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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국 들러리' 정책과 테러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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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국 들러리' 정책과 테러 공포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83> 한국인 노린 테러 막으려면

이즈음 컴퓨터를 켜지 않고 하루를 산다는 것이 참 어렵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끼고 지내다시피 한다. 15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2009년 초여름의 한국과 미국 주요기관을 강타한 이른바 '분산서비스거부'(DDoS)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이버 테러와 디지털 전쟁(digital war)

컴퓨터 공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가리켜 '사이버 테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08년 미 정부 컴퓨터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약 5천5백건으로 2007년에 비해 40%나 늘어났다. 해킹이란 사이버 공격을 피해가는 안전지대는 이제 더 이상 없는 세상이 됐다.

"알 카에다의 메시지를 퍼뜨릴 비데오 편집자, 작가, 인터넷 전문가를 찾습니다. '세계 이슬람 미디어전선'에게 이메일 보내기 바랍니다" 꾸며낸 얘기가 아니다. 2005년 10월 몇몇 전투적인 이슬람 웹 사이트들에 이같은 광고문이 떴다. 알 카에다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해 그들의 투쟁대의를 선전하고 투쟁을 펴나가겠다는 뚜렷한 의사표시다.

2001년 9.11 전만해도 웹 사이트를 운영할 수 있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은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전문 인력이 크게 늘어나 이른바 디지털 전쟁(digital war)을 벌이는 수준이 됐다.

9.11 테러사건 바로 뒤 도로시 데닝 조지타운대 교수(컴퓨터공학)는 미 사회과학연구위 심포지움에서 '다음은 사이버 테러(cyber terror)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녀는 9.11 테러를 이을 대형테러가 사이버 테러의 형태로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누가 한국과 미국을 사이버 테러했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알 카에다와 동조세력은 컴퓨터 해킹을 '전자(electronic) 지하드'라 여긴다. 미국의 주요 정부기관이 해킹을 당해 대형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앞으로도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됐다.

최근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사이버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 누구냐가 문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물증도 없이 북한을 사이버 테러의 범인으로 몰았다.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뒤덮어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높은 터에 뜬금없이 북풍(北風)을 일으켜 더위를 식혀보자는 뜻인가. 아니면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 이명박 정부에 이로울 것이라 판단했을까. 참으로 답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 이란 혁명 30주년을 맞은 테헤란 거리는 반미 정서를 담은 그림들로 넘쳐났다. 한국이 미국 들러리를 서는 모습에서 벗어나 독자외교를 펴는 날, 한국을 겨냥한 물리적 테러나 사이버 테러가 그칠 것이다. ⓒ김재명

예멘 테러의 비극성

사이버테러도 문제지만, 더 걱정되는 일이 있다. 올여름을 맞아 많은 한국사람들이 나라 바깥으로 바람을 쐬러 나갈 텐데, 운이 없을 경우 만에 하나 테러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특히 반미정서가 강한 이슬람권 지역으로 떠나는 한국인 여행객들은 주변을 잘 살펴가며 말과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상황이 왜 이리 옹색해졌지를 짚어보자.

멀리 중동의 '예멘'이란 작은 나라에서 한국인들을 겨냥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올해 잇달아 터졌다. 지난 3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폭탄테러에 희생됐고, 6월엔 한 국제의료봉사단체의 요원으로 활동하던 엄아무개(34. 여)씨가 테러단체에 납치된 뒤 죽임을 당했다. 3개월 사이에 5명의 한국인이 잇달아 희생당한 일이라서 더욱 놀랍고 가슴 아프다.

예멘에서 성실하게 의료봉사 활동을 폈던 엄씨는 생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스스로를 '순례자'(pilgrim)이자 '여행하는 영혼'(travelling soul)이라고 불렀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시인 윤동주의 시도 옮겨 놓았다. 이로 미뤄, 그녀는 맑고 열린 마음을 지녔을 걸로 짐작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엄씨와 다른 한국인 관광객 4명의 비극적인 죽음에는 빈 라덴을 따르는 자생적 저항세력이 관련돼 있다고 한다. 이라크와 아프간 현지취재 때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슬람권 지역에선 이교도들이 들어와 선교를 하는 데 대해 커다란 반감을 지니고 있다. 9.11 뒤 미국이 군사력으로 현지 정치지형을 강제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비극과 후유증이 생겨났었다.

그런데도 일부 한국 종교인들은 오히려 미군의 이슬람권 지역 주둔을 방패삼아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 극단적인 보기가 일부 보수 개신교 사람들이 벌이려다 아프간 정부의 반대로 취소됐던 '2006년도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였다.

