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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북핵 보도, 혹세무민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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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북핵 보도, 혹세무민은 이제 그만"

[정세현의 정세토크] 오바마 '보상 없이 해결'은 역사외면? 레토릭?

요즘 우리 언론들이 한반도 상황을 보도하는 걸 보면, 미국이 곧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리고, 북핵 문제를 보상 이외의 방식으로 해결할 것으로 작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몇 가지 사실관계를 좀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테러지원국 문제부터 보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7일 방송 '디스 위크'(This Week)에 나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재등재를 검토한다고 말했다는 것. 우리 언론들은 그 '검토'가 마치 테러지원국 명단 재등재를 전제로 한 검토처럼 썼는데, 그건 그렇지 않아요. 무리한 의미 부여입니다.

오늘(8일) 오전에 민주당 지도부에서 대북정책 관련 긴급 정책간담회를 했는데 나를 외부 인사로 초청했어요.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고 북한이 곧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라가는 것처럼 말하더라고.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송민순 의원,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클린턴 답변의 원문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얘길 했어요. 그래서 나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진짜 클린턴은 아주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더라고요.

인터뷰 진행자가 '공화당 상원의원 몇 명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등재해야 한다는 걸 촉구하는 편지를 대통령한테 보냈는데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니까 클린턴이 "검토를 할 것이다. 등재하려면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북한이 최근 국제 테러리즘을 지원했다는 증거가 있는지 찾아보려고 한다"고 답했어요. 그런 요구에 답을 내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겁니다.

진행자가 다시 '증거 있느냐?' 물어보니까 "이제 막 검토를 시작했다. 지금 여기선 답할 수 없다"고 했어요. 다만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줄 때는 목적이 있었는데, 그 목적이 북한의 최근 행동으로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검토해야 한다"고 까지만 얘기했습니다. 근데 그걸 가지고 마치 테러지원국에 다시 올리기 위해 작정하고 조사하는 것처럼 몰아가면 어떻게 합니까?

며칠 전에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테러지원국 재등재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절차가 있는데 간단하지 않고,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고, 작년에 삭제했는데 뚜렷한 증거 없이 다시 올리면 테러지원국 명단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답했어요. 실무자 차원에서 '안 된다'는 말을 돌려서 한 걸로 봐야 합니다.

또 정치인 출신인 클린턴 장관이 얼마 전까지 의회 동료였던 사람들이 보낸 편지를 보자마자 내칠 수 없으니까 법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애매하게 말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그런 내막도 안 따져 보고,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밖에 안 했는데, 미국도 이제 강경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하도록 기사 제목을 뽑고 그러면 어떡합니까? 참...그거 언론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우민화(愚民化)를 하고 있어요.

언론을 무관의 제왕이니, 제4부니, 사회의 목탁이니 그러는데 이렇게 혹세무민하고 마치 미국이 강경으로 가니까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사실 잘못된 게 아니라는 식으로 인식시키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올린 건 1987년 KAL기 폭파 때문인데, 작년 10월 해제가 되면서 KAL기 사건 이후 북한의 행적은 일단 면죄부를 받은 셈입니다. 그러니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면 작년 10월 이후, 지난 8개월 동안 북한이 테러 지원을 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올리면 미 국무부와 의회의 권위에 손상이 가요.

8개월 동안 북한이 테러와 관련해 뭔가를 했으면 벌써 소문이 났을 겁니다. 미국이 알면서도 안 터뜨렸다면 그것도 미국 대북정책의 신뢰나 공신력을 해치는 거구요. 있으면 벌써 나왔어야지...그러니까...안 되는 일을 가지고 미국이 자꾸 그쪽으로 갈 것처럼 국민들한테 알린다는 게, 참 뭔가 이게 노림수가 있지 않나...북한이 일을 벌여주길 바라는 건지, 미국이 강하게 나가서 북한이 더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태가 악화되면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인지...이거 참 걱정입니다.

북풍이 불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제 국민들이 국제정세도 잘 알고 있고, 사태의 전후좌우를 앞뒤를 지켜보고 있어요.

독자들은 방송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원문해석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뭐가 제재 쪽으로 가겠다는 겁니까? 클린턴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한 거예요. 진행자의 유도질문에 빠지지 않더라고. (☞힐러리 인터뷰 中 북한 관련 발언 원문보기)

슈퍼노트(미화 100달러 위조 지폐)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 정부가 부산에서 1만 장 가까이 발견됐다면서 마치 미국이 문제삼아주길 바라는 것 같이 비춰지는 대목이 있어요.

