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은 1955년 창당 후 1993년 경 10개월을 제외하고는 줄곧 집권했던 자민당이 최초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미국에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 모두 일본 총선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아소는 민주당이 자민당에 보낸 X맨?
아소 총리가 총선을 8월 30일 치르기로 한 것은 자민당 내 타협의 산물.
자민당 주요 파벌의 대표들은 아소를 간판으로 총선을 조기에 치른다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총리 및 자민당 총재를 바꾸거나 최소한 총재 얼굴만이라도 교체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9월까지 버티다가 총선을 치르길 원했다.
반면, 아소 총리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도쿄(東京)도 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이틀 뒤인 14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8월 8일 총선을 치르는 방안을 검토했다. 당내 반대파들이 움직일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고, 자신의 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자민당 간사장, 연립여당 공명당의 오타 아키히로(太田昭宏) 대표가 13일 아소와 만났다. 그리고 양측이 원하는 날짜의 중간 지점인 8월 30일 선거를 하는 것으로 아소의 양보를 얻어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야당) 대표의 정치자금 관련 의혹을 쟁점화해 민주당의 표를 깎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득도 먹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제1당 되지만 과반 확보는 어려울 듯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지율 10~20%의 아소를 간판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자민당의 패배는 확실하다는 게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1과 1/2 정당 체제'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자민당은 55년 창당 이후 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다가 93년 한 차례 정권을 놓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선거 후에 소수정당들이 연합해 정권을 빼앗은 것으로, 자민당의 1당 지위는 유지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1당 자리마저 민주당에게 내주게 생겨 선거를 통한 최초의 정권교체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는 그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민주당은 4월 26일 이후 실시된 나고야 시장, 사이타마 시장, 지바 시장, 시즈오카현 지사, 나라 시장 선거를 싹쓸이했다. 12일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는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아사히신문>이 12일 유권자 67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를 보면 중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에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이 46%를 기록, 자민당 후보를 찍겠다는 답변(19%)의 두 배가 넘었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긴다고 해도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진창수 연구위원은 "민주당 하토야마 대표가 얼마 전 방한해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70%라고 했는데 지금은 100%인 것 같다"면서도 "민주당이 크게 이길 경우 중의원 480석 중 230석을 가져가고, 자민-공명도 최대 230석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경우 기존 야당들은 민주당 중심의 연합에 붙어야 더 많은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다"라며 "특히 공산당 같은 곳이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민주당 단독 정권 △민주당을 축으로 하는 제3의 정권 △자민-민주 '대연립' 등 세 가지 가능성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체력으로 단독 과반수를 얻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과 나머지 세력 또는 자민당 분열 세력이 정권을 잡는 두 번째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왼쪽)와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 ⓒ로이터=뉴시스 |
대북정책 변화는 '갸우뚱'
하토야마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아시아에 대해 협조 노선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도 비교적 유화적이라고 '비춰지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그토록 강경했던 일본의 대북정책은 변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총리가 구축해 놓은 한일 보수연대는 무너질 것인가? 오바마 행정부는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북한에 접근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일본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민주당이나 자민당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큰 변화를 예상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진창수 위원은 "80% 이상의 일본인들이 대북 강경책을 원하고 유엔 제재 및 대북 금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민주당이라고 다른 길을 택할 수 없다"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자민당과 다를 게 없어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은 대외정책을 건드릴 경우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냥 외무성에 맡겨둘 것"이라며 "대신 관료개혁, 규제완화 등 경제개혁, 소비세 인상 동결, 불필요한 예산 삭감 등 국내 정책에서 자신의 색깔을 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공회대 일본학과의 권혁태 교수도 "민주당에는 자민당보다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대북정책을 급격히 바꿔서 (참의원 선거에서) 표를 잃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따라서 대북정책의 기본 기조는 단기간 바꾸지 않을 것이고 바뀌어도 서서히 바뀔 것이기 때문에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며 "6자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소 약화될 수는 있지만, 그 기본 요구를 접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움직이면 달라질 수도"
이원덕 교수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이념·노선·정강·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과잉기대는 금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대북정책이 변화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봤다.
이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대세를 잡지는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민주당이 그간 자민당의 외교를 비판해 왔고 더군다나 정권교체의 다이나미즘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민당이 하지 않았던 걸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 자체의 동력으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겠지만, 상대 행위자인 북한 혹은 미국의 태도가 민주당 대북정책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전망이었다.
그는 "자민당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북한이 일본의 정권교체를 활용하기 위해 유화 노선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 직접 교섭이 어느 정도까지 가느냐도 북일 국교정상화 등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리더십을 누가 잡느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역사 문제는 잠잠해질 듯
한편, 한일관계 일반에 대해서는 민주당 정권이 자민당보다 유화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진창수 위원은 "민주당의 오자와 전 대표나 하토야마 현 대표 모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비판적이었고 재일교포 참정권 문제에서는 유화적이었다"며 "역사 문제가 수월하게 풀려 한일관계를 발전시킬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원덕 교수도 같은 견해였다. 다만 그는 "민주당은 여러 파벌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자민당과 완전히 다른, 리버럴하거나 평화지향적인 대외정책을 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진창수 위원도 "민주당에는 헌법 개정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세력도 있는 등 목소리가 다양해서 하나로 모아지기 힘들다"며 "한일관계가 정부 차원에서는 진전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른바 '망언'은 계속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은 지금 '유엔 동의 없이 자위대 파견 없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정권을 잡으면 달라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