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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관 노무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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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

[김민웅 칼럼]<40> 국민에게 두 번 선출된 "서민 대통령"의 빛나는 유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그 심화되어가는 의미

우리는 지금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호민관이란 기득권의 폭력과 탐욕으로부터 민중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선출된 책임자이다. 권력이 제 욕심을 차리면서 누리려 들기만 하고 백성을 섬기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노여워하기 시작한 민의(民意)가 힘을 합쳐 세운 기념비적 존재가 바로 '호민관(護民官) 노무현'이다. 이리하여 그는 살아서 한번, 죽어서 한번, 합쳐서 두 번 이 나라 민중의 최고 수호자로 선출되었다. "영원한 서민의 대통령"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어지고 진화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전례 없이 비범한 경험이다. 그는 우리 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어느새 살아서 우리의 죽음과 삶 자체가 되었으며, 역사를 변혁시키는 움직일 수 없는 지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인간적, 정치적 한계는 그의 죽음으로 일거에 돌파되었고, "노무현"이라는 존재와 그 이름 안에 담긴 소중한 유산만이 남아 우리의 공동체적 의지와 실천의 힘이 되고 있는 중이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보(悲報)를 접했던 애초의 충격과 슬픔을 넘어, 자살이 아닌 정치적 타살이라는 맥락이 부각되면서 그를 온갖 야비한 방식으로 벼랑에 몰아 죽인 세력에 대한 역사적 분노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이 분노는 급기야 이명박의 분향소 출입을 불가능하게 하는 수준에 올랐으며, "분향집회의 정치적 변질" 운운으로 그 두려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없는 자들의 끝까지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이명박은 민초들의 자발적 조문을 저지하기 위해 서울광장을 틀어막고 있지만, 그 자신은 분향소 접근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누가 정작 역사의 출입구에서 봉쇄당하고 있는지 자명해지고 있다.
▲ 2002년 대선 당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

슬픔, 분노, 저항 그리고........

분노는 그러나 단지 분노로만 그치고 있지 않다. 그의 죽음 속에 견고하게 담긴 저항의 의지를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응집된 개혁과 진보의 역사적 성취를 무산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그가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왔던 에너지가 절정에 다다른 지점에 우리는 서게 된 것이다. 그가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는 절망의 나락이 아니라, 자신의 몸 하나로 새로운 시대를 뚫고 나가려 했던 이의 고뇌에 찬 결단의 현장임을 우리는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밤이 이슥해서야 비로소 낮의 의미를 알게 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이렇게 우리 앞을 날개를 활짝 편 채 날아가고 있다.

이 저항의 의지에 더하여 우리는 자신의 몸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자기희생의 결과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도 아울러 체험하고 있다. 자신에게 문제 삼을 만한 과오가 있다 해도 그것을 비열하게 부풀리고 인간적 존엄성의 마지막까지 조롱과 모욕으로 짓밟으면서 이를 계기로 민주주의 전체의 소멸을 기도하려는 권력의 야만과 폭력에 대해, 노무현은 자신을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침으로써 모든 악의 흉계를 삽시간에 종식시키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에게 "역사 속에서의 부활"을 그 대가로 돌려주고 있다.

"부활"이라는 단어는 기독교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개념이자 역사적 체험이었다.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그 이후의 사건에서 부활 경험은 이러한 기존의 부활 개념이 극적으로 압축되었고 신학적 교리로 정리되었다는 점과 예수 자신의 실존적 부활을 신앙으로 고백한다는 차이를 가지고 있으나, 그로 인해 부활사건의 총체적 이해를 보다 새롭게 해주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예수를 비난했던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았고, 바리새파는 부활을 믿었던 것을 봐도 부활이란 개념을 둘러싸고 있었던 논쟁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되어온 일이었다.

"부활"의 정치사회적 의미

그런데 이 부활의 개념이 기독교에서는 고도로 신학화하면서 애초부터 그 안에 있었던 정치사회적 맥락과 의미는 제거되어버리고 말게 된 것은 우리에게 "부활"의 집단적 경험과 역사성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서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이 좌절하고 만 것 같지만, 나타난 현실은 그와 반대였다. 그 힘은 놀랍게도 보다 차원 높게 되살아나서 기존질서와는 전혀 다른 혁명적 삶을 이루어나가는 운동과 공동체가 출현하게 된 시발점이 된 것이다.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인해 예수의 실존적 부활은 믿지 못하겠다고 해도, "부활"은 적어도 예수를 따르던 이들의 가슴과 영혼에 다시 켜진 불꽃이었고, 그 집단적 행동의 역사적 실천력을 획득하게 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깊이 주목할 바가 있다. 본래 그리스어에서 "부활"은 "봉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죽었던 것이 되살아났다는 이적의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역사의 대세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여긴 힘이 봉기와 반란을 통해 역사를 주도하게 되는 사건을 뜻한다. "부활"이라는 단어는 "아나스타시(ανάσταση)"로서, 앞의 접두어 "아나(ανά)"는 영어로 "per"에 해당하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라는 방식으로" 또는 "~을 통과해서" 내지는 "~을 수단으로"라는 뜻이다. 뒤에 붙는 "스타시(σταση)"는 어떤 상황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차원의 집단적 반란과 저항을 말한다. "스타시" 자체로 봉기, 반란, 저항, 집단적 항거 등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따라서 "부활의 사회적 의미"는 기득권 질서와 정면으로 마주하여 이를 역전시키는 사태를 가리킨다.

