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 대해 '민주주의의 후퇴' 나아가 '민간독재'를 말하는 것은 다수 의석만을 믿고 일체의 대화와 토론, 설득과 협상을 거부하는 일방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100일간의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치도 논의의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여당의 일방주의적 정국운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미디어 구조개편을 수의 논리에 의해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언론을 민주주의의 제4부로 일컫는 것은 언론이 대화와 토론, 설득과 협상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언론의 구조 개편을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그들의 입맛대로 개편한다는 것은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여론의 유통구조를 영구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주의 후퇴'의 제도화ㆍ영구화가 우려되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은 이명박정부의 미디어법 개정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릴레이 기고를 집중연재할 예정이다. <언론광장>은 지난 2004년 출범한 중견언론인들의 단체로 상임대표인 김중배 선생을 비롯해 200여 언론인이 참여하고 있다. 편집자
언론관련법의 처리 여부를 놓고 국회와 여론, 그리고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은 전에 없던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권은 본래 신문, 방송을 장악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아왔으며 이제는 개인들간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인터넷까지 오로지 정권 장악을 위한 이용 대상으로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는 과거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들어 놓은 신문, 방송, 인터넷의 공익적이고 시민문화적이며, 민주적인 몇몇 요인들을 자본 시장 위주의 새로운 소유 체제로 방향 전환시키려는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민 생활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방송의 소유형태에 관한 부분이다. 이미 여론과 신문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 보수성향의 큰 신문사와 자산규모 10조원 이하의 20~30개 대기업들은 집권당과 함께 지상파 방송은 물론 뉴스·오락을 모두 다루는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하거나, 지분을 차지하려는 의도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관련법과 관련된 논의의 핵심은 이렇게 되면, 즉 보수성향의 큰 신문사나 대기업이 방송매체를 갖게 되면 국민생활에 어떤 변화가 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중매체의 소유변화가 갖는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사실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논리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대중 매체의 본질까지 모두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간 정치권력들은 이런 전문성에 대한 무관심을 악용하는 역사를 거듭해 왔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는 큰 신문사나 대기업이 방송을, 그것도 시사·뉴스가 포함되는 전파매체를 소유하면 안 된다. 그 이유를 쉽고 솔직하게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감시 언론'으로 인정받아라
첫째 거대 신문사나 대기업이 뉴스 전파매체를 소유하면 약하게나마 유지되던 방송의 언론 기능이 존립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신문 시장을 거의 지배해온 몇몇 보수 성향의 신문이 오랜 기간 일방적으로 편들어준 정당과 정파가 집권했다. 그런데 이들이 '전리품 획득'의 개념으로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하거나 그 운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이나 비판 기능은 존립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도 언론은 '권력과 갈등이나 합리적 비판을 피해가기만 하면 돈을 버는 일은 그런대로 보장을 받는다'는 유혹 때문에 국민 편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감시 언론으로서의 의무 기능을 점차 약화시켜왔다. 권력은 권력대로 상업론, 산업론, 신자유주의론 등 언론사의 장삿속만 챙기는 주장을 앞세우도록 하고 정치적으로 극도의 편파주의를 유지하게했다. 즉 보수 권력이 집권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 후반까지 상업주의적 주장이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주장을 밀어내면서 저널리즘의 책임을 저버리는 양상을 보인 것.
그 이후 최근 10여년간에도 큰 신문들은 국민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거나 통합하기는커녕 무가지, 경품, 현금 등을 뿌리는 저질 경쟁에 나섰을 뿐 '집권'만을 지향하면서 대립하는 국민의견에는 증오에 가까운 색깔론으로 분류하고 비난해왔다. 이들 신문은 사업적인 이익 외에, 저널리즘의 본분이어야 할 공정성과 객관적 안목은 국민의 기대만큼 지니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또 지향하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이러한 매체들이 어느 정도 견제하고 경쟁해온, 특성이 다른 매체까지 모두 점유하게 한다면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언론 기능은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큰 신문사들이 꼭 방송을 점유하고 싶다면 독자, 소비자로부터 권력 쪽이 아니라 국민 쪽에 서 있는 감시 언론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점이어야 한다.
'대기업 참여 확대'가 아니라 '상업성'에 성찰할 때
또, 10조원 이하 자본 규모를 가진 대기업이 방송사업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매스미디어의 산업화, 자본의 견고성, 글로벌 경쟁의 확대, 심지어는 궁핍해진 국민을 향하여 일자리를 늘려준다는 설득까지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장은 대부분 목적 달성을 위한 무책임한 주장들일 뿐이다. 오히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상황에 따라서는 대기업 참여는 포기할 수도 있다"며 전략적 활용을 예고하면서 보수 성향 신문의 방송 진입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기색까지 보이고 있다.
