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벼랑 끝' 마다않는 남과 북, 게임하려면 제대로 하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벼랑 끝' 마다않는 남과 북, 게임하려면 제대로 하라"

[한반도 브리핑] '사람 사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지난 6월 19일 한국의 신문 지면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내세워 현존 국제질서를 해코지하려는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국제적 공조로 제재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심지어 응징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비장한 이야기가 하나였다면, 북한과의 월드컵 본선 동반 진출에 대해 '한민족의 쾌거'라며 자축하고 있는 이야기가 또 다른 뉴스였다.

같은 날짜의 신문에 불과 몇 장의 지면 차이를 두고 북한은 이렇게 사뭇 다르게 비춰지고 있었다. 21세기 한반도의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북한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모기장'과 '어륀지'

분단체제 혹은 '1민족 2국가 체제'라는 무덤덤한 사회과학적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분명, 한국과 북한은 1945년 광복 이전 까지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서로 다른 정치적 길을 걷게 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도, 역사적 교훈에 대한 대응책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대표적으로 19세기 제국주의 침탈 과정에서 식민지로 전락했던 사실에 대한 반성과 교훈도 판이하다.

당시 노도(怒濤)와 같은 제국주의 세력 앞에 왜 나라를 잃어야 했던가를 질문하면 아마 북한은 "외세에 대응할 수 있는 주체적 힘을 갖지 못한 채 여기저기 외세를 끌어들인 무기력한 지배세력의 탓"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당시 세계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단견과 무능"에서 대답을 찾을 것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 그런 역사 해석의 차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들만의 논리인 강성대국론과 문을 안으로 꽁꽁 걸어 두어 외부의 어떤 요소도 북한 사회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는 폐쇄적 대응 태도로 드러난다. 이른바 '모기장' 논리다.

반면, 한국의 대응 논리는 세계화 추세로의 적극적 편승으로 나타났다. 세계적 표준을 수용하고, 세계적 조류를 선도적으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다급한 심리상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영어교육 확대에서 빚어졌던 이른바 "어륀지" 논란일 것이다.

우리는 모기장 논리에 대해 북한의 자폐적 논리구조를 증폭시켜 왔던 원인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런 만큼 어륀지 논란은 지나친 쏠림현상과 19세기적 문명개화론의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씁쓸하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모기장과 어륀지로 상징되는 그 차이만큼 남북한 간 심리적 거리도 멀어져 있다. 분단 60여 년, 문화도 가치도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점과 정책적 결정 속에서 조형되어 왔다. 전쟁을 치르면서 지독한 불신과 증오도 키워왔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간(inter-state) 관계에서 우리에게 북한은 분명 또 다른 국가다. 그냥 다른 국가가 아니라 우리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국가다. 때론 경쟁의 대상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최근의 불량배 같은 행위에 분노하기도 한다.


▲ 지난 6월 15일 평양에서 10만 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1874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신화통신=뉴시스

'국가 중심론'과 '민족 중심론'의 불가피한 공존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민족 문제다. 민족(nation)이란 개념과 화두를 벗어버리게 되는 시대에 이르러 남북한이 오로지 개별 국가와 개별 국가의 관계로만 존재하게 된다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겠으나, 21세기 초엽 불행히도 우린 아직 근대의 그늘에 살고 있다.

근대 국제정치의 핵심 행위자는 민족국가(nation-state)다. 민족과 국가를 일치시키려는 정치적 동력이 민족주의였다. 그런 점에서 남북한 관계는 미완의 근대성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문제다.

우리 사회에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은 그래서 생겨난다. 요컨대 국가 중심 시각(state-centric perspective)과 민족 중심 시각(nation-centric perspective)이 그것이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신문의 지면에서 북한에 대한 응징과 월드컵 동반진출 쾌거에 대한 찬사가 나란히 놓이는 것도 그런 연유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에게 국가 중심 시각과 민족 중심 시각이 병존한다고 해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연이은 북한 도발이 짜증나기도 하지만, 남북한 합동응원단이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광경에서 가슴 저릿한 감정을 갖는 것도 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전체를 보면 이 두 가지 시각이 단순한 공존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남갈등의 원천이 되고 사회적 분열의 요소가 된다. 반통일주의자, 수구꼴통이라는 비아냥과 '친북 좌파 빨갱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들이대며 서로를 손가락질하게 만든다. 이 같은 두 다른 시각의 공존을 대립적으로 증폭시킨 것에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적으로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되레 대립 관계를 부추겨 왔던 정치적 이익계산법이 있다. 개인 영역에서 병존하는 두 가지 시각은 사회적 영역에 이르면 좀처럼 회색지대가 용인되지 않는다. 대립을 중화(中和), 또는 해소해보려는 정치적 해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게임의 방식이 아니다

남북관계는 두 정권이 정책으로 대응하는 관계다. 그러나 정책만이 남북관계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민족 문제가 정책적 범주에 빠져 있다고 해서 결코 덜 중요하지는 않다.

민족이나 통일문제가 단순히 감성 영역만의 일은 아니다. 역사의 강물을 도도히 흐르게 만드는 동력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구조, 또는 담론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민족 중심적 시각이 이 시대 담론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국가 중심의 정책적 접근만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지는 못한다. 설사 국가 중심적 시각으로 본다 하더라도 국가 이익이 정권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남북한 정권은 치열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적대감을 극도로 증폭시키면서 이번에야 말로 본때를 보이겠다는 결의가 서로 대단하다.

김정일 정권은 체제와 정권의 존립 자체를 두고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 인민들을 볼모로 한 위험스러운 게임이다.

남쪽의 이명박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북한을 압박하는 '승자확인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간 북한이 벌여왔던 무모한 도발책동에 대해 이번에는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양측 모두 벼랑 끝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상호파멸일 뿐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 게임에선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굴복도 없다. 상대방에게 퇴로를 열어주지 않는 힘겨루기는 파국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게임을 하려면 전략적 마인드가 필수적이다. 분노나 증오는 전략이 될 수는 없다. 협상국면으로 되돌아가야 할 기회가 없는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게임에 임해야 한다.

또 게임을 벌이더라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한반도 땅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이고 인민이자, 동시에 민족이다. 지금 정치적 권력을 가진 층들은 그들 '사람들'로부터 잠정 기간 권력을 위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는 정치권력을 가진 집단들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도외시하고는 어떤 정권도 정책이나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 그것이 남북한 게임을 끝내 파국으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사람이 살고, 민족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