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은 신문-방송 겸업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은 시행령을 통해 거대재벌의 방송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를 획책하는 '언론장악법안'은 족벌신문과 거대재벌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같은 지상파 방송의 지분을 각각 20%까지 소유하게끔 한다. 또 YTN 같은 보도전문채널과 지상파방송과 같은 역할을 하나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통해 보는 종합편성채널은 소유지분을 49%까지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도 20%까지 개방하여 뉴스를 보도하고 논평하도록 하려고 한다. 또한 방송법이 규정한 최대주주의 소유한도 30%도 49%로 확대하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조-중-동의 방송소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친정권적-정파적 보도행태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신문시장을 지배하는 친여지 3사가 방송까지 소유하면 여론독과점에 의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사실도 잘 아는 편이다. 하지만 재벌의 방송소유에 따른 구체적인 폐해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재벌방송이 여론조작-여론독점을 통해 사회-경제정책의 방향을 오도-왜곡함으로써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된다. 지역간 발전격차도 더욱 커지고 환경파괴와 농업붕괴가 더욱 가속화된다. 종국에는 시장축소로 인해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된다는 사실 등을 말이다.
'이익 지상주의' 재벌 방송이 '공적 가치' 생각할까?
한국 재벌의 특징은 다계열-다업종이다. 수직적-수평적 독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연관산업의 생산, 저장, 유통, 판매에까지 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전 업종에 걸쳐 사업영역을 확장함으로써 부품산업인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해한다. 재벌 기업의 중복-과잉투자로 인해 전 업종에서 과당 경쟁이 유발되어 집단부실화되었다. 1986, 1987년 산업합리화 조치라는 미명 하에 국민부담으로 네 차례나 실시된 부실기업 무더기 정리가 그것이다. 결국 재벌 기업의 집단 부실화는 금융 산업의 집단 부실화로 이어져 1997년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KBS, MBC가 공과는 있지만 소유 구조가 공적성격을 지녔다는 측면에서 외부 비판에 대해 비교적 수용적이다. 최소한의 공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맹목적 이윤추구를 자제한다. 거대 재벌의 자본 성격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족벌 신문과 거대 재벌을 어떤 형태로 결합한 방송을 만들지 모르나 투자 이익 최대화를 위해 공적 가치를 철저하게 무시할 것이 틀림없다. 광고 수주를 위해 시청률 제고에 매진할 것이다. 경쟁사들도 살아남으려면 가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선정성-오락성 경쟁으로 치닫고 방송의 가치인 공공성-공익성은 소멸된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을 유발하기 위해 노리던 3S(screen, sports, sex)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 기대하는 정권안보에 기여할 것이다.
총수 1인 독단에 이뤄지는 재벌 방송
한국 재벌의 조직 특성은 전제적이다. 혈연중심의 경영조직으로서 총수1인을 정점으로 하는 철저한 중앙 집중 체제다. 씨족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학연-지연에 근거하여 조직을 운영하는 족벌 체제다. 총수가 주재하는 업무 회의는 그야 말로 어전 회의와 다름없어 제식 훈련장 같다. 합리적인 토론이나 의견은 허용되지 않고 절대 복명만 있을 뿐이다. 이 처럼 의사결정이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아닌 기업주에 의해 독단적으로 이뤄지니 고용관계도 주종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재벌 방송에서 편성권 독립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기업주의 가치관이 가사 가치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 자본은 속성상 친정권적이니 정권의 나팔수가 될 수 밖에 없다.
재벌의 신문-방송광고를 보면 구체적인 상품광고보다는 이미지 광고가 많다. 상품 판매로 연결되지 않는데 그 같은 광고를 게재하는 그 이유는 언론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일종의 보험 같은 성격이 짙다. 사업상 유리한 기사는 키우고 불리한 기사는 줄이거나 죽이기 위한 것이다. 재벌총수가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사회문제화되면 언론은 상투적으로 나오는 수법이 있다. 경제상황이 나쁜데 검찰이 재벌 총수를 소환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위축론을 내세워 무죄를 주장한다. 이런 현실에서 재벌방송이 태어나면 방송은 재벌의 사업 방패막이로 전락한다. 필요하면 사업 경쟁자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하여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재벌은 방대한 조직을 두고 사회 전반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한다. 방송을 소유하면 훨씬 정확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 관료 집단과 정치 세력에 대한 압력수단으로도 이용가치가 크다.