실체적 진실이 뭔지는 모르지만, BDA 식의 제재(2005년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 은행으로 지정해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동결하게 한 조치)를 해서 북한이 과연 자세를 바꿨나요? 북한이 핵실험까지 해버리니까 결국 미국이 제재를 거둬들이고 나중에 없었던 일로 돼버렸잖아요.

그런 선례가 있는데 우리 언론이나 현 정부 당국자들은 기억을 못하나요? 결국 유야무야 되겠지만 당분간 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꾸 펌프질을 하는 겁니까? 거기서 노리는 게 뭐죠?

▲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 등 한반도 관련 주요 정책 담당자들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던 때의 모습. 일부 언론들은 이들에 대해서도 '대북 제재 사절단'인양 묘사했었다. ⓒ연합뉴스

갈등과 불안 유도하는 보도 행태 '위험천만'

다음 "북한의 도발에 보상하는 정책을 계속할 생각이 없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6일 파리 발언을 한 번 봅시다.

우선 참 걱정되는 게...내가 저번에도 '북한이 오바마의 부시화를 바라냐'고 한 적이 있지만, 북한이 계속 이렇게 강수를 두니까 정말 오바마가 부시의 어법과 대북정책을 연상케 하는 그런 모습을 가끔 보여줍니다. 그게 걱정이에요.

그런데 북한이 그렇게 강수를 두는 배경을 다시 한 번 복기할 필요가 있어요.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운동 때 대통령이 되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고, 당선 후에도 자기의 대북정책은 부시가 아니라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어요. 또 인수위에서는 오바마 정부 출범 100일 내에 특사를 보내야 한다고도 했죠.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입장에서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갔을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자기들이 생각해 봐도, 종교 갈등의 성격까지 있는 이슬람권에 대해서 오바마 정부는 굉장히 너그러운 메시지를 계속 보냈잖아요. 국무장관의 첫 해외순방지를 세계 최대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로 정했고, 대통령도 첫 TV 인터뷰를 이슬람권 방송하고 하면서 '미국은 이슬람의 적이 아니다'고 말하고...그게 북한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러웠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우리는 그냥 대충 무시해도 되는 국가로 분류되나보다'하는 초조감을 가지게 됐을 거고, 그런 초초감과 실망에서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러 가지 벼랑 끝 전술을 쓰게 됐다고 나는 봅니다.

이런 얘길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겠죠. '아니 그럼 고분고분해야지 그렇게 공갈협박으로 관심 끌겠다는 게 돼먹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나라를 그렇게 살살 다루면 안 된다.'

근데 북한은 미국과의 기싸움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최근 쓰는 방식으로 성공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클린턴, 공화당 부시 다 이겼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나갈 겁니다.

미국도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처음엔 대개 무시하거나 강경책을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클린턴이나 부시나 다 입장과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오바마도 '보상 방식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건가? 오바마는 그러면서 외교적인 방식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보상 안 하면서 외교적으로 풀겠다는 말은 모순입니다. 외교가 결국 물질적이건 정치적이건 보상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닙니까?

오바마의 파리 발언의 모순을 지적하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상하는 방식으로 안 할 거라고 하니까, 완전히 대북 강경으로 돌아서는 것처럼 해석하고 기사화하는 언론들. 그걸 보면서 언론들이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을 진짜로 때리면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불똥은 어디로 튀죠? 태평양을 못 건너갑니다. 안 건너가요. 대한해협도 안 건너가요. 우리만 죽는 겁니다. 우리만. 철조망만 있지 같은 땅덩어리에 사니까.

그러니까 미국에서 설사 강경책으로 돌아설 것 갈은 메시지가 나오더라도 우리 쪽에서 말려야죠. 그래야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죠. 그런데 마치 미국이 그렇게 가는 게 잘됐다, 우리도 강경책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 게 큰 걱정입니다.

1차 북핵 위기 때죠. 15~16년전 김영삼 정부 때 클린턴 정부가 북한을 몰아붙여 주기를 바라다가 막상 북폭까지 하려고 하니까, 그때는 우리가 미국을 말리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던 적이 있습니다. 눈앞의 이득 보겠다고 뒷감당 못할 일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북미 합의는 보상 구도였다

나는 오바마의 미국이 보상을 안 하는 쪽으로 가기 쉽지 않다고 봅니다. 왜? 20년에 가까운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어요.

