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대표님, 며칠 전에는 미디어법 통과와 관련,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MBC를 목청 높여 비난하셨더군요. 김동길 교수께서는 "날치기 통과는 과거 선배들의 '본'을 받아 좀 더 매끄럽게 해치웠어야" 했다며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어이 없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는데요, 이에 대해 당신들을 무뇌하게 추종하는 일단의 언론매체가 마치 교주의 계시를 전파하듯이 친절한 해설 등을 덧붙여 보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나라 오합지졸의 "와~!, 와~!"하는 의기투합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대표님과 추종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왕벌의 뒤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질주하는 벌떼들이 떠오릅니다. 아아, 그 모습 속에서는 무한한 연민의 정도 지울 수 없고요…. 우리가 누구입니까? 만물의 영장 인간이지 않습니까? 원래부터가 이렇다 할 사고능력 없이 여왕벌의 뒤만 따르게 되어있는 벌떼와는 달리, 우리는 적어도 사고능력을 지닌 인간이 아닙니까….. 이 부분에서 사고능력마저 무력화시키는 조 대표와 김 교수의 그 걸출하신 능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저는 불행히도 두 분의 추종세력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갑제와 그네들"의 모습 속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견해의 공존을 수용하는 다원화된 자유민주주의 한국을 확인하며 그나마 위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갑제와 그네들"은, 어찌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수혜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당신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즉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 축에 대해서는 없어져야 한다며 궤변을 토해내고 계십니까? 온갖 고초를 겪어오며 어렵사리 이뤄 온 우리의 "열린 사회"를 왜 또 다시 당신들의 "닫힌 사회"로 전락시키려 그토록 발악한단 말입니까?
조 대표께서는 "KBS와 MBC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악의 유산)으로 남길 만한 조작과 선동을 되풀이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세력엔 적대적으로, 민족반역자 김정일 정권엔 호의적으로 대하는 등 언론의 정도에서 완전히 이탈, 선동방송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들을 공영방송이라고 위장했다"고도 했습니다….
음, 실례가 안 된다면 반사적으로 뇌리에 떠오르는 '정신착란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정신착란적, 즉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와의 정상적인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많은 분들이 '조갑제와 그네들'의 주장에 더 이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겠죠.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저는 아직 내공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기만 한걸요. 그래서 또 다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하나의 사회를 이른바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라는 두 개의 유형으로 구분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이렇게 되어 있군요. "닫힌 사회는 본능에 가까운 습관이나 위압, 제도에서 유래하는 사회적 의무에 따라 안으로는 개인을 구속·위압하고, 밖으로는 배타적이며 자위와 공격의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폐쇄적 사회를 뜻한다. 열린 사회는 적대적 폐쇄성을 초월한 무한의 개방적 사회로서, 인류애로 전 인류를 포용하려는 사회다."
이전에 제가 거주하고 있는 이 곳 중국에서 '국가주의와 한국'이란 주제로 상하이의 미국·영국·싱가포르계 국제학교와 중국학교에 다니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특강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특강이 끝난 뒤, 우리의 미래들은 우리 한국과 한국 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볼멘소리를 쏟아냈습니다;
"한국의 신문·방송을 보면 지나치게 나와 우리의 이익에만 치우쳐져 있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윈-윈'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제로섬' 사고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밖에서 교육받고 있는 해외의 우리 청소년들은 한국 안에서 교육받고 있는 '한국 토박이'와는 약간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우리 아이들이 쏟아 놓은 불만의 이면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면, 살벌함이 느껴진다.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어 자기만이 옳다고 하니 대립과 충돌은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려운 역사를 겪으며 지난하게 자라온 어른들의 성장 환경에 비춰볼 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나'와 '나의 것'만 고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한 학생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만 내걸리면 '벌떼'처럼 뭉치며 하나가 돼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우리 사회 일부의 모습에서 섬뜩함마저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벌떼 민족주의'는 영어로 'Bee-Mob-Peoplism'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Mob'이란 단어에는 '대중'이나 '민중'이란 뜻과 함께 '폭도'란 뜻도 있으니까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한 학생은 이와 같은 '신조어'를 만들고 나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경향을 보면 자기만이 옳다는 그 과도함으로 인해 그 추종세력이 '폭도'화할 우려도 있다는 것이죠.
베르그송은 '닫힌 사회'의 결합 원리를 "정지된 관습이나 위압, 명령 등에 따라 개인을 사회에 복종시키려는 불변의 비인격적 닫힌 도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사회에선 "가족이나 도시, 국가도 타인을 선별해 배척하며 거부와 투쟁을 전개"합니다.
