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한마디로 살벌하다"
한국방송(KBS) 기자협회가 지난 8~9일 양일간 실시한 김종율 보도본부장, 고대영 보도국장 불신임 투표에서 압도적인 불신임 결론이 나왔다. PD협회가 편성·TV제작·라디오제작 본부장에 대한 압도적인 불신임 투표를 성사시킨 데 이어 기자협회에서도 '이병순 체제'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낸 것.
그러나 불신임 투표를 '사규 위반'으로 규정한 경영진이 "엄정 조처"를 엄포하면서 KBS 사내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특히 기자협회는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 일부 기자들이 투표 결과의 신뢰성과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내부 분열로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KBS 보도국장·보도본부장 "압도적 불신임"…그러나 '후유증'
KBS 기자협회는 지난 8~9일 실시한 김종율 보도본부장·고대영 보도국장의 불신임 투표결과 김종율 보도본부장에 대해서는 보도본부 소속 기자 260여 명 중 219명이 투표에 참여해 180명(82.2%)이 불신임 표를 던졌다. 고대영 보도국장에 대해서는 기자 138명이 투표에 참여해 129명(93.5%)이 불신임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이들 보도본부장·보도국장에게 신임의 뜻을 나타낸 기자는 각각 34명(15.5%), 7명(5%)에 그쳤다.
KBS 기자협회의 불신임 투표 결과를 두고 "이병순 사장 체제 10개월에 대한 평가이며 지난해 이병순 사장이 인사를 단행한 이후 권위주의, 상명하복 체제로 바뀌어가는 KBS 보도국에 대한 기자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투표 후 효과보다 후유증이 더 큰 상황"(KBS 기자)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혼란이 적지 않다. 기자협회가 불신임 투표를 시작하기 직전 경영진이 "엄중 대처" 방침을 밝히면서 투표율이 상당히 낮아졌고 일부 고참 기자들도 "투표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자협회는 민필규 기자협회장이 "투표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터라 '수습책'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KBS의 한 기자는 "투표 이후 내부 분위기가 오히려 살벌해졌다. 보도국장 등 간부들은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주동자를 찾아 사규 위반 등을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자들 사이에서도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이번 투표 결과를 가지고 보도국을 바꾸는 계기로 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사장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PD협회도 '임의단체'에 불과한 단체의 특성상 당장 직접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기는 마땅치 않다. 한 PD는 "보통 불신임 등 내부 의사가 확인되면 노동조합이 의견을 수렴해서 출근 저지나 농성 등으로 경영진을 압박해야 하는데 지금의 노조 집행부에 이러한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일단 KBS 경영진은 바로 '징계' 카드를 꺼내지는 않고 있다. 강선규 홍보팀장은 "불신임 투표 관련자를 징계하기 위한 인사위원회 개최 등은 아직 논의하고 있지 않다"면서 "현재로서는 기자협회 등의 비공식 자료를 두고 경영진의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불신임 투표 결과가 워낙 압도적이라 경영진에서도 섣불리 징계 카드를 꺼내지 못할 것", "인사위원회 개최 등의 말이 흘러나온다" 등 관측이 엇갈린다.
KBS 교체 국면 앞당겼다?…"시민사회 비판 중요"
문제는 이번 기자와 PD들의 불신임 투표가 오는 11월 이병순 사장의 연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것. 향후 일정만을 따지고 보면 KBS는 오는 8월 말 KBS 노조 차원의 본부장 신임 투표, 9월 이사진 교체, 10월(이후) 공영방송법 제정, 11월 KBS 사장 선임 등 을 앞두고 있다.
오는 9월부터는 차기 사장을 두고 하마평과 내부 알력 다툼이 벌어지는 등 본격적인 '사장 교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것. 일각에서는 이번 투표가 이병순 사장의 '레임덕 시기'를 당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KBS의 한 기자는 "이병순 사장은 경영 적자를 줄인다고 비정규직을 잘라내는 등 '연임'에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장 교체를 염두에 둔 알력 다툼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BS의 한 PD는 "이번 불신임 투표도 역시 'KBS가 MB와 닮아간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자극을 받아 이뤄진 것처럼 또다른 자극이 필요하다"면서 "오는 9월 쯤 본격적인 '사장 교체 국면'으로 접어들기 전까지 KBS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과 감시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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