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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호남의 길을 말한다

[김성훈 칼럼]<26> '정치'가 아닌 '문화'로 치유해야

대선 때 90%의 투표자가 반 새누리당 후보에 투표했던 상당 부분의 전라도 사람들이 선거가 달포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정신적 충격과 혼란·허탈감에 젖어 있다고 한다. 그 허탈감 속에는 졸견이지만 호남인의 역사적인 한(恨)이 내재돼 있다고 생각된다. 수많은 세월, 부당히 차별받고 수모와 고통을 받아오던 역사적 한이 이번 대선 결과 다시 나타난 것이다. 부정과 비리, 부패세력들이 자본과 언론세력들과 결합함으로써 집단적인 탐욕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있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시대에 단순히 어느 특정세력에게 선거에 졌다고 해서 전라도가 이처럼 총체적인 멘탈붕괴(정신적 충격)에 빠질 수는 없다. 심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켜켜이 쌓여온 1500년 묵은 전라도의 한이 대선 결과 또다시 나타난 현상을 두고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에 따라서 그 처방이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라도의 정신적 충격 현상은 세가지 유형으로 나타났었다.

그 첫번째가 백제의 부흥운동에서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 가장 허약했던 신라정권과 그 비주류세력 김춘추 김유신 등이 삼국통일의 명분을 내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초강대국 당나라에 빌붙어 고구려를 내주고 백제를 얻어낸다. 엄밀히 말하면 한강 이남의 땅만 가지고 선 삼국통일이라 말할 수 없다.
 
신라에 나라를 빼앗긴 백제 후예들은 복신과 도침, 그리고 흑치상지라는 걸출한 장군 등이 일본으로 건너간 왕자 풍을 불러들여 부흥운동을 전개한다. 그들은 한동안 강력한 세력을 떨쳤다. 백제부흥을 향한 무력투쟁을 크게 벌인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부 분열에 의해 복신과 도침이 죽고 풍마저 고구려에 투항한다. 또 흑치상지 등 나머지 세력은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백제 부흥운동은 좌절하고 만다.
 
그 후 2세기가 지날 무렵, 즉 신라 말기에 다시 희대의 걸출한 영웅 진훤(견훤)이 무진주(광주)와 완산주(전주) 땅에서 제2의 (후)백제 건국운동을 일으킨다. 한강 이남을 휩쓸던 진훤의 후백제 세력도 45년만에 부자간의 불화로 고려국 왕건에게 패퇴하고 만다. 앞의 두 백제부흥운동의 성격은 정치적 부흥운동이었다. 결국 이들 사례의 역사적인 교훈은 정치권력을 가지고서는 전라도의 한을 풀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유형은 동학농민혁명으로 나타난다.

전봉준에 의해 전라도 황토현에서 봉기한 동학 혁명은 조선반도에서 외세와 탐관오리들을 몰아내고 내정개혁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왕권을 갈아치우자는 것이 아니고 국정을 개혁하여 백성이 제대로 대접받는 나라를 만들자는 순수한 민중·민초들의 봉기였다. 인내천(人乃天)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학혁명은 오늘날의 민권·인권운동으로 함축되고 광주 5.18 민주항쟁 정신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순수한 민초들에 의한 외세 배척, 내정 개혁운동 역시 외세를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전라도 장흥 땅에서 처참한 최후를 마감하였다.
 
위 두가지 유형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무력에 의한 투쟁과 정치적 항거로써 권력을 쓰러뜨려서 한을 풀려는 노력은 너무나 희생이 크고 성공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외세와 거대자본의 뒷받침을 받는 신라 원형의 정치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정(情)의 문화와 의리(義理)에 기초한 전라도의 민생 민주 민권운동을 태생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정치에서 잃은 것을 정치투쟁으로 풀기가 어렵게 고착화된 사회구조하에선 민초들의 순수성만으로 그 한을 풀 수 없다. 이점이 호남이 깨달아야 할 임계 지점이다.
 
세번째 유형이 장보고의 창조적 에너지이다.

신라 후기(그들은 통일신라로 부른다) 태종 무열왕 이후부터이다. 허망하게 나라를 잃은 백제인들이은 정신적 충격(멘탈붕괴)에 빠져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자포자기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장보고(張保皐), 동양3국에 빛나는 위인이다.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자' '저항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바꿔서 우리 힘으로 스스로 잘 살아보자'는 것이 장보고의 정신이었다. 그 것이 바로 중, 일, 한 동양 3국의 정사에 기록된 장보고의 청해진 활동이다.
 