반면에 '열린 사회'의 결합 원리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생명의 근원에 감촉되는 환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서려는 인류애적 열린 도덕"이라고 합니다. 즉 "가족이나 사회, 국가의 '닫힌 도덕'을 초월한 사랑으로 맺어진 인류사회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죠.
"조갑제와 그네들" 님, 어떻습니까.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그리고 "벌떼 민족주의"…. 이를 보고 뭐 좀 느끼시는 것이 없으신지요?
아, 조 대표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래도 저와 다른 당신들의 견해도,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또 하나의 '존재하는 주장 그 자체로' 받아들인답니다. 그리고 이 곳 중국에서 당신들의 견해도 모두 제시하며 학생들이 서로 논의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계발해 나가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요, 학생들에게 서로 다른 견해와 주장을 가감 없이 제시하였는데요, 그들의 반응은 "조갑제 씨는 너무 위험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벌떼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를 '닫힌 사회'로 몰고 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참, 안타깝네요.
조 대표께서는 "KBS와 MBC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악의 유산)으로 남길 만한 조작과 선동을 되풀이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퍽 다른 것 같았습니다. "독재 시대와는 달리 더욱 더 다양하고 다원화된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 주는 것에 대해 이렇게 폄하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다시 '흑 또는 백' 만이 존재하던 그 암울했던 시기로 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단순무지한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대립과 충돌만 난무하던 그 암울했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인가요?" 라는 것이죠.
또한 당신께서는 "대한민국 세력엔 적대적으로, 민족반역자 김정일 정권엔 호의적으로 대하는 등 언론의 정도에서 완전히 이탈, 선동방송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들을 공영방송이라고 위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동일한 언론사의 동일한 언론 보도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 아연하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고하면 그렇게까지 인식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대단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식 차이야, 물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나, 제대로 인식하는 절대 다수의 인식과 지나치게 동떨어지게 인식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맞는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것은…. 음, 이를 두고, 이러한 자들을 두고, 일반적으로 무엇이라고 일컫던가요....
아울러 조 대표께서는 "MBC보다 공동체에 더 위험한 조직이 한국에 있는가…."라며 "선악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국민들이 크게 화를 내어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고 거듭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조 대표께서 한국에서의 활동만으로도 너무 바쁜 나머지 한국 밖의 실정,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너무 낙후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들어드릴까요? 공산사회주의 중국에서 한반도를 전공으로 하는 학자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MB 정권 집권 후의 한국 언론의 자유민주" 등에 대해 견해를 교환한 바 있었습니다. "한국 언론이 무참히 쓰러지고 있다"는 비관적인 저의 견해에 대해 이들은 "일제 치하의 '민족말살정책'을 연상시킨다" 고 하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MBC가 고군분투하며 자유민주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라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당신께서 본시로 하고 있는 '반공'의 국가 중국에서의 인식이 이럴진대,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나 국제사회에서의 인식이야 굳이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단선적이고 편협한, 아직도 선과 악의 양분법적 구태의연한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당신들이 갈구하는 대한민국을 바라지 않습니다. 인식능력의 현저한 결여로 인해 온전한 "대한민국 세력"과 "대한민국" 그 자체에 엄청난 누를 끼치고 있으면서도, "대한민국 세력"이란 단어를 오`남용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턱 없이 부족하나마 제 몸이라도 던져 조국의 "정신적 독극물"이 되고 있는 "조갑제와 그네들" 앞에 "대한민국 수호 세력" 이 되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십 수년의 타국 생활 속에서 '조국'을 절감하게 된 저로서는 차마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제발이지, 저와 같이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지된 채 닫혀진 당신들의 일그러진 사고를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 들이밀려 고집한다면, 그 때는 정말 당신들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크게 화를 내어 해결하는 수 밖에…."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벌떼 민족주의라는 신조어를 들고 나온 그 학생이 "조갑제와 그네들"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할까 궁금합니다. 모르긴 모르지만 그의 성격을 고려할 때, 아마도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입고 있는 "조갑제와 그네들"이여, 당신들은 자유 민주주의에 살 자격이 없다!" 이거나, 혹은 "MBC마저 장악하여 언론사상을 통제하려 함은, '반공'을 부르짖는 그네들 스스로가 공산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자기당착에 불과하다. 그대들이여, 공산사회주의권에 가서 살아라!" 라는 명쾌한 일갈은 아닐까요….
"조갑제와 그네들"은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미명에 있을 적에, 이러한 사람들도 있어서 우리를 깨우쳐 주는데 역설적으로 이바지 하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저의 속상함은 속상함이고, 당신들께 사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우리 시민을 각성시키는 선각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중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이제는 자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깨어 있는 시민들이 당신들을 좌시할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