먼저 1차 북핵 위기. 북한은 90년대 초반 공산권이 붕괴되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면서 심한 체제불안을 느낍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92년 1월 미국에 가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수교를 하자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아버지 부시 정부가 무시하니까, 클린턴 정부 초에 결국 핵카드를 들고 나옵니다. 미국이 무시할 수 없게. 그러니까 한국 김영삼 정부가 발끈해서 제재 입장으로 갔습니다. 미국도 그랬고.

클린턴 정부 출범하면서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같이 더 도발적으로 나오니까 미국도 무시나 제재를 검토하는 쪽으로 겉으로는 그렇게 갔지만, 내막으로는 국무부에서 이건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고 해서 93년 3월에 북미 양자접촉의 필요성을 얘기해요. 실무선에서.

그런데 한국이 그걸 반대했죠. 미국도 한국의 체면도 있고 자기들도 도전을 당한 셈이니까 당분간 강하게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북한이 5월 말에 노동 1호 미사일을 쏴버리죠. 미국이 세게 나오니까 더 세게 나온 겁니다.

그러자 미국은 바로 6월 초 북한을 베를린으로 불러냈고, 양자협상으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풀자고 합의하고 제네바에서 회담을 해서 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듭니다. 그 기본 구도가 뭐냐?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미국은 북한과 수교하고 200만kW 경수로 건설을 지원한다. 1:2로 바꾼 겁니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과격한 요구, 무조건 한판 붙자가 아니라 뭘 좀 달라는데 잘 쳐다보지 않고 만만하게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강하게 나갑니다. 미국은 처음엔 걷어 차버렸는데 결국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美민주당이 유연에서 대북 보상? 그 방법밖에 없어서 그랬다.

99년 페리 프로세스가 만들어진 것도 똑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94년 중간선거에서 클린턴의 민주당이 공화당한테 의회 권력을 뺏기니까 예산 배정이 잘 안 돼서 대북 중유 제공도 늦어졌어요. 그러니까 북한은 '미국이 의회 핑계를 자꾸 대는데 우리의 핵동결이 목적이었지 반대급부는 본심이 아니었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또 경수로 공사는 98년에 본격화됐지만 수교는 일체 진전을 못 보면서 북한은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거기다가 경수로를 다 지어주기 전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미 정부 내에 있다는 얘기들이 언론에 흘러나가기 시작해요. 그러니 북한으로서는 더욱 의심하게 되고 결국 98년 8월말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일본 열도를 넘어 미국 쪽으로 1640km 날아갔어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으로 가겠다는 사인이었죠.

미국 내 여론은 나빠지고 일본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죠. 한국에서도 반북여론이 나왔고. 그 때 만약 우리 정부가 흔들렸다면 미국은 바로 대북 제재로 갔을지 모릅니다. 군사적 행동으로 갔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당시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라 즉, 그 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주려고 서두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IMF 상황에 있는 우리가 빚을 갚기도 어렵다고 보고 어떻게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미국을 설득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미국은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고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돌아 의견을 종합한 뒤에 99년 5월 25일 평양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북한의 고위당국자들과도 협의한 뒤, 다시 조율해서 9월에 발표한 게 페리 프로세스예요.

페리 프로세스의 보상 구도는 이렇습니다. 북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면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면 미국과 일본은 대북 수교를 한다. 남북관계도 적극적으로 활성화한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갈망해왔던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서 국제안보 차원에서 불안감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건 동북아 냉전구조를 해체해 준다는 겁니다. 제네바 합의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니까 북한도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양보를 약속했죠.

미국도 사실 따져 보니까 여기 저기 벌려 놓은 일이 있어서 우리 정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클린턴이 마음이 좋아서, 민주당이 유연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해서 페리프로세스도 클린턴 정부 당시에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도 그런 맥락에서 하게 된 거고, 조명록-올브라이트의 워싱턴-평양 교환방문,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준비,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두 번 씩이나 평양에 간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5일 파리에 도착하는 장면. 그는 다음 날 '북한의 도발에 보상하는 정책을 계속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게 가능한 것일까. ⓒ로이터=뉴시스

1:2 보상에서 1:3 보상으로, 그리고 더 많은 보상으로

그런데 그걸 다시 부시 정부가 갈아 엎어버리니까 북한이 초강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결국 부시의 대북정책이 6년간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의 성능을 향상시켰습니다.

