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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오바마의 금융개혁안은 부실 처방"

"은행 경영진, 신용평가기관 규제는 손도 못대"

지난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금융감독 및 규제 강화 방안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시스템 개편'이라는 수식어로 포장됐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지 못했다는 회의적인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규제 부족이 아니라 규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실패한 금융감독기구의 권한만 강화하는 방식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이번 개혁안에 걸맞는 충실한 입법이 이뤄질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입법, 특히 시행령이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않아 용두사미가 되거나 심지어 악용될 여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당국자들과 함께 금융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뉴사수

'새로운 토대:금융감독 및 규제 재건(A new Foundation:Rebuilding Financial Supervision and Regulation)'이라는 이번 개혁안 역시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사안들이 대부분이다.


"대형 금융기관 감독 강화는 긍정적 조치"


이와 관련, 오바마의 금융개혁에 대해 일찌감치 절망감을 토로했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19일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이번 개혁안의 한계를 지적해 주목된다.

'Out of the Shadows'라는 이 글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이번 개혁안이 금융규제의 커다란 허점을 메우기는 하겠지만,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비정상적인 인센티브'를 근절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FRB가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대형 금융기관'은 어떤 형태이든 감독할 권한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예전에는 이미 파산한 리먼브라더스나 베어스턴스 같은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금융산업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전통적인 상업은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FRB의 감독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번 개혁안에 따르면, 이른바 '섀도 뱅킹'을 하는 금융기관들도 손실에 대비한 일정 규모의 준비금을 보유하도록 규제된다. 또한 이런 금융기관들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면 정부가 국유화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방만한 금융 행태를 초래한 더 큰 문제들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작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으로 불리는 '파생상품'이 무책임하게 만들어지고 판매될 수 있었던 요인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생상품'은 은행들이 대출 채권을 복잡한 기법으로 증권화해 판매하는 상품이어서 투자자들이 어느 정도 위험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때문에 '월가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렌 버핏은 지난 2003년 파생상품을 "금융계의 대량살상무기"라고 경고했지만, 은행들이 끊임없이 파생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행테는 제지받지 않았다.

오히려 앨런 그린스펀 당시 FRB 의장은 파생상품이야말로 리스크를 제거한 첨단상품으로 금융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며 옹호했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은 채 파생상품이 마구 판매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미국 국채에 맞먹은 최고 신용등급을 남발하고, 은행 관계자들은 천문학적인 보너스가 지급되는 경영관행이 있었다.

이런 인식은 오바마 정부도 갖고 있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유감스럽게도 이번 개혁안은 진단에 걸맞는 처방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CFPA 신설, 5% 준비금 규정만으로는 미흡"


FRB 권한 강화와 함께 이번 개혁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소비자금융보호국(CFPA)' 신설은 파생상품 같은 위험한 금융상품으로부터 소비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방안이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 교수는 "CFPA가 방만한 대출을 규제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겠지만, 대출 대비 5%에 불과한 준비금은 단기적인 이득을 엄청나게 챙길 수 있는 은행 경영진에게 충분한 제동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가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은 '비정상적인 보너스 관행'에 대해 이번 개혁안에서는 규제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저 "규제당국은 보다 나은 경영진 보수체계에 대해 기준과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

특히 크루그먼 교수는 "신용평가기관들은 의심스러운 증권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해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번 개혁안에서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크루그먼 교수는 "오바마의 금융개혁안은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정작 어려운 결정은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금융개혁이 쉽지 않다는 정치적 현실을 인정하고, 오바마의 개혁안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면서도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보다 단호한 조치, 그리고 은행 경영진들의 보너스 체계 개혁에 대해 훨씬 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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