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을 볼 때 만족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세상사를 균형 있게 전달해 준다기 보다는 편파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정치권만 동네북이 아니라 언론도 이에 못지않다. 나라가 잘 안 되는 것이 정치 탓이기도 하지만 언론 탓도 크다는 비난을 단칼에 뿌리치기 어렵다. 정치와 언론은 동전의 양면이다. 언론이 정치적 의사형성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정치와의 밀접성을 부인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단독국회를 소집하자 서거정국으로 한 달 여 미뤄졌던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싼 여ㆍ야간 충돌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문제의 언론관계법 개정안은 지난 2월 25일 국회문방위에 기습 상정된 22개 법안 중 3당 원내대표간 합의로 처리가 미뤄진 18개 법안이다. 내역은 신문법 개정안 7개, 방송법 개정안 3개, 인터넷 멀티미디어법 개정안 2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6개다. 여러 가지 내용이 담겨 있지만 논란의 핵심은 일간신문사와 재벌의 뉴스방송 진출 허용 여부, 방송의 간접광고 허용여부 등이다. 이와함께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과 게시판 본인확인제의 확대, 포털사업자 등에 대한 불법정보 모니터링 의무 부과 및 불법정보의 범위 확대 등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골자도 쟁점 사안이다.
현행법도 '방송 경영'을 금지하는게 아니다
먼저 일간신문의 방송 겸영과 소유를 허용하는 문제를 보자. 현재는 일간신문사가 지상파방송ㆍ종합편성 방송ㆍ보도전문 편성방송을 겸영하거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지상파방송이나 종합편성방송ㆍ보도전문방송은 한마디로 뉴스를 다루는 방송(이하 '뉴스방송'이라고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간신문사가 뉴스방송사를 겸영하거나 소유하면 여론 독과점을 초래한다는 것이 현행법상 금지의 취지이다.
일간신문사는 뉴스방송 외에는 케이블방송(SO), 뉴스 외의 영화ㆍ오락ㆍ교양 등에 관한 방송채널(PP), 위성방송을 겸영할 수 있고, SO와 위성방송의 지분을 33%까지, PP의 지분을 100%까지 소유할 수 있다. 즉 여론 형성과 밀접하지 않은 분야를 다루는 방송은 현행법 하에서도 일간신문사가 폭넓게 진출할 수 있다. 중앙일보사가 95%의 지분을 가진 중앙방송을 통해 Q채널 ㆍ히스토리채널 ㆍ J골프채널을 운영 중이고, 한국경제신문이 한경TV에, 코리아헤럴드가 동아TV에 출자하고 있는 것 등이 그 예다.
재벌, 즉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지난해 연말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3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해당 재벌의 범위가 축소됨)인 대기업도 뉴스방송의 겸영과 지분소유가 일간신문과 같이 금지되어 있다. 재벌은 뉴스 외의 방송채널(PP) 소유에 관하여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 점은 일간신문과 같지만 케이블방송 소유가 100% 허용되고 위성방송사의 지분을 49%까지 가질 수 있어 일간신문보다 규제를 덜 받는다. 일간신문사와 재벌의 뉴스방송 진출이 금지되고 있지만 재벌주, 일간신문사주 등의 개인과 자산총액 10조원미만인 재벌 아닌 기업은 뉴스방송사의 주식을 30%까지, 케이블TV나 뉴스외의 방송채널(PP), 위성방송사 주식의 전부를 소유할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일간신문사의 뉴스방송 겸영을 허용하고, 개인 자격이나 재벌 아닌 기업의 뉴스방송사 지분소유한도를 49%로 높이며, 일간신문사와 재벌의 뉴스방송 소유금지를 풀어 지상파의 경우 지분 20%까지, 종합편성이나 보도전문 방송사의 30%(허원제 의원 대표 발의안) 또는 49%(나경원 의원 대표 발의안)까지 지분소유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일간신문사의 케이블방송ㆍ위성방송 지분소유 한도도 현재의 33%에서 49%로 늘리고 재벌의 위성방송사 소유한도를 현행 49%에서 100%로 완전히 풀자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언론관계법 조항의 개정 외에는 현행법을 유지하되, 지난해 말 시행령 개정으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으로 축소된 재벌의 범위를 공정거래법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과 동일하게 하여 뉴스방송사를 소유할 수 없는 대기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이미 얽히고 섥힌 재벌과 보수 언론, '언산복합체'
탈규제의 조류 속에서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칸막이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문제는 현재 신문ㆍ 방송을 둘러싼 칸막이가 불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여론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마지노선인가에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국내 방송시장 중 재벌의 진출이 허용되고 있는 케이블TV와 뉴스외의 방송채널(PP)ㆍ위성방송의 비중이 대략 절반이다.
