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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대통령이 된 '열대 무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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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대통령이 된 '열대 무솔리니'

[대결, 차베스와 룰라] 차베스 집권 10년 (3)

석유의 역할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는 일개 자원이 아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중추이며 국가 재정의 원천이다. 국내총생산의 30%와 수출 소득의 80%, 세입의 50%가 석유에서 나온다. 세계 5위 석유 수출국 베네수엘라는 추정매장량을 고려하면 세계1위 석유매장량을 자랑한다. 또한 베네수엘라는 미국 석유 수입량의 13%를 책임지는 제2 석유 공급국이다.

20세기 베네수엘라 정치와 경제, 외교는 바로 이 석유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시작하면 오일달러가 대거 유입되어 베네수엘라 통화 가치를 급상승시켰다. 이는 곧 수출업자들에겐 재앙이고 수입업자들에겐 큰 선물이 되었다. 수입업자들은 외국에서 식료품과 공산품은 물론 위스키 같은 사치재도 대거 수입했다. 한때 베네수엘라가 라틴아메리카 최대 위스키 소비 국가가 되기도 했다. 그 대가는 베네수엘라 농업과 제조업의 붕괴였다. 이것이 바로 특정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국가 경제가 망가지는 소위 네덜란드 병의 증상이다.

또한 석유는 40년 연정 체제를 지탱해온 중상류층의 복지와 고용의 원천이었다. 70년대의 고유가 시대에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창출된 일자리를 중산층에게 분배했으며, 무상고등교육 등 복지서비스 혜택도 제공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가 미국과 선린관계를 맺는 수단이었다.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석유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이자 주요 무역상대국이었다. 베네수엘라 정치권이 좌파를 배제한 반공연정체제로 미국 정가의 환심을 사 두었다. 그러니, 미국도 쿠데타와 같은 군사적 개입을 시도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 10년간 석유의 전통적 역할을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 첫째, 차베스 정부는 지난 70년대 중산층의 복지와 고용의 종자돈으로 쓰인 오일달러의 용처를 2000년대에는 빈민층 복지와 고용의 밑천으로 삼았다. 둘째, 국가경제에서 석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전통적인 산업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농업과 제조업 등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높여 왔다. 셋째, 미국과 가깝게 지내는 외교 수단이었던 석유를 중남미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지역 통합을 달성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석유 붐 시대의 도래

차베스 대통령이 당선된 1998년에 유가는 배럴당 10달러로 사상 최저수준이었다. 당시 베네수엘라 국민의 과반수 가량(49.4%)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낮은 유가와 높은 외채가 국가 재정 규모를 급격히 줄여놓은 데다가 긴축재정정책은 사회정책 예산을 더욱 축소시켰다. 차베스 정부는 국가의 재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 유가를 높이는 정책과 그것이 재정 확대에 기여하도록 석유공사(PDVSA)에 대한 개혁을 동시에 추진했다.

차베스 정부는 유가를 인상시키기 위해 석유수출국기구를 강화시키고자 했다. 이 기구가 석유를 수입하는 선진국이 아니라 산유국의 이익을 위한 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눈엣가시였던 이라크의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 등과 회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가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배럴당 20달러 대로 진입했다. 이때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신흥 시장의 석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석유가의 고공행진이 시작되었다. 2008년 7월, 세계경제위기 직전 유가는 10년 전 가격의 14배나 되는 배럴당 140달러가 되었다.
▲ 사보타주 기간 옥수수 가루를 사기 위한 줄을 선 서민들, 이제는 식료품 체인에서 염가로 구입한다. ⓒ박정훈

빈민의 정부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국가 세입은 대폭 증가했고, 재정규모도 확대되었다. 1990년대 중반 국내총생산의 20% 수준이었던 재정규모는 2009년에는 국내총생산의 약 30%에 달했다. 재정 증가분은 차베스 정부가 미션이라고 부르는 사회정책에 집중 투자되었다.

