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미디어법안은 지역 언론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서울 쪽만 정책과 법의 대상이요, 지역은 서울에서 결정하면 당연하게 뒤따라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면 지역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지역 언론은 식민지인 것이다. 대화와 소통의 부재 탓이다.
한나라당안은 지역 언론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시장을 부정하는 불법적인 무가지 살포나 경품 살포를 제한하는 신문고시를 폐지하고, 그러한 반시장적 장치들이 활개를 치도록 만들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환히 드러난다. 정치 권력이나 지배 세력에게 있어서 다양한 매체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재생산하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헤게모니를 행사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든 매체의 수를 줄이려 하고, 자기들이 장악하고 있는 소수 지배적 매체의 지배력을 강화하려 한다.
조·중·동에 독점된 시장이 '시장'인가?
오늘날 우리나라 지역에는 시장이 없다. 시장원리가 배제되고 있다. 지역신문과 방송은 독자적 시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신문시장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유력 일간지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 독점은 시장 원리를 부정하며, 그것은 더 이상 시장이 아니다.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시장점유율이 지역신문이 아직 가장 튼튼히 자리잡고 있다는 부산에서마저도 20%를 넘지 못한다. 다른 지역은 보통 5%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서울 대형신문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대형신문을 제외한 서울에서 발행되는 다른 신문들은 지국이나 보급소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도 마찬가지다.
대형신문들의 신문시장 지배는 시장원리가 작동된 결과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신문들의 자유경쟁이 아니라 전적으로 과다경품이나 무가지 등 반시장적 요소들에 따라 시장원리가 파괴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지역신문의 질이 서울에서 발행되는 대형신문들에 비하여 질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지역신문들은 서울 대형신문들에게 자신의 고유시장을 빼앗기고 가위눌린 채로 기업으로서의 존립 가능성 자체가 문제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도 지역신문들은 부족하나마 지역사회의 공기로서 작동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지역신문의 규모 축소와 난립은 다분히 서울 대형신문들이 벌인 지역신문시장에 대한 불법적이고 무차별적인 공세에 의해 시장원리가 파괴된 데 따른 결과다. 지역신문은 다만 대형 신문들이 대량으로 살포하는 경품이나 무가지에 대항하여 같은 규모로 살포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하면 지역신문시장에서 저질의 독점체제가 형성되면서 지역신문이 가사상태에 빠져 든 것이다.
한나라당 미디어법에는 '지역신문'이 없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은 지역신문시장에 시장 원리가 관철되도록 하는 정책적 방안이 없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대형신문들이 마구 뿌리는 경품이나 무가지에 합법적인 길을 터주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신문시장에서 경쟁을 강화하고, 양질의 신문이 살아남도록 하는 방안이 아니며, 불법적 독점과 시장지배가 심회될 것이 뻔함에도 말이다.
매체시장에서는 다른 어떤 시장에서보다 자유경쟁원리가 작동되어야 한다. 좀더 많은 주체들이 시장에 참여하여 다양성을 실현해야 하며, 이들이 자유롭게 질적 경쟁을 하면서 질적으로 좀더 나은 사상과 이념과 정보가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나아가서 시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형 사업체의 독점을 규제하고, 다수의 작은 매체들이 살아남아 건강하게 다양한 사상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지역 언론의 생존은 한국 사회의 '건강'을 위한 보약
지역이 살아야 우리나라가 산다. 국가균형발전은 21세기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요소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이 중앙정부에 일방적으로 지배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미래 발전을 위해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도한 중앙집권과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살아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지역이 자기 에너지를 극대화하고 대외적으로 발현하는 데 있어 지역언론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지역언론의 정상적 생존과 작동은 한국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보약인 것이다. 미디어법은 지역신문에 독자적 시장을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시장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은 그것이 없고 오히려 거꾸로 가려 하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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