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핵실험 감행 의도(motivation)를 북한 내부에서 찾고 있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고 있기 때문에, 후계체제를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 핵실험 등 북한 강공의 둿배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일 후계자에 대해 공식 발표하거나 김정일이 후계자로 활동했을 당시 '당 중앙'으로 암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다.
김정일이 68세임을 감안할 때 후계자 문제는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으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큰 어려움이 있다.
▲ 지난 4월 5일 '광명성 2호' 발사 장면. ⓒ연합뉴스 |
'후계용 도발' 주장의 논리적 모순
후계 때문에 핵실험을 했다는 주장의 핵심은, 김정일이 아들로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단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기를 만들어 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 때문에 북한이 치러야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되지 않는 빈곤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면서 감당해야 할 비용은 국가의 생존을 거는 것과 같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험이 실패했을 때, 북한의 주장이 '허세부리기'(bluffing)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게 되는 것과 같고, 위기를 조성하기는커녕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며, 북한 내부의 단합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후계 때문에 위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에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능력과 핵보유 능력을 어느 정도(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 사전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후계론'을 말하는 그 누구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핵보유 능력에 대해 (그 실험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전에 이야기 한 적이 없다.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평가와 그 자체의 의미는 제쳐두고 후계 구도라는 '외적 요인'에만 주목하는 건 문제다.
또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김정일은 거의 매일 현지지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건강이상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60년간 미국 상대해 온 북한의 '저력'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러한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과 같이 빈곤한 소국(小國)이 60년이 넘게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군사·외교적으로 대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허리가 부러지고 피를 짜내는 것과 같은 '고난의 행군' 그 자체이다.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 통치자로서 해결하여야 했던 것은 바로 미국과의 군사·외교적 대치상황을 푸는 것이었다. 그의 정권을 그대로 승계한 김정일의 가장 중요한 미션(mission) 역시 같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이다. 미국에게 북한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나라였다. 아니 처음부터 생겨나지 말아야 할 "bastard"였다. 미국은 현재까지 한반도의 긴장수준을 조절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기를 원하고 있다. 역대 미 행정부의 어느 대통령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북한 문제는 한 번도 미국 외교의 우선순위를 가지지 못했다. 경제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중동 문제를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임무를 가지고 6개월 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북한은 외교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국가였다.
물론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강경책으로 대북정책을 시작한 8년 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는 분명히 다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는 다른 정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북한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북한은 이러한 사실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북한은 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부터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각기 다른 미국 행정부를 60년간 상대하고 있다. 그러니 북한에도 학습곡선(learning curve)이 있고 긴 시간 속에서 역사 속에서 배우는 학습효과 (learning effect)가 있을 것이다.
반면, 북한이 미국 외교의 선차적 우선순위에 있지 않았고 역대 미국 행정부는 대통령이 바뀔 때 마다 대북정책에 대해 새로 검토하고 만들어 왔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학습곡선도 학습효과도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은 지금 미국의 허점을 찌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허점을 노출시키고 허점을 찔렸을 결코 그냥 묵인하고 눈감아줄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아직도 자타가 공인하는 초강대국이다. 자신이 잠을 자는 사이 또는 다른 일로 바쁜 틈을 노려 코털을 건드린 자를 가만 나둘 사자(lion)가 아니다.
北 '미국 상처 입힐 준비 됐다'
그렇다면 원래 불량국가인 북한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미국을 한번 건드려 보는 것일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을 겪으면서 북한은 미국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의 허점을 노리고 치고 들어갔을 때에는 미국에게 무시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분석일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광명성 2호 발사에서 보여주었듯 어느 정도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능력, 그리고 2차 핵실험에서 보여주었듯 어느 정도의 핵무기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북한의 이러한 능력이 과거보다 증진되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앞서 지적했듯이 매우 빈곤한 나라이며, 강대국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다는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될 수 있는 인공위성이나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핵개발을 하면서 만약 누가 봐도 실패한 실험을 했다면 북한은 실패와 동시에 미국 등 강대국들의 침공 표적이 되었거나 정권 정당성에 심각한 균열이 생겨 내부에서 붕괴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북한이 벌여 온 실험들은 성공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 아래,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의 확신을 가지고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 즉,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에 한에 능력의 일부를 보여준 것이지 전부를 보여준 게 아니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아직 실력을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과거 실험에서 증명된 장거리 미사일과 핵보유 능력만으로도 미국에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으며,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에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 된다.
▲ 북한의 핵실험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일부의 능력만 보여준 것으로 판단된다. 5월 26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핵실험 성공 축하 평양시군중대회 장면. ⓒ연합뉴스 |
한국, 차라리 차에서 내려라
빈곤한 북한은 비용이 만만치 않은 이러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벌이며 능력을 과시할 수 없는 처지이다. 이것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와 2차 핵실험이 미국과의 군사·외교적 대치를 끝내려는 총력전(all-out effort)의 과정으로 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미국과 북한의 본격적인 치킨게임(chicken game)이 시작된 것이다.
치킨게임은 원래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이었다.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이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
혹자는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의 군사·외교적 대치 상황 자체가 치킨게임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치킨게임이 아니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돌진할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자신들이 미국을 향해 돌진할 차가 강력한 마력의 엔진이 탑재된 스포츠카는 아니더라도 부딪히면 미국에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문제로 초강대국의 위상은 흔들리지만 군사적으로는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이 이 치킨게임을 피하는 것은 스스로 헤게모니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치킨게임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누가 치킨(겁쟁이)이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직접적인 치킨게임을 피하고 우회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외교적인 방안도 아직 존재한다. 치킨게임은 때로는 양측의 충돌을 보고 싶어 하는 관중들(spectators)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행된다. 그러나 관중들이 다른 방식을 선호해 양측을 설득한다면 치킨게임을 피할 수도 있다.
현재 한미동맹 틀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한국은 북미 치킨게임에서 관중도 아니고 미국 측 차에 타고 있는 승객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북미 치킨게임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리고 충돌이 현실화된다면, 에어백은 고사하고 안전띠조차 없는 좌석에 타고 있는 한국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북미 치킨게임을 말리고 다른 방식의 해결 방안을 주선하는 게 이상적이겠지만, 만약 그게 여의치 않다면 일단 차에서 내리는 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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