장보고가 청해진운동을 전개한 수단은 세가지였다. 하나는 고구려, 백제 유망민들과 신라 민초들의 단결된 협동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사회적 협동운동이고 사회적 기업 활동이다. 장보고는 중국과 일본의 주요 교통요지에 진출해 뭉칠 수 없는 3국의 후예들이 공동으로 상권과 생산, 무역활동을 장악하고 군산(軍産) 복합체를 뿌리 내렸다.
 
또 다른 수단은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중앙정치는 경주에 있는 신라왕이 하지만, 장보고는 경제·문화·군사에 이르기까지 자치권을 행사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상업요충지에 신라방과 신라촌 등 24곳이나 교두보를 구축하였다. 모두 정경분리 정책에 입각하였다.
 
마지막으로 그가 사용한 수단은 정(情')과 의리'에 기반을 둔 문화 예술 학술 종교의 진흥이었다. 장보고에 의해 많은 승려와 관료, 학자들이 선진 학문과 문물을 배워왔다. 문예부흥을 이룬 것이다. 완도에서 멀지 않은 강진을 중심으로 고려청자를 일으킨다. 엄밀히 말하면 신라말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에 꽃을 피웠기 때문에 '신라·고려청자'이다. 하동, 보성 등 남해안 일대에 차(茶)문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도자기와 녹차는 장보고 선단의 주요 교역품이 된다. 당시 우리나라 불교의 구산선문과 일본 불교의 천태종도 장보고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장보고로 인해 전라도 일대와 신라가 문화·예술·종교에서 꽃을 피우는 중흥기가 되었다.

그러나 장보고는 그 자신 지나칠 정도로 정과 의리의 사나이였다. 태종무열왕의 신라정부가 전라도 땅 광주에 설치한 도독으로 와 있던 김우징이 신라 왕권경쟁에서 패해 그 아버지가 부당한 죽임을 당하고 장보고를 찾아와 호소한다. 정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장보고가 볼 때 그것은 정녕 이치와 의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장보고는 정년(鄭年)을 시켜 군사 5000명을 경주로 보내 쉽사리 신라조정을 정리하고 김우징을 왕(신무왕)으로 세운다. 그가 일찍 죽자 아들 문성왕이 뒤를 잇는다. 문성왕은 아버지 신무왕이 장보고에게 약속한 장보고의 딸과의 결혼약속을 지키려한다. 그러자 신라의 기득권 정치세력은 섬놈(海島人)의 딸은 아니된다고 반대한다. 그리고 장보고의 옛친구인 염장을 보내 그를 암살 한다. 친구를 믿고 의리를 지켰던 장보고는 대취해 잠들었다가 염장에게 옆구리를 찔려 죽임을 당한다('염장을 지르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 요컨대 장보고가 의리에 끌려 정치에 관여한 것은 비극이었다.

이처럼 전라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정이며 의리이다. 이것은 호남인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대 시장경제 문명사회에는 맞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갖은 음모술수와 모략으로 피터지게 싸움을 벌이는 정치판과 탐욕의 시장경쟁 구도하에서는 도저히 맞지 않다. 그래서 언제나 전라도는 해볼 수 없다. 아무튼 신라정권의 배신에 의한 장보고의 죽음과 청해진의 완전 혁파는 전라도의 또하나의 한(恨)이 되었다.
 
결국 어떤 동기와 계기이건 정치적 무력적 해법은 정신적 충격(멘탈붕괴)에 대한 해결점이 되지 못했다. 백제의 부흥운동, 후백제의 건국투쟁이 다 그렇다. 또 동학농민혁명에서도 나타났듯, 무력저항과 정치투쟁은 전라도의 정신적 붕괴를 해결하는 해답이 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전라도가 겪고 있는 정신적 붕괴의 해법은 '저항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창조적 에너지로의 변화는 정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전라도가 갖고 있는 문화·예술의 원력과 자연환경과 천혜의 다도해 자원 및 친환경 농수산업을 6차 산업으로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호남이 갖고 있는 천혜의 인적 자연적 자원을 창조적 문화 예술로 융합해 내야 한다는 뜻이다.

▲ 민주당은 18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경선 첫 지역으로 전라도 광주를 택했다.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광주는 고 김대중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텃밭이다. 이번 대선에서 광주·전남 최종 투표율은 80.4%로 전국 평균인 75.8%를 초과했으며, 문재인 후보는 92.0%의 득표율을 보였다. ⓒ연합뉴스

위대한 지도자, 김대중

사람들 가운데는 호남의 미래를 김대중 시대의 부활 같은 정치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전분야에 탁월한 안목을 두루 갖춘 김대중 같은 불세출의 인물은 백년에 한명 나올까말까이다. 그런 사람이 다시 나오기를 바라야 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그것은 답이 아니라 바램일 뿐이다. 호남은 정치에서 잃은 것을 문화·예술에서 찾아야 한다.
 