특히 핵심 복지 부문인 의료와 교육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차베스 정부는 빈민 무상의료정책인 '동네 속으로(Barrio Adnetro)' 미션을 추진해 전국적으로 4500여개의 빈민진료소(1차와 2차 진료, 의료기기 구비)를 설치했다. 국내총생산의 4.2%를 빈민무상의료정책에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영아사망률이 1998년의 21.4명(1000명당)에서 2007년 13.7명으로 7.7명 하락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 평균이 22명이고 미국이 7명인 것을 보면 베네수엘라의 사정이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빈민 무상교육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25세 이상 인구의 경우 평균교육연수가 초등과정 6년에도 못 미치는 5.61년(2000년 통계)에 불과한 것을 보면 이 나라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문맹퇴치과정, 학업중도포기자과정, 직업훈련 과정, 고등교육과정, 문화예술교육 과정 등 다양한 과정이 개설되었다. 그 결과 160만 명이 문맹에서 벗어났고 이들을 포함해 총 3백 40만 명이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았으며 2005년 유네스코는 베네수엘라를 문맹퇴치국가로 선언했다.

공공서비스 보급률도 높아졌다. 1998년 80%였던 상수도 보급률은 2007년 92%로 개선되었다. 또, 빈민 계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저가 식품을 공급하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식료품 유통체인(Mercal) 사업이 실시되어 현재 1천 4백 만 명의 빈민들에게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는 식품이 제공되고 있다.

또한 차베스 정부는 국·공유지에 무단으로 거주하거나 사유지를 불법으로 점령하여 주택을 짓고 살아온 도시 빈민의 60%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주거 안정뿐만 아니라 토지를 담보로 하는 소액 신용 대출을 통해 영세자영업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빈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실업률은 1999년의 절반수준인 7.1%로 하락하였다.

차베스 정부의 적극적인 사회정책은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을 1999년 49.4%에서 2006년 30.2%로 축소시켰으며, 극빈율도 21.7%에서 9.9%로 줄여놓았다. 두 수치 모두 국제연합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 통계에서 인용한 것이다. 또한 불평등도 개선돼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0에서 1까지 숫자로 표시해 0에 가까우면 평등하고, 1에 가까우면 빈부격차가 심각한 상태를 보여준다)가 1998년의 0.486에서 2007년 0.420으로 나아졌다. 지니계수는 0.4 이상일 경우 심각한 불평등 사회로 보기 때문에 앞으로 갈 길이 멀기는 하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통계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도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차베스 집권 초기인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의 쿠데타, 사보타주 등의 정치적 위기가 경제위기를 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빈곤층이 증가했다는 정부기관의 발표가 차베스 대통령의 강력한 문제 제기로 뒤바뀐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차베스 정부의 공식 통계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켰다. 반면, 반대파 진영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통계조차도 거부한다. 차베스 집권 10년 동안 베네수엘라 빈민계층의 사회 지표들이 뚜렷이 개선되어 왔다는 것은 국제기구들은 물론이고 보수 진영의 국제 연구소들도 두루 인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반대파는 차베스 정부가 포풀리즘적 수법으로 빈민을 현혹한다며 빈민복지정책을 폄하해왔다. 차베스 정부가 빈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증요법에 불과한 복지를 제공한다는 비판이다. 반면, 빈민복지정책의 지지자들은 당장 굶어 죽게 생긴 빈민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정책도 필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조 개혁으로 지속가능한 빈민복지제도를 구축하는 정책도 요구된다고 반박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산된 빈곤층에 대한 응급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탈신자유주의 경제

빈민복지정책의 지속가능성은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 개혁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석유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늘 유가의 등락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차베스 정부는 단일산업 중심의 현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농업과 제조업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정부는 이란 기술을 도입해 농기계 공기업을 창설해서 농촌 지역의 토지 분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올해 5월에는 중국 기술을 도입해 설립한 휴대폰 공기업에서 최초로 베네수엘라산 휴대폰 단말기가 출시되었다. 빈민계층을 위한 중저가 모델 제품을 먼저 출시했지만, 2010년 중순경에는 최고급 모델도 출시될 예정이다.