그러는 상황에서 미국도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권고를 받아들여 2005년에 9.19 공동성명을 만들잖아요. 그 보상 구조도 1:3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숫자로는 1:3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제네바합의나 페리 프로세스와는 규모가 다릅니다. 부시의 대북정책 때문에 앞의 1(북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커졌기 때문에 3(북 제외 5국의 보상)도 엄청 커져버렸지요. 북이 핵을 포기하면 북일수교와 북미수교를 하고, 5국이 경제와 에너지 지원을 한다. 핵문제가 상당한 정도 해결되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협의, 구축한다.

이렇게 94년 제네바 합의, 99년 페리 프로세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북한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국과 일본, 주변국들로부터 더 큰 보상을 받게 됐어요. 그건 북한의 외교력이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정치적 합의를 해놓고, 그 이행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미국의 실무자들이 자꾸 핵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북한의 진의를 의심하고, 선(先)행동을 요구하면서 북한과 책임공방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핵과 미사일 문제는 2~3년 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북한은 그 와중에 틈새 시간을 활용해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키우고...그런 식이었죠. 20년 가까이 미국의 정권이 세 번 바뀌면서 책임공방을 하고,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책을 재검토하는 식으로 시간을 쓰는 바람에 결국 틈새 시간이 생기고, 그게 북으로 하여금 다음 협상 카드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게 된 겁니다. 그러니 북한의 몸값은 점점 오르죠.

그러니 오바마 정부도 지금은 이렇게 말하면서 시간 보내지만, 결국 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상은 절대 없다는 말만 액면 그대로 믿고 이제 군사작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할 것도 없고, 차라리 미국이 북한을 군사작전으로 끝내줬으면 좋겠다고 단순한 생각을 하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제재를 얘기하면서도 외교적인 방법도 동시에 말하는 오바마의 말을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언론이 그렇게 써도 안 되고요.

-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의 급소이고, 거길 찌르는데 미국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언론에 그려지고 있는데...

BDA 금융제재가 초기에는 북한한테 강한 압박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 하는 겁니다. 북한이 압박을 받는다고 해서 손들고 나온 게 아니라, 바로 그 BDA 때문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슈퍼노트니 마약밀수, 금융제재를 꺼내는 건 그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과 같은 겁니다.

또 지난번 경험이 있어서 북한도 미리 단도리를 해서 금융 거래 추적이 잘 안 되게 만들었을 겁니다. BDA를 푸는 과정에서 미국이 그런 걸 가르쳐준 효과가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거듭 말하는데 BDA 제재를 해서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미국이 그것 때문에 놀라서 BDA를 풀어줬고 2.13 합의와 10.3합의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보상이에요. 외교, 경제, 안보차원의 보상을 바라고 문제를 일으킨 북한을 상대로 보상 없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합니까? 군사적으로 제재 못하잖아요. 미국한테는 이라크, 이란, 아프간 문제가 있고...더구나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커져서 미국의 경제 위기를 해소하는데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붙어있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

중국은 북한 주민들이 대거 중국 국경을 넘는 걸 두려워할 겁니다. 그러니 중국한테도 보상밖에 방법이 없어요. 오바마가 꿈지럭거리다 이렇게 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보상의 볼륨은 더 커져야 할 겁니다. 북한은 미북수교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즉각 하자고 할 거고, 경제 지원도 훨씬 더 크게, 그리고 더 빨리 해달라고 할 겁니다.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야 하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차피 보상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면 시간 끌지 말고 북한이 6자담-9.19 공동성명 체제로 돌아오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속도감있게 전개해야합니다. 관련국들과 제재문제를 협의한다, 이전정부 대북정책 재검토한다 하면서 시간 끄는 동안에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더 커질 거고, 그 결과 몸값만 자꾸 올라갈 텐데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지....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기 힘겨운 지경으로 끌고 가고 있어요. 지금.

그리고 미국 여기자들이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는데, 그것 때문에라도 미국이 북한을 마음 놓고 압박할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방향과 방법은 이미 나와 있는 거 아닌가요?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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