재벌 방송의 '비정규직법 보도', '부동산 보도'를 상상해보라
모든 국가정책은 부정적-긍정적 효과를 동시에 수반하여 국가 구성원에 따라 이해가 엇갈린다. 따라서 모든 정책은 최대 다수 국민의 민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재벌 방송은 자기 이익 위주로 논리 왜곡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논평함으로써 정책 방향을 오도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환경-토지-산업-금융정책을 친자본 위주로 전환하는 데 방송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고 이것은 자본의 속성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하, 비정규직 고착화 등도 여론조작을 통해 반노동적 정책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반대세력을 이념으로 재단해 타격을 가하는 것은 이미 족벌신문이 수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토지는 공급이 제한적이어서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용에 관한 규제가 필수적이다. 그 동안 재벌들은 공동이익을 위해 산하 연구소와 경제단체를 동원해 농지-녹지해제를 주장해 왔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규제완화는 곧 돈이다. 방송을 나팔수로 동원해 토지규제를 해제함으로써 지대상승에 따른 불로이득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가상승 기대가 큰 수도권에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이뤄져 지역간 발전불균형은 더욱 확대되고 이에 따라 중앙집중화는 더욱 촉진될 것이다. 재벌의 이익은 극대화되지만 수도권의 도시문제는 더욱 악화되어 사회비용이 급증한다. 농지감소로 인한 농업붕괴는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반면에 재벌은 농산물 수입에 따른 이득을 향유한다.
재벌방송이 없는 상태에서도 재벌은 청치권력과 관료집단을 상대로 집요하게 로비를 벌려 도로,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 왔던 재벌에게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토지수용권과 특혜의 소지가 있는 부대사업권을 부여하고 있다. 거기에다 수요를 과대계상해서 발생하는 적자를 국민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다. 사회간접자본은 일반상품과 달리 이용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 국민 다수가 이용하는 공적영역에 대한 독점권의 허용은 독과점 규제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이런 현실에서 재벌이 방송마저 소유한다면 그 위력은 정치권력을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다.
'재벌 방송' 공적 영역의 '첨병' 삼으려
이명박 정부는 공적영역의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정치적 반대세력의 연대전선이 확충되고 있어 주춤하는 형국일 뿐이다. 먼저 공기업의 민영화이다. 공기업 중에는 단일기업의 향방만으로도 재계의 판도를 재편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기업들이 있다. 전기, 가스, 상수도, 토지, 도로, 주택 등을 담당하는 공기업들이다. 이들 공기업은 소유 부동산만도 그 규모가 방대하다. 무엇보다도 독점적 사업권을 가져 국민경제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공적영역을 사유화함으로써 파생할 폐해는 막대하다. 독점기업이란 점에서 먼저 가격인상을 추진하여 국민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재벌방송이 태어나면 먹이 사냥을 위해 해괴한 논리로 여론 몰이에 나설 것이 너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 의료로 산업으로 보고 사유화를 추진할 기세다. 일제고사를 통해 학생들을 일렬로 서열화하고 자립형 사립고를 세우고 병원 영리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 구성원은 누구나 보편적 교육-진료의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교육과 의료를 시장영역으로 편입해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자를 위한 교육과 의료를 통해 차별적 서비스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재벌 방송이 태어나면 숙원 사업인 공적 영역의 사유화에도 앞장 설 것이다.
재벌들은 전경련을 앞세워 지난 수십년간 이윤추구 대상의 확대를 위해 규제완화를 주창해 왔다. 역대정권에 이에 화답해왔으나 이명박 정권이 수용하는 자세는 가히 파괴적이다.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등등은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강화가 필요하다. 작년 가을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발단된 세계경제위기는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골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이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재벌 방송이 불러올 '디스토피아'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사회적 저항을 유발한다. 20세기 초엽 미국에서 대두되었던 사회개혁주의(progressivism)가 좋은 예다. 산업자본주의가 점차 독점형태로 발전하여 갖가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폐해를 야기하자 여기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그 결과 독점적 기업의 결합을 금지하는 반트러스트법이 강화됐다. 그 뒤 2차대전 이후에는 독일, 일본이 이 제도를 도입하여 오늘 날 한국재벌과 같은 기업집단이 없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다. 어떤 정파-자본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공공재인 방송을 재벌한테서 줘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재벌의 탐욕을 키워 나라를 망치는 사태가 일어난다. 빈부격차 심화에 따른 계층간 갈등격화, 지역간 발전불균형에 따른 국가경쟁력 약화, 이념간 대립심화에 따른 정치불안 등이 국가의 발전역량을 제약할 것이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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