선교 아니라 봉사 갔는데…

여기서 의문이 생겨난다. 이슬람권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기독교 선교를 하러 간 게 아니라 의료봉사활동을 갔던 그녀가 왜 테러의 대상이 됐을까. 그녀뿐 아니다. 한국인 관광객 4명도 기독교 선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야말로 '비정치적'인 관광에 나섰을 뿐인데도 테러를 당했다.

지도자나 군인도 아니고,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보통사람들을 왜 죽였을까. 단지 운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넘길 일일까. 혹시나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손발 맞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던 친미국가라서, 한국인은 모두 죽여 마땅하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빈 라덴 지지하는 자생적 반미 조직들

이런 참극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예멘의 혼란스럽고 민감한 정치상황부터 살펴봐야 한다. 21세기 지구촌에서 둘로 갈린 분단국가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한반도가 유일하지만, 예멘도 1980년대말까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북예멘과 사회주의 체제의 남예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990년 남북 예멘은 평화적으로 통일됐지만, 남북 사이의 차별이 문제가 됐다.

1994년 결국은 전쟁이 일어났고, 인구에서나 경제력에서 앞선 북예멘이 남예멘을 힘으로 흡수하는 형식의 재통일이 이루어졌다. 그 뒤로도 남예멘 출신 사람들 사이에선 북예멘의 차별정책에 불만을 품고 무장봉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예멘에는 또 다른 부류의 투쟁가들이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의 반미 지하드 투쟁이념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미국 정보기관이 주장하듯 알 카에다 관련자들일 수도 있지만, 예멘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난 자생적인 반미 조직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한국인들에 대한 테러는 친미 노선에 기울어 있는 예멘 중앙정부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전술적 필요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보여진다.

예멘 반정부 조직의 주공격 목표는 물론 미국(미군, 미 대사관, 미 기업인들)이다. 2008년 3월과 8월 미 대사관이 박격포와 폭탄차량 공격을 잇달아 받아 모두 21명이 죽임을 당했다. 같은 해 4월엔 미 석유회사 직원 거주지가 로켓 공격을 받았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1년 전인 2000년엔 아덴 항구에 정박중이던 미해군 구축함 USS 콜 호에 폭탄을 가득 실은 보트가 부딪치는 자살폭탄테러로 말아암아 미 해군 17명이 죽었다.

9.11 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출신지가 바로 예멘이고, 이곳에는 빈 라덴의 반미-반서구 투쟁노선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반미저항 활동의 에너지가 다른 곳에 비해 강한 곳이 예멘이다. 바로 그런 곳에서 한국인들이 잇달아 희생돼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국을 보는 중동의 싸늘한 눈길

지난 3월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라는 한 자생적 반미투쟁조직은 한국인 관광객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예멘 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들의 테러가 '이슬람과의 전쟁'에 참여한 한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들은 성명에서 "이번 공격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한국이 행해온 역할과, 한국 관광객들이 무슬림의 도덕과 신앙을 타락시키는 데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중동지역에 취재를 갈 때마다 안타깝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그곳의 적지 않은 사람들에 비친 우리 한국은 중동지역 패권 장악을 통한 미국의 중동프로젝트(석유이권 챙기기, 이스라엘 밀어주기)를 위해 군 병력을 보태주고 손발을 맞추는 들러리다.

따라서 중동 이슬람지역에서 벌어지는 한국인에 대한 테러와 안전문제는 한국의 대외정책과 관련된 큰 틀에서 봐야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친미일방주의 정책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뒷전이고 '위험지역 여행 제한조치' 같은 방안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올해 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침공 취재로 현지에 갔다가 하루걸러 한번 꼴로 "위험하니 이제 그만 나오라"는 외교통상부 쪽의 독촉 고문(?)에 시달린 적이 있다.

2009년 예멘에서 벌어진 비극이나 2004년 이라크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던 김선일씨의 비극은 테러의 희생자들이 '위험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대중동정책이 미국을 따라가는 모습에서 한걸음 비껴나 있었다면, 그런 비극들은 막을 수도 있었다.

한국이 미국의 이슬람권 침탈에 들러리를 서는 모습에서 벗어나 독자외교를 펴는 날, 한국인을 보는 중동인들의 눈길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고 한국인 여행자를 노린 물리적 테러는 물론이고 이번 7월의 DDoS 공격처럼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사이버 테러'도 그칠 것이다.

*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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