탐욕스러운 주류세력의 핍박으로 이미 죽었다고 여긴 변방의 힘이 역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모두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일깨우고 역사적 실천의 장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부활의 진정한 사회적 의미이다. 그러기에 죽음의 자리에서 비탄과 슬픔으로 무너져 내려 앉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보를 감당하는 이들을 죽여 온 자들을 도리어 생명의 기력을 충만하게 뿜어내면서 엄청난 기세로 압도해버리는 세상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곧 남은 자들의 의무와 권리가 된다. "호민관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이 발견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그러한 책무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바다. 그것이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카이사르, 그리고 그라쿠스 형제

호민관이 등장하게 되는 최초의 현장인 로마의 역사는 우리에게 오늘날에도 소중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시이저"라고 부르는 "카이사르"는 한편에서는 독재자라고 비난했지만 실제로는 민중의 벗이었다. 그가 살해된 까닭은 귀족정치를 공화정으로 위장해온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미래가 불안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서민들의 빚 탕감을 비롯해서 가난한 민중들을 위한 정책을 폈고 이로 인해 귀족정치의 기반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자들이 그를 "공화정의 적"으로 몰아 암살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결국 역사에서의 승리자는 카이사르가 된다. 카이사르가 살해되자 로마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암살자들을 추방하고 추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모두 카이사르가 진정 누구에게 벗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카이사르는 형식으로는 집정관이었으나 진정한 역할로서는 호민관의 모습으로 이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로마의 역사에서 어떤 흐름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것인가? 카이사르가 태어나기 30년 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원전 131년, 로마의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로마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어 줄 토지법을 제안한다. 호민관은 귀족들의 집합인 원로원을 견제하면서 로마의 일반서민들의 입장을 지켜내는 역할을 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 일로 해서 그라쿠스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민의를 배반하는 호민관은 아예 관직박탈을 법으로 정했던 그는 세 부족으로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그의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도 형을 따라 호민관이 되어 개혁정치를 펴려 하다가 그 역시 살해되고 만다. 가이우스는 토지법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헌정질서의 개혁을 추구했다. 그는 빈민층을 위한 식량공급이라는 보험체제를 만들었고 로마시민의 특권을 이탈리아 반도 서민층 모두에게 확대하는 노력을 했으며, 군사도로건설에 치중했던 정책을 일반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도로건설 쪽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력도 기득권 세력의 반격으로 좌절하고 말았고 그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로마 민중들은 그를 죽인 세력을 역사에서 죄인으로 만들고 그라쿠스 형제들은 성역의 존재로 떠받들었다.

로마 사가로 저명한 영국의 G.P. 베이커는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그라쿠스 형제들을 죽임으로써 이들의 정신과 성과를 파멸시켰다고 생각했으나, 도리어 그라쿠스 형제들을 영원한 존재로 만들고 말았다. 그라쿠스 형제, 그들은 죽었으나 그들의 역사적 성취와 선택은 되살아나서 민중들과 함께 행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전통을 이어받은 인물이 카이사르였다. 호민관의 얼굴을 한 집정관이었던 것이다. 카이사르를 죽인 자들은 역사에서 소멸되어버렸고, 그는 로마 역사의 심장이 되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죽지 않았고 살아서 호민(護民)의 정의를 부단히 일깨웠던 것이다.

진정한 추모를 위해

이명박 정권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PSI 참여를 공식 선언했고, 이로써 추모주간 이후 공안정국의 긴장을 보다 바짝 죄려는 계획을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최대한 평화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보다는 정권 안보라는 차원으로 정국 탄압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지금의 추모열기와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반전의 상황을 저지하려는 의도겠으나, 이미 살아 있는 불꽃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힘을 얻은 5월의 역사는 6월을 기세 넘치게 돌파해나갈 것이다. 부활, 곧 봉기라는 "아나스타시"의 역사가 이걸로 꺾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파멸을 강요해온 권력이 "호민관 노무현"의 깃발을 얻게 된 민주주의의 주력을 이기지 못한다. 이미 이길 수 없다. 이기려 들면 들수록, 이 세상의 모든 야비함과 이 세상의 모든 추악한 정략과 이 세상의 모든 탐욕을 성채로 둘러싸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세력은 상대를 향해 겨눈 칼이 도리어 자신들의 목을 겨냥하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모두 어느새 광장에서 행진하고 있다. 손에 손에 촛불이 들려 있다. 2009년 5월 27일, 저들에게 빼앗긴 광장을 되찾아오는 시작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역사는 자기를 던진 이에게서 부활의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슬프지만, 더욱 강해지고 있다.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는 그의 뜨거운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노하나, 더욱 평온하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려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드는 저 길고 긴 인파의 행렬에서, 진실에 대한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두려워했으나, 이젠 무서운 것이 없다. 모든 권위와 기득권과 생명조차 버리고 역사 속에서 영원한 존재가 된 그가 있는데 그 무엇을 머뭇거리겠는가?

<호민관 노무현>, 우리에게 때로 기쁨을, 때로 실망과 낙담을 주기도 했던 당신, 그러나 이제는 언제나 감격과 용기와 위대함으로만 남은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죽어 있던 모든 이들의 정신과 영혼이 생각지도 않게 힘차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승에서 섭섭했던 것 이젠 충분히 잊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 민심의 파도가 출렁이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실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편히 가십시오. 남은 자가 된 우리가 남은 자의 몫을 다하겠습니다. 5월은 이렇게 노무현 당신으로 해서, 빛나는 계절이 되고 있네요. 무엇을 어찌할 바 몰랐던 6월은 이렇게 우리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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