방송에 산업적 구도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네 방송에 지금보다 더 산업과 시장 기능을 늘린다면 대체 그 모양새를 어떻게 만든다는 뜻인가. 우리나라 방송은 이미 언론이나 문화의 시각이 아니라 시장의 안목으로 볼 때 더 이상 산업과 경쟁을 주장할 수 없을 만큼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양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처럼 전국 각 가정에 들어오는 50~70개의 채널들이 지상파의 오락, 값싼 외국영화, 그리고 상품 판매를 위한 '홈쇼핑'만으로 채워진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중 사업이 잘 되는 채널들은 이미 '대기업' 이 장악하고 있다.
그 틈새에서 돈 벌이는 신통치 않지만 국민생활에 꼭 필요한 (채널 편성시에 재삼 강조한) 전문성은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모양새인 것이다. 여기에 채널 성격을 불문하고,즉 언론 기능까지 포함하는 채널을 대기업이 소유할 수 있게 연결시키는 것은 권력 변화에 따른 정치적 이용의 의도 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이미 일자리를 늘린다는 설명은 이미 쑥 들어간 상태다.
이미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정도의 상업주의를 달성하고서도 그도 모자라 큰 기업들이 사업의 의욕만 보이는 곳에 방송을 더 늘어놓을 곳이 있겠는가. 국민들의 문화적 기력과 주머니 사정을 더 메마르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대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기보다는 '이래도 안 보겠느냐'는듯 기존의 채널들이 무모하게 펼쳐놓은 상업성과 자극성에 대해서 성찰과 조절이 필요한 시기다.
언론 관련 정책, 반드시 국민의 여론 수렴해야
마지막으로, 보수 성향의 큰 신문사와 대기업에 방송 소유를 개방하는 정책 수행 방법, 즉 이들 조항이 담긴 언론 관련법을 밀어붙이는 여당의 방법론과 관련해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 기술 발전으로 채널이 아무리 많아지고 자본의 축적으로 그 내용도 아무리 흥미 위주로만 간다 하더라도 안방에 배포되는 방송의 보편적 내용은 적어도 공정성과 윤리성에서 최저의 지켜야할 선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고 결정해주는 정책수행도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이 관문을 우리는 '여론' 또는'국민의 보편적 의견'이라고 부른다. 만약 한나라당이 어려웠지만 성공적으로 집권한 마당에 그런 번거로운 절차가 왜 필요하냐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방송이란 당장 보고 들을 때는 그 위험한 해독성을 모르지만 축적된 해독이 겉에 나타날 때쯤은 이미 치유가 어려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방송허가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배급하듯 나누어주던 형태를 고쳐서, 즉 방송의 허가, 재허가권을 구 공보처로부터 방송위원회로 이관하는 데 약 20년이 걸렸다. 이 입법과정을 2000년의 방송 개혁이라 불렀는데 거기까지 이르는데 반영한 국민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많았을 뿐 아니라 끈질긴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자 비로소 방송이 정부의 일방적 영향력에만 좌우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 구체적인 조직이 '방송개혁위원회' 였다. 여기에서는 학계, 정부, 노조, 방송사까지 포함하는 대표단이 구성되어 3개월간 현재의 방송언론구조를 구축하는 일을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명분으로만 내세우던 몇가지 민주화의 실행항목을 결정했다. △그 동안 줄세워 놓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배급하던 방송의 허가권, 재허가권을 방송위원회로 돌려주고 △방송위원과 공영방송의 사장 등의 임기를 보장해주며(대통령의 임명권만 표시) △방송의 기본철학을 민주주의와 국민의 의견형성 기능으로 분명하게 표시하고 △공영방송 중 KBS를 국가의 기간방송으로 위상정립을 해주고 △ 전국에 큰 영향력을 갖는 일간신문과 대기업은 언론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위해서 방송을 무차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일부 희생자는 발생했지만 이와 같은 수십년에 걸친 논의와 실험 그리고 언론인 및 언론전문가, 시민의 투쟁, 토론, 합의로 얻어진 결과들이 현재 언론의 모습인 것이다.
정권 제멋대로 결정? 국민이 책임 물을 것
한나라당이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끝내 여론 수렴 절차를 무시하고 국회 본회의 의결만 주장하는 행태는 훗날 기록으로 남는 '방송개악 정책의 상징'이 될 것이다. 입법 전까지 '미디어위원회'에서 '여론' 혹은 '국민의 의견'을 최소한이라도 반영하겠다고 한 공언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정권 뜻대로 결정하는 방송 제도에 국민들이 익숙해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국민들은 여기에서 나타나는 폐해에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 관련 법안을 무모하게 밀어붙이면서 "앞의 정권은 달랐느냐"라든가 "지금까지 독점적으로 운영된 공영 또는 민영방송은 잘 한 것이 있느냐"는 식의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럴 수록 똑같이 무모한 논리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과거만을 기준으로 하거나 퇴보하는 것이 정치나 입법은 아니지 않는가.
이명박 정부는 방송과 인터넷에 무모한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기능이 취약해진 회사들에게 방송을 모두 전리품처럼 분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정책 수행은 방송을 포함한 기존의 위력을 가진 매체들이 발전을 향한 겸허한 성찰과 자기 혁신을 필요로 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이 국민의 입장에서 정권이 언론을 모두 쥐고 권력 유지나 연장에만 활용하려는 의도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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