이들 기업들은 내수 혹은 수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려고 했다. 농업, 목축업, 광업에 의존하던 중남미 국가들이 제조업 국가로 변신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선진국의 수입품을 대체할 국산품을 만든 그 보호주의 시대에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기술력이 형편없는 기업을 보호했으며, 소비자들은 질 낮은 공산품 때문에 자국 제품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 물론 그때가 신자유주의 시대보다 성장률이 더 높았으며, 불평등은 덜 심했다. 그렇다고 그때가 세계화된 경제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차베스 정부는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수출경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일까? 벌목 회사로 출발한 핀란드의 노키아가 17년간 전자사업에 투자했고, 직물과 제당사업으로 성장한 한국의 삼성이 10년 이상 전사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이들 기업을 유치산업보호정책으로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차베스 정부도 오일달러를 휴대폰 공기업이라는 유치산업에 투자한 것이다. 다만 100명 중 89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휴대폰을 소유하고 있고, 1년에 2~3차례나 단말기를 교체해 최신모델을 구입하는 베네수엘라 소비자들의 취향을 베네수엘라산 휴대폰이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이 휴대폰을 사지 않으면 좌파가 아니다"라고 말한 차베스 대통령의 농담이 통할까? 이것이 베네수엘라 최초의 전자기업 앞에 놓인 첫 번째 시험대이다.
▲ 차베스의 사상적 멘토로 남미 북부 5개국을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와 그의 개인교사 시몬 로드리게스 ⓒ박정훈

석유 외교

차베스 정부는 베네수엘라 외교에서 석유가 수행한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무엇보다도 석유를 라틴아메리카 통합 운동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했다.

2005년에는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쿠바를 비롯해 카리브 해 소국들에 석유를 우대 가격으로 공급하는 에너지무역협정인 뻬뜨로까리베(Petrocaribe)를 체결했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으로 경제적 충격을 받게 된 카리브해 소국들에게 베네수엘라의 제안은 큰 환영을 받았다.

2004년에 차베스 대통령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이 공동으로 미주볼리바르대안(ALBA)을 주창했다. 미주볼리바르대안은 미국이 주도해온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구상에 맞서는 일종의 대안무역협정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쿠바를 제외한 아메리카 전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구상이었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에 초점을 둔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 정책으로 탈냉전시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경제 지배전략 구상이었다.

차베스 정부는 미국 정부의 구상에 맞서 미주볼리바르대안을 제안했다. 신자유주의 무역협정과 달리 미주볼리바르대안은 각 국의 경제주권을 존중하면서 경제, 사회, 정치 등 전반적인 교류의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그간 소속 국가 간의 무역은 세 배나 늘었다. 특히 고유가 속에서도 장기 차관 형태로 석유에너지를 공급하는 베네수엘라의 정책은 소속 국가들의 에너지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는 쿠바와 니카라과의 농업생산의 증가를 가져왔다. 또한 오래전부터 무상의료·교육 정책을 실천해온 쿠바의 지원 속에서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볼리비아, 니카라과에서 문맹퇴치와 의료복지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미주볼리바르대안 등 베네수엘라가 주도하는 국제협정은 '연대교류(Intercambio Solidario)'라 불리는 유무상통의 원칙이 적용된다.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제공하는 대가로 상대국가에서는 현물(바나나, 쌀 등)이나 서비스(의료서비스)로 상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수출한 석유에너지는 베네수엘라 빈민가에서 무상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2만 명의 쿠바인 의사들의 서비스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정치적 좌회전이 가속화되면서 미주볼리바르대안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2006년엔 볼리비아, 2007년엔 니카라과가 참가국이 되었다. 2008년에는 오랜 국가적 논쟁 끝에 온두라스가 참가했고 최근에는 그간 참관국이었던 에콰도르가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또한, 미주볼리바르대안의 의제도 확장되고 있다. 작년 말 세계경제위기가 발발하면서 참가국들은 공동통화지역(Zona Monetaria Comun)을 설치하고 수끄레(Sucre)라는 공동 통화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미주볼리바르대안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급진주의 개혁 노선을 지지하는 국제적인 블록으로 발전해왔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와 에콰도르의 꼬레아 정부는 제헌의회와 직접 민주제, 국유화정책과 빈민복지정책 등 차베스 정부의 개혁 정책을 벤치마킹해왔다.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은 2006년에 개최된 니카라과 대선과 페루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해서 내정간섭이라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아야 했다.

차베스 정부의 외교 정책은 중남미 지역의 통합을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쿠바를 고립시키고 중남미를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맞서야 했다. 2005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제4차 미주정상회의에서는 당시 부시 정부가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 구상이 차베스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을 비롯한 좌파 정상들의 반대로 좌초되었다.

