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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를 KBS라 부르지 못하고…누구 탓이냐"

기자·PD들 '부글부글'…"87년 6월에도 이렇게 쪽팔리진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오는 11월 연임을 노리는 이병순 한국방송(KBS) 사장에게 유탄이 되고 있다. KBS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고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편파·축소 보도했다는 비판이 KBS 안팎에서 거세게 일면서 '이병순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러한 여론은 "취임 직후부터 이병순 사장은 연임을 위해 사내 비판 여론을 단속하는 데 주력해왔다"(KBS PD)라는 평가를 받는 이병순 사장에게는 '악재'인 셈. 이병순 사장의 임기는 지난해 8월 해임된 정연주 전 사장의 잔여 임기인 오는 11월까지로 이 사장은 KBS 이사회의 재신임을 받아 연임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KBS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아지고 KBS 기자나 PD들이 서울 덕수궁 분향소나 봉하마을 등에서 시민들의 반발에 맞닥뜨리면서 KBS 내부에서도 이 사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KBS PD협회(회장 김덕재)는 1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긴급 총회를 열어 △책임자 문책, △이병순 사장의 대 시청자 사과 촉구 등을 결의했으며 KBS 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도 임시 노사 공정방송위원회를 개최했다. 또 KBS 기자협회(회장 민필규)도 이날 저녁 운영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KBS를 KBS라 부르지 못하고…누구 탓이냐"

이처럼 KBS 내부가 들끓는 것은 취재, 제작현장에서 KBS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직면한 기자와 PD들의 충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KBS 중계차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이나 영결식과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 등에서 시민들의 항의를 받아 쫓겨나거나 자리를 옮겨야 했고 KBS 기자들은 시민들의 항의를 피해 KBS 로고를 뗀 채 취재해야 했다.

또 한 시민은 29일 서울 광장에 주차되어 있던 KBS 중계차 앞 유리에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게 조작하고 시청광장의 무대는 뒷벽만 쳐다보게 해놓고 운구행렬 때는 음악으로… 우리의 슬픔, 우리의 분노를 표현할 시간을 비열한 수작으로 차단했습니다. 그를 보내는 오늘마저, 당신을 보내는 오늘마저 우리는 저들의 저열한 공연만 쳐다보다 갑니다"라는 글을 붙여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KBS 보도를 총체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분위기에 KBS의 한 사원은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지난 이틀간 어떻게 방송했는지 아느냐. 촬영기자들은 KBS 카메라가 아닌 것처럼 촬영했고 중계 스탭들은 마치 옆에 있는 다른 방송사 직원인 양 중계차에 몸을 숨겨가며 녹화를 진행했다"며 "우리는 과연 누구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냐"라고 답답한 속을 토로했다.

그는 "KBS의 PD와 기자들은 취재 현장 혹은 제작 과정에서 대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KBS에 대한 가장 1차원적인 평가를 내부로 전해야 한다"며 "사장 이하 경영진이 아무리 '공정'이라 외친다 해도 왜 KBS 뉴스와 프로그램이 '편파'라는 평가를 받는지 고민해야 하고 '스스로 KBS를 부정해야 하는' 현장 스탭의 볼멘소리를 고민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이러한 KBS에 대한 '비토' 여론이 확연히 드러난 것은 뉴스 프로그램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해온 KBS <뉴스9>의 시청률 역전 현상. 시청률 조사기관인 'TNS 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 KBS <뉴스9>의 시청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애도기간 동안 MBC <뉴스데스크>에 근소한 차이로 따라잡혔으며 특히 지난 24일과 29일에는 12.9%와 14.5%에 그쳐 각각 14.5%와 16.1%로 나온 MBC <뉴스데스크>에 역전됐다.


▲ KBS 카메라 기자가 항의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KBS는 왜 이명박 정부 비판 발언은 못 내보내나"

이러한 안팎의 반발 여론에 KBS 경영진도 당황한 분위기다. KBS는 지난 27일 "KBS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방송 시간이 지상파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23일과 24일 양일 간 방송 시간을 조사한 결과 KBS는 904분으로 MBC의 824분, SBS의 643분보다 많았다"고 홍보하는 이례적인 보도 자료를 냈다. 또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 위원을 맡고 있는 이병순 사장과 유광호 부사장 등이 직접 노 전 대통령 조문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순 사장 등 KBS 경영진의 이러한 대응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들의 반발은 KBS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 전달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거지는 것인데도 이 문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이는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거듭 제기되고 있는 '제작 자율성 침해' 문제와 겹쳐 논란을 키우고 있다.

최근 KBS 기자협회는 "(김종률) 보도본부장이 '정부를 비판하는 조문객의 인터뷰를 빼라'고 지시했다"고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보도본부장은 홍보팀을 통해 "해당 인터뷰 내용이 정치적 선전 구호의 성격을 띠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추모' 여론 외에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은 전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인한 셈이라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일 낸 성명에서 "경찰의 분향소 강제 철거 등의 보도를 볼 때 여전히 KBS는 이명박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KBS와 MBC가 인용한 시민들의 인터뷰 내용만 비교해 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발언은 싣되 이명박 정부와 경찰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발언은 싣지 못하는 것이 KBS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KBS 노동조합은 "작금의 '추모 민심'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오만한 권력이 독주하는 상황 속에서 층층이 쌓인 반감과 울분이 통곡과 오열로 변한 것"이라며 "KBS는 민심을 그대로 전달하기는커녕 보수 언론과 동일한 프레임으로 정권보호와 안위를 위한 뉴스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제작 자율성 침해 전면화…나라도 말아먹고 회사도 말아먹고"

KBS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제작 자율성 침해' 문제가 거론되어 온 '이병순 체제'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내보이는 문제라는 비판이 거세다.

KBS의 한 사원은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KBS도 광장 공포증인가. 정말 보도지침, 혹은 중계·제작 때 화면 구성에 대한 지침이 있는 것 아닌가. 누가 봐도 의심가는 상황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KBS의 다른 사원은 "이제보니 조·중·동과 우리 회사는 한 배를 탔다. 1년 만에 나라도 말아먹고 회사도 말아먹고 다들 배 두드리며 주무시고 있느냐"고 질타했고 또 다른 사원은 "1987년 6월에도 이렇게까지 쪽팔리진 않았다. 사장, 부사장, 편성본부장, 보도본부장은 KBS인으로 밥값 좀 하라"고 꼬집었다.

전 KBS 노조위원장 출신인 현상윤 PD도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부사장과 편성, 제작, 보도, 라디오본부장 그리고 보도국장 등에게도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창의성과 전문성을 무시하고 지시와 명령의 상명하복 체제로써 방송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짓밟는데 앞장선 주요 간부들 또한 KBS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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