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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남미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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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남미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화제의 책] 김영길 <남미를 말하다>

프레시안의 많은 연재물 중 '김영길의 남미리포트'만큼 한국사회에 여러 논쟁점을 던져줬던 시리즈도 드물 것이다.

머나먼 남미의 얘기가 한국에서 왜 그리 논란을 일으켰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남미를 보게 했기 때문이라는 걸 우선 꼽지 않을 수 없다.

그간 한국인들은 주로 미국이 짜놓은 프레임을 통해 남미를 봤다. 또한 그런 시각에 반기를 든 일부에서는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차베스 같은 남미 좌파의 상징들을 무턱대고 신성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한 평가지만, 둘 다 오류였다.

그런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 남미를 탁월하게 분석하고 소개하는 전문가들이 한국에도 없지 않지만, 대학이나 전문가집단의 울타리를 넘어 대중들과 소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김영길은 '남미리포트'의 이야기들을 재가공해 탄생한 <남미를 말하다>(김영길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서문에서 밝히듯 "가능하면 외부의 눈이 아닌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입장에서 그 실상을 객관적으로 전하려" 함으로써 남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한국의 대중들에게 분명히 던져 줬다.

▲ <남미를 말하다>(김영길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표지 ⓒ프레시안

아르헨티나에서 보내는 그의 원고를 최초로 읽는 독자로서 기억에 남는 글은 여럿이지만, 새로운 시각의 발견이란 측면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스페인 국왕은 아직도 중남미 제국의 황제인가"라는 2007년 11월 12일자 기사가 될 것이다.

당시 칠레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에서 있었던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과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설전을 다룬 이 리포트는 국내 다른 언론들의 보도와 확실히 달랐다.

주로 영미권 언론을 받아 쓴 다른 기사들은 '좀 모자란 반미주의자가 저지를 결례' 혹은 '남미 좌파들의 뻔한 해프닝' 정도로 사건을 그렸다. 그러나 김영길은 이 일을 스페인 국왕이 여전히 중남미 제국의 황제라고 착각하는데서 비롯된 남미 주권국들의 반발이라고 전혀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중남미가 수세기 동안 스페인 제국에 의해 지배됐다는, 중학생 수준의 역사 지식만 있다면 사건의 성격을 김영길식으로 규정하는 건 어찌 보면 상투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영길은 그걸 할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그가 198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후 20여 년 동안 남미 사람들의 생각을 체득했고, 그럼으로써 문제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프레시안의 데이터 이전 작업 때문에 안타깝게도 당시 그 리포트에 달렸던 댓글들이 없어졌지만, 외국 소식을 다루는 글에 그렇게 많은 독자들이 반응했던 것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독자들은 스페인 국왕을 일왕(日王)에, 차베스를 한국 정치지도자에 비유하며 논쟁했는데, 차베스가 잘했다는 평가 일색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 김영길은 2007년 12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직접 인터뷰했다. 차베스 인터뷰는 국내 언론 최초였다. ⓒ김영길
그 외에도 인상적인 글들은 수없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기득권 세력의 언론인 <RCTV>의 계약 갱신을 불허하며 시작된 논란에 관한 그의 글들은 '언론을 탄압하는 차베스'라는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뒤엎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남미 우파·기득권 언론에 관한 여러 리포트들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조중동' 보수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연상케 하며 많은 시사점들 던져줬다. 나아가 김영길은 작년 7월 보내온 "차베스와 MB정부 누가 더 민주적인가?"라는 글을 통해 <PD수첩> 수사와 차베스 대(對) <RCTV>의 '전쟁'을 비교함으로써 언론자유란 과연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2004년 6월 12일 시작된 남미리포트에서 의미 있었던 글을 열거하자면 한도 없이 계속될 터인데, "남미 대수로 실패로 본 대운하의 함정" (2008년 1월 5일), "MB, 7년전 실각한 아르헨 델라루아 정권을 아는가?"(2008년 5월 18일) 같은 글들이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김영길이 '남미리포트'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키워드로 꼽아 보면 과거사, 언론, 식민주의, 좌파, 차베스, 혁명, 미국, 교민 등이다. 김영길은 그러한 소재들이 남미 제국(諸國)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를 비교정치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20여 년 전 떠난 조국의 현실에도 끊임없이 대입해 봄으로써 보편성의 관점에서 한국과 남미를 읽게 해줬다.