문화·예술이 무엇인가. 바로 호남인이 살고 있는 삶 그 자체이다. 인적 물적 문화적 자원과 천혜의 대자연을 찬미하고 사랑하는 자연환경주의로 가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恨)이 아닌 창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또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자'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이민과 같이 해외로 도망가자는 것이 아니다. 첫째,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친환경적이고 인문학적인 국내외 자본과 기술, 사람을 호남으로 불러들이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호남을 찾아와서 투자하고 문화 예술 자연환경을 찬미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과 연결된다. 중앙의 시혜에 매달려 있는 지금과 같은 무늬뿐인 허울 좋은 지방자치가 아니라 협치(協治)에 기반한 진정한 지방자치(governance)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스스로의 살 길을 찾아 가는 길은 관 주도에 위한 것이 아닌 백성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자치다. 그것이 협동이고 공동체의 길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방분권제다. 그리고 중앙집권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지역별 부익부 빈익빈 체제를 깨뜨리는 것이 재정분권이다. 분권과 협동에 기반을 둔 문화 경제 공동체건설은 각 분야에 사회적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활동이 그 중요수단이다. 이것을 엮어내어 우선 전라도 사람부터 사람답게 가꿔야 한다. 그리고 지리산과 다도해 등 천혜의 자연자원을 세계적 문화·예술, 관광 그리고 사람과 경제의 보물단지로 키워나가야 한다.

천형(天刑)의 땅이 아껴 놓은 땅으로

박정희 정권 18년을 포함, TK정권 36년, 김영삼과 노무현 정권까지 포함하면 영남정권 46년 동안 호남은 완전히 버림받았다. 신라통일기부터 계산하면 1500년 동안 버림받아 온 천형(天刑)의 땅 이었다. 그러나 버려졌던 전라도가 이제금 다시 보니 신이 아껴놓은 천혜의 땅, 소중히 가꿔나갈 아름다운 강산인 것이다. 산업개발 낙후로 환경파괴와 오염이 최소화되어 있는 지역인 것이다.
 
이 땅을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을 통한 진정한 지방자치로 가꿔 나가고 그곳에 사는 민초들이 오순도순 고유한 삶의 문화, 두레·품앗이 정신으로 살림살이를 엮어내자는 것이다. 핵심역할은 문화와 예술이 되어야 한다. 호남은 그동안 한(恨)의 문화·저항의 예술이었다. 그 한을 승화시킨 창조적인 문화·예술이 정신줄이 되어 각 방면, 각 분야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로 만드는데 지방분권적 지자체가 핵심수단이다.
 
기득권을 가진 정권이 흔히 쓰는 지배수법은 'divide and rule(분열시켜 지배한다)'의 책략이다. 원래는 하나였던 광주시와 전라남북도가 현재 광주직할시와 전남 그리고 다시 전북으로 선의의 경쟁을 넘어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이 그것이다. 광주와 전남의 분리는 쿠테타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천인공노할 대량 살상행위를 저질렀던 군부 파시스트 전두환 정권의 음모적 시혜의 소산이다. 그리하여 광주와 전남은 부지부식간에 그 책략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도 소지역 이기주의에 매몰, 암투하고 있다. 소지역 이기주의부터 극복하지 못한다면, 중앙정권에 의한 46년간의 TK 영남정권에 의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신라정권에 의한 지배구조의 틀안에서 전라도 사람들은 그 책략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잃은 것을 문화 예술 자연 환경으로

