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1)

[기고] 이른바 '명문사학' 총장들의 반지성적 언행에 대해

그제(6일) 일어난 한 '사건'에 관한 논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특히 고려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그렇다고 한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 포럼에서 고려대 이기수 총장과 연세대 김한중 총장이 기조연설을 한 뒤 언론인들의 질문에 답한 일을 두고 사건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우리나라 대학 역사상 보기 드문 반(反)지성적 행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두 학교의 정기전 명칭이 '고연전'이라서 고려대 총장이 먼저 연설을 했는데, 그 대학 관계자 30여명이 연세대 총장 연설 직전에 우르르 빠져나갔다는 것은 '영원한 맞수'에 대한 결례라고 보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정작 희한한 사건은 두 총장에 대한 질의와 응답 과정에서 일어났다. 한 포럼 참가자가 "두 대학의 경영대학 경쟁이 몇 년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최근 고려대 이 총장이 어떤 인터뷰에서 '경영대 교수 수가 고대 90명, 연대 65명으로 이미 승부가 끝난 것'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요지의 질문을 연세대 총장에게 했다. 김 총장은 "우선 학생 수자가 다르고, 무엇보다 공인회계사(CPA) 합격자는 우리가 1등"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대학 평가 순위에서 고대가 2년째 연대보다 낮다"고 지적하자 고려대 총장은 "인재 육성은 고대가 잘 한다"면서 "김연아의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도 고대 정신을 주입시킨 결과이며, 그래서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광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한참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경영대 교수 수가 많아야 경쟁에서 이긴 것이고, 공인회계사 합격자가 더 많아야 '연고전'(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더 알려진 이 명칭을 쓰기로 한다)에서 승리한 것이라는 말이 우리나라 '최고의 사학 명문'이라고 주장하는 두 대학 총장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오다니··· 두 사람이 대면해서 논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교수 1인 당 가르치는 학생은 몇 명이고 교육환경은 어떻다는 것을 근거로 '우리 경영대학이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든 경영학도들이 공인회계사를 지망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우리 경영대학 졸업생들이 기업체나 관련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온당하지 않았을까?

두 총장의 머릿속에는 '우리 학교가 적어도 너희 학교보다는 앞서야 한다'는 관념이 굳게 박혀 있는 것 같다. 그들이 학교 안과 밖을 향해서는 어떤 교육이념과 발전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최근까지 고려대학교는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헌신적 열정으로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 영국의 더 타임스지에서 실시한 세계의 대학들에 대한 평가에서 2006년에 국내 사학으로서는 처음으로 150위라는 기록을 올렸습니다. 이는 고려대학교가 국제화, 세계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결과로 고려대학교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밖에도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도 100위 안에 드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2007년 유력 일간지의 사립대학 종합평가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이기수 총장의 인사말에서)"

"연세대학교는 창립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애환을 같이하며 신학문의 탐구와 더불어 국학연구의 중심지, 근대적 의학교육과 의료선교의 발상지로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사학으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해 왔습니다."
(·····)
"앞으로 연세대학교는 연세인의 조화롭고 자발적인 개혁을 통하여 새로운 연세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품위 있는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자 변화를 선도하는 최고의 대학(Yonsei, the First and the Best)이 될 것입니다. 연세는 한국 사회와 세계를 새롭게 만드는 대학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김한중 총장의 인사말에서)


두 총장의 인사말이 홍보용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고, 1위, 최초라는 개념을 가장 강조하는 데는 명백한 의도가 있겠으나 두 사람의 주장에는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다. 고려대 이 총장의 말대로 더 타임스가 과연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언론재벌 총수인 루퍼트 머독이 1981년에 더 타임스를 인수한 이래 28년 동안 그 신문은 권위지가 아니라 그저 그렇거나, '황색지' 성향마저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인디펜던트, 옵저버, 가디언 같은 영국 신문들이 질 높은 신문(quality paper)이라고 주장하면 몰라도 말이다.

그리고 연세대 김 총장이 '최초의 대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성균관대학교 공식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민족의 이름으로 600년 전 당당하게 포문을 연 성균관이 민족사를 장식한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낳고 그 인물들이 민족정통대학인 성균관대학교를 세웠다. 600년 화려한 역사 위로 성균관대학교의 새로운 역사가 태동한다."

연세대는 올해가 개교 124돌이라고 한다. 1885년 궁정어의 앨런이 고종의 명을 받아 설립한 제중원이 1909년에 세워진 세브란스의학교로 맥을 이어 연세대의 모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대는 1905년에 이용익이 세운 보성전문이 '한국 최초의 민간인에 의한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이라고 공식으로 주장한다.

나는 어느 학교가 최초인지는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가려내되 '최(最)'라는 글자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계에도 대한민국에도 최초와 최고는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학교만 그렇다'고 하면 다른 사립대학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르고 좋은 지식을 전해 주는 데 충실하다면 개교한지 10년밖에 안 된 대학이 최고의 학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지금 등수와 점수 때문에 열병을 앓고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연의 품에서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이들에게 교육행정당국이 일제고사를 강요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영어,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으로 몰아대니 언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풀 냄새를 맡고, 밤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면서 우주의 신비를 생각할 수 있을까? 특히 요즘에는 전국에 두 군데밖에 없다는 국제중학교가 초등학생들에게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그런 학교에 들여보내려고 한 달에 초등학생 사교육비로 200만원 이상을 쓰는 집들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등수와 점수가 사회 구성원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코흘리개 적부터 '공부 열심히 해라. 남보다 점수를 높게 받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 그중에서도 극소수가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로마자 약칭. 묘하게도 하늘이라는 뜻이다)에 올라간다 해도 '점수 높이기 기계'를 벗어나서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예 그렇게 되지 못하고 학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훨씬 더 많지만 말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등수 매기기로 유명한, 아니 어떤 면에서는 악명 높은 미국의 미디어회사가 있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바로 그 기관이다. 같은 이름의 정기간행물을 내는 이 회사는 해마다 한 번씩 '대학입시 최종 가이드'라는 책을 펴낸다. 대판으로 1700쪽이 넘는 그 책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 관한 정보와 입시 요령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학부모나 학생들 다수는 이 책의 내용을 좋은 정보라고 보기도 하지만 미국의 대학 총장 대다수는 아주 나쁘게 여긴다고 한다. 이 책이 대학 등수를 해마다 발표하기 때문이다. 종합대학과 인문대학(liberal arts college)으로 나누어서 1등부터 100등 아니면 그 너머까지를 발표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하버드대학교가 1등이겠지' 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해가 허다하다. 프린스턴이 맨 위로 올라가는 적도 많고, 자존심 강한 아이비리그 8개 대학 중에서도 20위 밖으로 나가는 학교가 있다. 교수와 학생의 수준, 교육시설과 복지 같은 여러 자료를 종합해서 매긴 등수라지만 그렇게 대학을 서열화하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몇 해 전에는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미국 여러 곳의 명문대학 총장들이 그 회사에 그런 일을 그만 하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그래도 상업적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기 때문인지 그 회사는 법과대학원(로스쿨)과 경영대학원의 등수까지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계속)

(두 대학 총장의 '쇼'와 김연아 (2) 보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