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조·중·동과 재벌이 방송에 진출하면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소유'에 분명한 반대 입장과 경고를 내놓으면서도 지금의 방송에도 분명한 날을 세웠다.
3번의 총파업, 과연 성공인가?
지난 1년 6개월 사이 언론노조는 3번에 걸친 언론악법 반대 총파업을 벌였다. 언론사상 최장기 투쟁을 기록한 YTN 사태, 문화방송(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 투쟁 등과 함께 언론노조는 촛불 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퇴행적 '탄압'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유일하다시피 한 시민사회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3번의 투쟁 동안 언론노조의 파업은 큰 변화가 없었다. 앞서 두 번처럼 이번 3차 총파업도 언론노조만의 싸움이었다. 아직 투쟁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와 광범위한 연대를 끌어내지 못했다. 언론노조가 '진짜' 승리하려면 지난 1996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사태 때처럼 시민의 저항과 연대가 있어야 했다.
언론노조가 변명할 수 있는 요인은 많다. "시민들이 자신의 피부로 느끼기에는 언론 문제는 너무 어렵다." 이 변명은 얄궂게도 언론노조가 비판해마지 않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여론조사'를 거부한 이유와 같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각종 'MB식 법치'의 난무로 시민사회의 폭이 좁아지고 촛불 집회 이후로 시민사회의 냉소와 좌절이 깊다는 것도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은 모두 언론 그 자신에게 돌아간다. 왜 시민들은 지금의 방송과 조·중·동 방송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가. 혹시 차이가 없기 때문은 아닌가. 왜 방송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친다는 언론 관련 법을 쉽게 설명하지 못했나. 언론이 설 땅마저 줄어들 만큼 시민사회가 탄압받고 위축되어 갈 때 방송은 무엇을 했나. '법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불법에 어떤 비판과 보도를 했나.
노동부가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냈을 때 노동계에서는 "우리가 파업할 때는 '교통 체증'이니 '불법 파업'이니 보도하더니 자기들은 불법 파업 '딱지'에 어떤 생각인가 궁금하다"는 냉소가 나왔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한국PD연합회 토론회에서 "자기들이 힘들 땐 '연대'를 말하고 잘 나갈 때는 '방송은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식"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 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에 모인 언론노조 조합원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사태 때처럼 이명박 정부를 뒤흔들 '국민적 분노'는 왜 아직일까. ⓒ프레시안 |
'연대하자' 외치던 쌍용차, 용산 참사 유가족… 보도는?
문화방송(MBC)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에 융단 폭격을 퍼붓고 있는 조·중·동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방송이 정말 지켜내야할 '공영 방송'인가라는 질문은 진보진영의 마음를 무겁게 내리누른다. 파업 기간 동안 국회의사당 앞을 지켰던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이러한 질문을 한번쯤 곱씹어 보았을까?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파업 연설에서도, 29일 '영장실질심사' 직전에도 기자와 PD들에게 "비정규직 문제, 쌍용자동차 문제, 용산 참사 등에 대해 잘 보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근행 언론노조 MBC 본부장은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 유가족처럼 싸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파업의 결의들이 보도에는 얼마나 반영됐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8일 일일 브리핑에서 "방송 3사, 쌍용차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실태'에 눈감지 말라"고 논평했다. "경찰과 사측이 식수 반입을 막아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전하는데 그쳤고 식수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쌍용차 내부의 심각한 상황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는 언론 관련 법 관련 보도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언론악법' 저지 총파업에 나섰던 한국방송(KBS)는 파업 기간 오히려 언론 관련 법을 옹호하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KBS 내부에서도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파업 이후 KBS 기자협회와 노동조합은 보도위원회와 공정방송위원회를 통해 책임을 물을 방침을 밝혔다.
시민사회와 연대하지 못하고, 문제의식을 확산시키지 못하는 언론노조의 투쟁은 두말할 것 없이 '필패'다. 지금은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의 유·무효 논란을 다룰 헌법재판소에 시선이 쏠려 있지만 헌법 재판소가 '합법'으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재투표, 대리 투표' 때문에 언론 관련 법이 악법이 아닌 것처럼 설령 절차가 정당했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이 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헌재의 판단이 아니라 시민의 '분노'가 먼저여야 했다.
침묵하는 '민심'이 바라는 것은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에겐 언론 관련 법에 대항하고자 하는 뜨거운 분노가 있었는가. 언론노조의 프로그램에 따른 의례적인 파업은 아니었나.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나.
만약 언론 관련 법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어 방송 시장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거나, 각각의 방송사가 낙하산 인사를 통해 '친정부 방송'으로 개편됐을때 언론 노동자들은 '공정방송' 투쟁에 나서야한다. 보도와 제작에 개입하려는 방송 소유주와 정권에 맞서 일상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진성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은 "하반기 언론노조의 투쟁 쟁점은 '구조적' 문제에서 보도 내용에 대한 '내용적 문제'로 옮아가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민실위나 공방위 등의 투쟁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중·동에서 '자기 내면화'로 인해 보도 자율성 투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자본 권력이 차지한 방송 내에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확산됐을 때 이것이 초래할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와 PD 개인은 과연 진정성이 있었나. 파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공영방송의 기치를 지키기 위해 싸울 다짐을 하고 있을까. 소수자의 권익을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는 언론인이 될 각오를 했는가. 지금도 "조·중·동 방송과 다를 것 없다"는 비판을 받는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09년 하반기는 이들 방송이 '조·중·동 방송', '재벌 방송'과 다르다는 '차별성'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지난 1년 반 내내 여론조사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은 잘못'이라는 대답이 65%를 오르내렸다. 한나라당의 '날치기'의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조용히 언론노조의 투쟁을 지켜보고 있는 민심의 침묵이 자못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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