지상파방송 중 SBS와 각 지역 민영방송은 이미 재벌 아닌 기업의 소유로 되어 있다. SBS의 주주 분포는 SBS미디어홀딩스 30%, 국민연금공단 9.74%, 한국투자증권 8.11%, 한국투자신탁운용 6.2%, 귀뚜라미홈시스 6.15%, 대한제분 5.56%, 미래에셋자산투자운용자문 5.55% 등인데, 여기서 SBS미디어홀딩스의 지분이 30%인 것은 현행법상 재벌 아닌 기업의 지분한도가 30%이기 때문으로, 한나라당은 이를 49%로 늘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칸막이는 재벌과 일간신문사의 접근을 막은 것이지, 재벌 아닌 기업과 개인에게는 열려 있다. 그렇다면 여론의 왜곡을 막기 위해 재벌이나 일간신문사의 접근을 막은 반쪽 칸막이마저 허무는 것이 옳은가. 가뜩이나 삼성 공화국ㆍ조중동이라는 어휘가 상징하는 대자본과 언론 권력의 독주에 대해 사회적 거부감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칸막이라면 불문곡직하고 없애는 것이 맞는가.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는 주택 ㆍ전력 ㆍ철도 ㆍ가스 등을 공급하는 공기업은 왜 존재하고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은 왜 유지되어야 하는가. 방송의 공공성ㆍ여론의 다양성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만큼 작금이 의사소통의 태평성대인가. 언론관계법 개정을 놓고 성찰과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하는 이유다.
재벌의 뉴스방송 진출에 물꼬를 트면 자본의 논리를 추종하는 방송의 출현으로 사회의 거울이어야 할 언론이 일그러진다. 조ㆍ중ㆍ동으로 대표되는 세습언론의 보도경향이 방송을 타면 언론은 거울의 역할을 단념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습언론과 재벌은 이미 혼맥으로 결합되어 일종의 언산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조ㆍ중ㆍ동 방송과 재벌방송이 출범하면 여론독과점의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자본과 언론권력의 독주는 국민적 재앙이 될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삼성 비판하는 삼성방송 가능할까?
재벌의 뉴스방송사 소유를 금지하는 이유는 대자본의 여론지배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든 임직원이 대주주의 뜻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기는 어렵다. 대주주는 주총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여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고, 이사회는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보도책임자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개인과 자산총액 10조원미만의 기업에게는 뉴스방송사 주식의 30%까지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 여론의 공공적 성격과 자본주의가 타협한 지점이다. 다만 재벌이나 세습신문사가 뉴스방송사의 주주가 되는 것은 방송의 기능상 심각한 폐해를 낳을 것이라고 보고 이를 금지하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재벌 아닌 기업이나 부자 개인이 뉴스방송의 대주주가 되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본 것이다.
삼성공화국ㆍ조중동이라는 어휘는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두터운 함의를 갖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10조원이상의 기업집단은 29개 집단으로 이들이 거느린 기업은 모두 823개로 나타났다. 계열사가 50개 이상인 기업집단은 삼성(63개), 에스케이(77개), 엘지(52개), 롯데(54개), 지에스(64개), 씨제이(61개) 등인데, 이들이 방송을 갖게 되었을 때 계열사를 감싸고 자본편향의 보도성향을 보일 것임은 불문가지다. 현행법이 재벌과 일간신문사의 뉴스방송 진출을 금지한 것은 이러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의 대주주가 언론의 공적 과업에 입각하여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않으려 한다고 가정해도 종사자들은 대개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이 되게 마련이다. 하물며 그 대주주가 재벌과 세습신문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YTN의 주요 주주는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KDN(지분 21.9%), KT&G (19.9%), 미래에셋생명보험(13.5%), 한국마사회(9.5%) 등으로 공기업 지분이 50%를 넘는데, 지난해 대통령 특보출신을 사장으로 선임하면서 발생한 이른바 'YTN 사태'를 되새겨보면 재벌의 방송진출이 야기할 'YTN사태'의 재현과 일상화는 거의 명백하다.
덧붙여 사이버모욕죄가 신설되면 의사소통의 고속도로인 인터넷에 어떤 병목현상이 생길 것인지, 드라마 등 방송프로에 비친 각종 소품이 광고효과를 노리는 것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간접광고의 도입이 시청자들을 어떻게 우롱하고 어떤 배신감을 안겨줄지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자본과 세습 언론이라는 공룡의 질주
가뜩이나 우리 사회는 획일적인 경향이 짙다. 급격한 산업화와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관용과 개성 존중의 풍토가 미처 정착되지 못한 까닭이다. 언론의 외적 다양성은 있을지라도 언론기관 구성원의 내적 다양성이 확립되지 못한 것도 여론 수렴의 촉각을 무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신문이나 방송이 독자와 시청자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동네북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언론이 신뢰를 상실하는 것을 바라는 세력이 있는 듯하다. 재벌과 세습언론이 방송을 통해 거대한 확성기를 켜면 여론은 왜곡된다. 여론의 왜곡으로 인해 정치는 점점 대중과 멀어지고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허무주의가 확산된다. 정치적 무관심은 투표율을 낮추고 기득권세력의 지배는 더욱 공고하게 된다. 미디어법이 정권재창출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다. 미디어공룡이 초래할 여론 독과점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개정안은 대자본과 세습언론이 상징하는 공룡의 거침없는 질주를 위하여 민주주의를 무덤에 몰아넣는 형국이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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