2009년 최근에 개최된 제5차 미주정상회의에서 오바마 신정부는 50년간의 쿠바고립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라틴아메리카 정책의 방향 전환을 약속했다. 또한 2004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남미국가연합(UNASUR)이 2008년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미국의 뒤뜰'이라고 조롱 당해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미국과 동등한 외교적 지위를 갖고자 노력해온 각고의 산물이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미국 부시 대통령(2001~2009) 재임기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역사상 가장 축소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부시 정부는 이 시기에 쿠바 고립 정책을 더욱 강화했고, 이를 확장해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부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했다.

부시 정부는 쿠바, 북한, 이란 등의 반미국가들을 '악의 축'이라 불렀고, 차베스 정부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프레임은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 국가들을 분류하는 프레임으로 지속적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냉전 시대의 인물인 오토 리이치를 미 국무부의 중남미 담당 차관보로 임명했다. 리이치는 이른바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이었다. 레이건 행정부(1980~1989)가 당시 미국의 적국이었던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여 확보한 자금으로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극우게릴라집단 콘트라를 조직하고 지원한 것이 드러났는데 이를 '이란-콘트라 스캔들'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은 냉전 시대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몰래 벌이고 있던 추악한 전쟁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오토 리이치는 2002년 차베스 대통령을 감금한 쿠데타로 임시정부가 집권했을 때 가장 먼저 환영 논평을 발표해 국제적인 비난 대상이 되었다.

또한 부시 정부는 차베스 정부를 빈민층을 현혹하는 "급진적 대중주의(populism)" 정부라고 비판해왔다. 노골적인 포풀리즘 수법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강도로 추진한 페루의 후지모리나 아르헨티나의 메넴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의 기수로 추켜올리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세심하게도 부시 행정부는 중남미 모든 좌파 정부를 '급진적 대중주의'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시 정부는 룰라를 띄우고 차베스를 깎아 내리는 소위 '착한 좌파-나쁜 좌파'라는 분할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룰라 정부는 물론이고 중남미 좌파 가운데 가장 온건하다고 알려진 칠레 사회당 정부도 미국의 차베스 정부 고립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들 현실주의 좌파들은 차베스 정부의 급진주의 노선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기대와 달리 이들 좌파들도 차베스 정부와 논쟁하고 협력하면서 남미국가연합을 건설해왔다.
▲ "차베스는 꺼져라" 반차베스 시위대의 계속되는 시위 ⓒ박정훈

에필로그 : 빈민대통령이 된 열대 무솔리니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탱자가 회수를 건너 귤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부시 대통령을 "악마"라 부르고 멕시코 대통령 비센떼 폭스를 "제국의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독설의 정치가이다. 반미주의가 토속신앙처럼 뿌리내린 중남미에는 제 집 개가 병에 걸려도 그링고(미국인에 대한 비칭)탓이라는 말이 있다. 차베스는 이런 반미 정서를 활용할 줄도 안다. 2004년 국민소환투표 승리를 기념하는 연설에서는 "우리가 친 공이 백악관 앞뜰에 떨어졌다. 홈런이다!"라며 빈민지지자들을 열광시킨 대중적인 연설가이다.

그는 자신의 통치 행위를 쇼로 만들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차베스 대통령은 "여보세요! 대통령(Alo?, presidente)"이라는 전용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사회자, 연출자, 작가, 인터뷰어의 역할을 한다. 이 프로그램의 방영시간과 내용은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기분이 내키면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한번은 방청석에 앉아 있던 군 장성에게 10개 대대를 국경지대로 보내라고 즉석에서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콜롬비아-미국 연합군이 마약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국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했을 때였다. 이 프로그램은 차베스 대통령이 어떻게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고 있는지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차베스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그간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멕시코의 문호이자 좌파 지식인인 까를로스 푸엔떼스는 '열대 무솔리니'에 불과하다며 "좌파의 탈을 쓴 극우파"라고 비난했다. 그의 개인적 스타일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좌파서적을 탐독한 '열대 무솔리니'가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경제위기 속에 가난해진 빈민들을 독재와 전쟁의 수렁으로 몰고 갔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무솔리니'는 신자유주의로 가난과 불평등 속에서 허덕이는 빈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했다. 탈냉전시대 시대착오적 라틴아메리카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미국에 맞서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기수가 되었다. 또한, 비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베네수엘라 제조업을 부흥시키려고 하고 있다.

탱자가 회수를 건너 귤이 된 것이다. 이것은 차베스 집권 10년의 최대의 역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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