 놓고 후폭풍이 예상된다.
더 큰 변수는 탈레반의 움직임이다. 이미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연일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정치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10일에는 정부 청사에 대한 탈레반의 공격이 있었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한 유엔 보고서는 자살폭탄이나 노상폭탄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민간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올해 1월부터 6월 말까지 희생된 민간인들의 숫자는 101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나 증가했다.
남부의 한 주민은 12일 범아랍 위성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투표일 당일에는 문밖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움을 표시했다. 탈레반 공격으로 인한 치안 악화와 대규모 소요 사태 우려 등으로 대선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프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당일 전국 7000여 투표소 가운데 700여 곳에서 투표가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프간 정부는 전군에 동원령을 내리고, 또 전국 18개 주에서 활동하는 수천 명의 민병대에도 대선 투표소와 도로, 각종 공공시설물의 보호 임무를 부여했다. 미군과 나토군도 대선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대의 병력을 동원해 치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 외국군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8월 들어 사망한 외국군만 해도 미군 18명을 포함해 모두 27명이다. 7월의 경우 미군과 나토군 75명이 사망해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오바마 '카르자이 못 믿겠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2001년 미국의 점령 이후 실시되는 두 번째 대선이다. 2004년 첫 대선에서는 카르자이가 당선돼 5년 임기를 마쳐가고 있다. 미군 점령 8년이 지난 시점에서 치러지는 두 번째 대선에서도 이처럼 혼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내부적으로는 민족 간 갈등이 큰 문제다. 아프간은 크게 4개의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큰 민족은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이다. 이어 타지크족이 27%, 하자라족 9%, 그리고 우즈베크족 9%가 뒤를 잇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이들 민족 간 갈등은 현재까지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등장하는 여러 여론조사도 이 같은 민족적 분포를 그대로 반영한다. 지난 10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파슈툰족 출신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응답자의 45%에 달하는 지지를 얻었다. 두 번째로 큰 민족인 타지크족 출신인 후보 압둘라 전 외무장관은 25%의 지지표를 얻었다.
세 번째 최대 민족 하자라족 출신인 바샤르도스트 의원은 10%의 지지를 얻어 일단 당선권에서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선투표가 실시될 경우 캐스팅보트 행사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확산하는 혼란과 두려움의 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점령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8년의 점령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제는 뒷걸음질 치고, 국민은 빈곤과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 농민들은 농사보다는 아편을 재배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당수 농지는 이미 아편농장으로 변모돼 전 세계 아편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무능력한 정부는 국가 전체의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카르자이는 수도 카불만 통치하는 '카불 대통령'이라 불린다. 정부 기관과 공무원 사이에 만연한 부패는 극에 달했다. 다국적군의 무기를 받아 저항세력에 팔아넘기는 군 고위 관리들도 있다.
'아프간 안정화' 기치를 내건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도 카르자이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 향후 추가적인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에 '고무도장'을 계속 찍어줄 지도자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무능과 부패의 상징인 하미르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계륵'이 아닐 수 없다. ⓒ로이터=뉴시스 |
탈레반, 한때 집권세력이었던 테러세력의 힘
혼란과 두려움이 확산하는 가운데 세력을 키워가는 측은 탈레반이다. 무고한 외국인 인질을 살해하고 민간인에 대한 테러도 무차별적으로 감행하는 탈레반은 테러세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순한 테러단체만은 아니다. 미군의 점령에 의해 빼앗긴 권력을 되찾으려는 무장세력이다.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집권을 경험했던 강력한 정치세력이기도 하다.
첨단 무기를 가지고도 다국적군이 탈레반을 제거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아프간의 거친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아프간은 수천 년간 점령과 독립을 반복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실크로드가 지나는 곳이기에 여러 민족의 침략을 받았다. '중앙아시아의 십자로'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아프간은 항상 정복자들에게는 '무덤'이 돼 왔다. 기원전 500년 무렵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정복했지만 끝없는 반란에 시달렸다. 기원전 329년 이 지역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기간도 3년에 불과했다. 영국은 1839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꼭두각시 왕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3년 뒤 4500명의 영국군과 1만2000명의 군 가족 중 간신히 1명만 살아남는 대패를 당하고 물러났다. 1979년엔 소련군이 침공했다가 무려 5만 명의 병력을 잃고 1988년 철수했고, 결국 전체 소련 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험난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아프간 부족은 독특한 성향을 갖게 됐다. '남성 무장이 필수적인 산악 부족의 강인한 기질 + 중동의 가부장적 전통 + 외국세력에 대한 반감'이 혼합된 형태다.
7세기 경 이슬람교와 더불어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고, 이후에도 터키·몽골 등의 침략에 시달려 왔지만 골짜기마다 거의 독립적인 '부족 소국가'를 유지해왔다. 21세기의 탈레반도 실질적으로 이런 소국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탈레반은 현재 남부를 중심으로 아프간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반군이다. 미군 주도 다국적군에 몰락하기 전까지는 당당한 정부였고 현재 친미 정부와 권력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세력이다.
이들의 투쟁 방식에는 분명히 테러집단의 잔혹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자신들의 '빼앗긴' 정권을 되찾겠다는 명확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프간 집권 세력이었던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세력은 싸움을 걸어오는 적이고, 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모든 형태의 싸움은 민족적 투쟁이고 종교적 성전이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지원 하에 정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적 그리고 종교적 투쟁을 벌이는 거대 세력이 있다. 이런 '큰 싸움'의 틀 하에서 대통령 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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