이는 정치논리로 풀어서는 해결이 안된다. 정치행위에 대한 내실(內實)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것은 광주와 전라남·북도가 하나가 돼 호남만의 고유한 문화·예술·생활공동체를 이룸으로써 5백년간 백제가 누렸던 찬란한 문화를, 찬란한 경제·사회를 다시 새로이 창조해 나갈 수 있다.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창조적인 문화·예술로, 자연환경보전과 공존으로, 해외의 친환경적 자본과 기술의 도입으로, 문화, 예술, 역사, 자연을 사랑하는 국내외 관광객 유치로 그리고 남북한간의 서로 이익이 되는 교류와 협력 증진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이고 분권이며 공동체의 부활이다. 정(情)의 문화, 의리의 문화의 현대화이다. 한(恨)을 저항적 에너지로 불사를 것이 아니라, 마한·백제·장보고·동학혁명의 에너지를 세계가 주목할 예술과 문화가 중심이 된 창조적 공동체의 에너지로 키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 특유의 자연환경과 경관, 문화역사 유산은 전라도의 자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도 임업, 축산, 수산업도 친자연적인 유기농법이 중심이 돼야 한다. 온고이지신의 유기농업은 전라도의 자랑이다. 1998년 11월11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고 유기농업원년을 선포할 때만 해도 전남은 가장 낙후된 농업도(道)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박준영 도지사가 도백이 되면서 유기농업을 관민이 함께 나서 이제 전남의 유기농과 무농약 인증 비율이 전국의 61%를 점유한다. 이로 인해 1억원 이상 수입을 내는 농업인이 5000명을 헤아린다. 곧 1만호, 10만호도 가능하다. 자연자원과 환경생태계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이다. 농업을 하면 가난하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엎은 것이다. WTO, FTA등 시장개방체제하에서, 그리고 기후변화 구조하에서 세계가 절대적으로 식량공급이 부족해지고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농림수산업은 단순히 민초가 살아가는 생계수단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인류가, 아니 우리 한민족이 살아남을 길이 돼 가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이 넘쳐나고 외국 자본이 친환경농산업에 투자하고 백성들이 협동으로 서로 도우며 배불리 먹고 건강히 그리고 춤추며 노래하고 이웃을 서로 도와가는…. 군사와 외교를 제외한 나머지 권력을 중앙정부와 나눠 갖는 명실공히 분권화된 소공화국과 같은 지방자치의 나라로 앞으로 잘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면 '정치적 한'을 품고 있을 공간이 없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결국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삶과 일상생활이 풍족하며 문화예술 활동이 풍부하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던가. 30년 넘게 미국의 철저한 경제적 봉쇄체제하에서도 유기농업의 전국화와 의료 교육 전면무상화로 비록 외양은 초라하지만 내실은 행복하게 사는 쿠바의 성공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 땅에서 일찍이 영광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통탄스럽다. 만일의 사태때 광주와 전라남·북도를 일거에 초토화시킬지 모를 영광원전에 대한 폐쇄운동을 그래서 제일 먼저 호남인들이 펼쳐야 한다. 이는 평화운동, 환경생태계 복원운동, 그리고 자연자원 신재생에너지운동으로 연결돼야 한다.

남북간에 서로 이익이 되는 경제, 문화, 예술분야의 협력과 합작

또 북한과의 협력관계도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볼때, 삼국시대 고구려와 정립해 있을 때 백제는 오히려 발전했고 찬란한 문화를 누렸다. 중국 요서지방을 100년간 지배하기도 했다. 신라의 배신으로 고구려가 중국에 넘어가면서 그리고 장보고 선단의 해양 진출 길이 끊기면서 남녘 섬나라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여 영남정권과 재벌기업들이 독식하에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호남에는 저항의 역사만이 남게 됐다.
 
우리나라 정치안보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고구려를 이어받은 북녘땅과 경제 문화 예술 체육 관광 분야에서 협력·합작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원래 한 형제가 아니었던가. 남쪽 논농사와 북쪽 밭농사는 옛부터 태생적으로 보완관계이었다. 우리의 우수한 양식어업을 북한의 청정해역에서 경영하여 이익을 나눠갖고, 논농사 작물을 주고 밭작물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가. 또 우리의 우수한 농업 생산기법을 가르쳐 주고 남아도는 가축분뇨로 퇴비를 만들어 북한에 주는 대신 그들의 생산품을 받아오면 좋지 않는가. 남북이 서로 이익이 되는 것부터 교류와 협력을 호남이 앞장서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에 대대적인 조림사업을 지원하여 금수강산을 푸르게 가꾸면 누이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국제적으로 돈이 되는 탄소배출권을 우리가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와 광주가 앞장서서 서로간에 이익이 되는 분야부터 남북간 경제, 문화, 예술 분야 협력의 물꼬를 터나가야 한다. 이익을 나눠 갖는 것이 어째서 퍼주기인가. 평화와 행복을 공유하자는 것이 어째서 퍼주기인가? 남과 북이 문화와 예술을 교류, 공유하는 시도가 그래서 앞장서야 한다.

신라 정권의 태생적인 오랜 반(反)북방, 반호남, 반통일정책의 기득권적인 굴레로부터 과감히 벗어날 출구는 먼저 호남 특유의 문화 예술의 향기를 한반도와 세계에 드높이고 천혜의 자연경관과 환경 그리고 다도해를 세계가 주목할 만큼 명소로 가꾸어 내며, 남북이 실질적인 면에서 공생협력하여 평화공존 공생체제를 만들어 나가는데 길이 있다. 저항적인 에너지를 창조적인 에너지로 바꿔 호남이 해묵은 멘붕현상을 문화 예술 자연사랑으로 해소할 날을 헤아려 본다.

* 필자 주: 이 글은 <전남일보> 2013.2.7-8일자 특별기획 '박근혜 정부… 호남의 길을 묻다."에서 강덕균 기자가 정리한 필자와의 대담, "전라도 '대선 멘붕' 정치가 아닌 문화적으로 치유해야"를 뼈대로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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