<남미를 말하다>는 그가 5년간 매달려온 작업의 한 마디를 짓는 열매이자, 한국인들의 남미이민사(史)에 기록되어야 할 노작(勞作)임이 틀림없다. '남미리포트'의 단순히 묶어 놓은 게 아니라 구성과 집필을 대부분 다시 해 탄생한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도 의미 있다.

▲ 2005년 아르헨티나 마르 델 쁠라따에서 열린 미주 정상회의에서 취재중인 김영길 기획위원 ⓒ프레시안

책 내용에 관한 소개는 이쯤에서 줄이고, 이제부터는 김영길이란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952년 한국에서 태어나 언론사와는 관련이 없는 일반 직장에 다녔던 김영길은 86년 청운의 꿈을 안고 가족들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 후 타고난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자리를 잡은 그는 생업인 의류수출에 종사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그곳의 소식을 고국에 전하고 싶다는 목마름을 참지 못하고 한국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던 끝에 그는 1995년 마흔 넷의 나이에 <한경비즈니스>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객원기자 타이틀을 받아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아무런 지인도 없는 프레시안에 불쑥 이메일을 보내온 것은 2004년이었는데,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남미리포트는 현재까지 무려 342편에 이르렀다. 원고료 한 푼 받지 않으면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김영길과 신뢰를 쌓은 프레시안은 그를 기획위원으로 위촉했다.

한편, 김영길은 프레시안 기자 타이틀을 가지고 작년 5월 아르헨티나 외신기자협회장에 선출되어 세계 유수 언론사의 기자들을 부회장과 집행부로 '거느리며' 1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이민을 가서 정관계 고위직에 오른 케이스는 많지만, 100년 가까이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활동해 온 남미의 대국 아르헨티나에서 외신기자협회장을 했다는 사실 역시 한민족 이민사에 남을만한 기록이 될 것이다.

96년부터 아르헨티나 외신기자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라울 알폰신, 카를로스 메넴, 페르난도 델라루아,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등 아르헨티나의 전·현직 대통령과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대담을 가졌다.

또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엔리케 카르도소 브라질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 중남미 정치 지도자들과도 직접 대화를 나눴다.

한국인 이민자가 이처럼 많은 해외 지도자를 직접 만났다는 것도 희귀한 일일 터인데, 그 기록들은 프레시안 '남미리포트'와 <남미를 말하다> 곳곳에 실려 있다.

▲ 가족들과 함께 ⓒ김영길

그토록 부지런했던 그가 더 이상 원고를 보내오지 않은 것은 작년 12월부터였다. 외신기자협회장 일이 바빠서 그러려니 넘겨짚고 따로 연락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참 뒤인 올 4월 도착한 이메일 한 통은 너무나 우울하고 아픈 것이었다.

지난해 9월 큰 병이 발견되어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통증 때문에 정신을 잃을 때도 있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봤을 때의 심정은 참담했다.

따져보니 병이 발견된 이후로도 그는 15편 가까이 되는 글을 보냈다. 그렇게 한 편이라도 더 쓰려고 고투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의 글을 성의 없이 처리했다는 자책감이 떠나질 않는다. 그 기간, 과거에 비해 더 자주 글을 보내고 있었다는 '이상 현상'을 왜 간파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추정컨대 <남미를 말하다>의 원고 마무리 작업도 그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15년 가량의 취재 활동, 그 세월의 땀과 노력이 녹아 있는 책이 나왔지만, 그는 2~3권만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전하는 것으로 출판의 감격을 대신했다.

모쪼록 그 몇 권의 책이 김영길의 병마를 쫓아내는 신비의 특효약이 됐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남미리포트를 기다리는 프레시안 독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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