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불거진 시민들의 비판 여론에 한국방송(KBS)이 내부에서 개혁 움직임을 시작했다.
KBS PD협회(협회장 김덕재)는 4일부터 최종을 편성본부장, 조대현 TV제작본부장, 고성균 라디오제작본부장 불신임 투표에 들어갔다. KBS 기자협회(협회장 민필규)도 3일 기자총회에서 고대영 보도국장, 김종률 보도본부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열기로 확정했다.
KBS 기자협회 '진통' 끝에 '불신임 투표' 결정
KBS 기자협회는 3일 밤 9시부터 총회를 열어 고대영 보도국장, 김종률 보도본부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실시할 것인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이날 총회는 불신임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며 장장 4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총회에서 불신임 투표 실시 여부를 두고 투표를 실시하자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나타나 KBS 보도국의 '여론'을 나타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기자 123명 가운데 113명(91.9%)이 찬성표를 던졌고 반대는 8명, 기권은 2명으로 나타났다.
KBS의 한 기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방송 행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주요 이유지만 그간 이병순 사장의 취임 이후 '상명하복' 식의 보도국 운영 행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KBS 기자들도 어떤 이유로든 이 상태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투표 결과 '불불신임' 결정이 나온다면 사장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갈등도 적지 않았다. 민필규 KBS 기자협회장은 총회에서 투표가 실시되기 직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협회장을) 그만 두겠다"고 밝히고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KBS는 지난 1일 운영위원회에서 보도본부장·보도국장 불신임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으나 민필규 협회장 등의 반대로 3일 총회에서 기자 전체의 총의를 묻기로 했다.
KBS의 한 기자는 "민필규 협회장은 보도국장·보도본부장 불신임 투표에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는데 총회 때 '나는 투표를 할 수 없다. 불신임 투표는 적절치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이것이 정식 사의 표명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오후에 있을 운영위원회에는 참석하기로 했기 때문에 최대한 함께 가는 방향으로 설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 기자협회는 4일 저녁 6시 운영위원회를 열어 불신임 투표 실시 일정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민 회장의 사퇴 여부와 사퇴시 차기 운영 체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KBS PD협회 "이병순 사장의 책임을 묻는 첫 단계"
KBS PD협회(회장 김덕재)는 4일부터 최종을 편성본부장, 조대현 TV제작본부장, 고성균 라디오제작본부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에 들어갔다.
KBS PD협회는 3일 밤 발표한 성명에서 "사장의 대시청자 사과와 책임자 문책 등 PD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사측은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는 등 두루뭉술한 언급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불신임 투표에 들어가는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KBS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이미 위험 수위를 넘고 있었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의 조직 문화와 사장과 경영진의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 부재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는 이번 불신임 투표를 통해 현재 간부진들이 과연 KBS를 책임질 수 있는지,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인지 확인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병순 사장에게 고한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그림자처럼 숨어' 마치 유령처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자 노력하겠지만 이번만은 다르다"며서 "이번 투표는 당신의 안일한 태도에 안주해 바른 소리 한 번 못하는 책임자들에 대한 경고이자, 당신의 책임을 묻는 첫 번째 단계임을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KBS 경영진, '반발 여론 무마해달라' 청탁"
한편, KBS 경영진은 KBS 기자와 PD들이 유례없는 불신임 투표에 나서자 당황한 모양새다. 지난 1일 열린 KBS 노사 임시 공방위에서 사측 대표인 김성묵 부사장은 '책임자 사퇴' 등 중징계를 요구하는 KBS 노조에 대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자체 건의해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또 KBS 경영진은 각 협회가 불신임 투표 돌입을 결정하기까지 몇몇 간부들을 통해 KBS 기자, PD들의 반발 움직임을 무마시키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의 한 기자는 "기자 총회가 열리기 전 사측에서 '기자들의 반발 여론을 무마시켜달라'는 청탁이 들어와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KBS PD협회는 "사측 간부들에도 고한다. 만약 이번 불신임투표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어떠한 조직적 움직임이라도 있다면 사즉생의 각오로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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