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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다 얘기했고 南은 '돈 문제'만 공개했다

개성접촉 北통지문 공개…MB정부 난독증? 여론교란?

지난 21일 '개성접촉'에서 북측이 남측에 통지했던 내용의 전체 맥락이 공개됐다.

북측은 개성공단을 두고 6.15 공동선언의 상징이라면서 남측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는 북측이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측에 주었던 모든 특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임금 인상, 토지사용료 조기 지급 등을 요구했다는 정부의 발표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음을 뜻한다.

또한 '공단을 살릴지 죽일지 선택하라'고 남측을 압박하면서 공단 존폐의 책임은 남쪽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측이 단지 '돈 문제'만을 들고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한 정부의 발표는 북측의 진짜 요구를 사실상 은폐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접촉으로 대화의 모멘텀이 마련됐다는 청와대의 해석은 아전인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 개성접촉을 마친 남측 대표단의 귀환 장면 ⓒ연합뉴스

사태 전모 1. 22분 얘기했는데 고작 10줄?

개성접촉이 끝난 21일 밤 11시 30분 청와대와 통일부는 3쪽 반짜리 보도 해설자료를 배포했다. 거기에 나타난 북측의 '전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위해 남측에 주었던 모든 제도적인 특혜조치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함.

당면하여 개성공업지구의 '토지임대차계약'을 다시 하며 10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어 2014년부터 지불하게 된 토지사용료를 6년으로 앞당겨 지불하도록 할 것임. 이와 함께 공업지구 북측 노동자들의 노임도 현실에 맞게 다시 조정함.

둘째로, 개성공업지구 사업과 관련한 기존계약을 재검토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함. 남측은 이에 필요한 접촉에 성실히 응해 나와야 할 것임."


접촉시간이 22분이었다는 점, 남측이 먼저 대북 통지문을 읽으려하자 북측이 제지하고 자신들의 통지문을 읽고 가버렸다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공개된 분량은 너무 짧았다. 내용에 있어서도 개성공단의 존립을 흔들 강력한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압도적인 예상과 달리 '기술적인' 요구만 담겨 있었다.

<프레시안>은 해설자료 배포 직후 북한 전문가인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자 김 소장은 "전문(全文)을 보기 전에는 코멘트 할 수 없다는 게 내 코멘트"라며 "개성공단을 민족사업으로 여겨 특혜를 줬다가 이젠 그걸 없애겠다는 말인데 북한의 어법으로 볼 때 왜 그러는지 먼저 상황 설명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다음날 <프레시안> '정세토크'에서 "(정부 공개 내용에) 중요한 부분이 잘린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은 이런 얘기를 했을 겁니다. '개성공단 사업은 6.15 공동선언에서 시작된 것이다. 6.15 선언에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그걸 명분으로 개성에 특혜를 줬다'고 말할 수 있죠. (…)

개성공단에 주었던 특혜를 이제는 거둬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문제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찾고 그 논리의 연장선에서에서 각종 통보를 했을 겁니다."
(☞정세토크 전문보기)

하지만 정부가 공개한 부분이 그러하다 보니 22일 일부 언론들은 '북한이 요구한 건 결국 돈'이라고 썼다. 몇몇 신문들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 북측이 돈 얘기를 꺼내기에 앞서 '남측이 PSI에 참여한다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원론 수준에서 말했다고 덧붙였을 뿐이었다.

사태 전모 2. <동아일보>가 전한 '놀라운' 소식

이처럼 북측이 밝힌 내용을 다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통지문의 추가 내용이 23일 공개됐다. <동아일보>가 통지문을 확인했다면서, 북측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우리가 이미 전쟁선포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힌 이른바 PSI는 남북관계를 험악한 지경에 몰아넣고 있다.

남측 기업은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북한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얼마 벌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통해 얻는 것이 거의 없고 손해만 보고 있는데 이런 계약을 그대로 가져갈 수 없다.

땅값도 올리고 노동력값도 올리겠다. 우리는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남측은 '우리가 돈에 목을 매 (사업을) 깨지 못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이어 정부가 공개한 '특혜조치 전면 재검토' 내용을 말한 후) 우리는 개성공업지구 사업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성의와 노력을 다하겠다."


이 보도에서는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첫째, PSI에 관해 원론적으로만 말했다는 몇몇 신문의 보도는 사실이라는 점. 둘째, 정부가 처음 공개한 '특혜 전면 재검토'는 역시 '돈을 더 달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게 북측 발언의 전부라면 '전체 맥락이 빠져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틀린 것이 되는 셈이었다.

그러면서 <동아>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추가로 전한다. 북한이 추후 이른 시일 내에 남북 대화를 강력히 희망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다음 접촉 날짜를 확정해 달라. 이번 주에라도 하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우리 측 대표단이 22분간의 접촉을 마치고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귀환하는 동안에도 연락을 해 "가능한 한 (북한 측 요구에) 답을 빨리 줬으면 좋겠다. 내일(22일)이라도 언제 다시 만날 것인지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사태 전모 3. 드러난 몸통…진짜 메시지는?

그러나 <동아>가 이 기사에서 "통지문 전문이 확인됐다"고 쓴 건 오보였다는 게 이날 오후 밝혀진다. <연합뉴스>가 통지문을 입수해 진짜 전문을 공개한 것이다. <연합>이 보도한 전문을 주제별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기사 전문 보기)

(A) 남측 당국은 우리가 전쟁선포로 간주할 것이라고 명백히 밝힌 PSI의 전면 참여를 떠들며 북남관계를 험악한 지경에 몰아넣고 있다

(B) 개성공단 사업에 성의를 다해온 것은 그것이 6.15 공동선언의 상징이며 '우리민족끼리' 이념의 소중한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측 당국은 우리의 존엄과 체제까지 심히 중상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로선 부득불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현 남측 당국이 북남선언들과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부정하고 반공화국 대결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북남협력의 상징인 개성공업지구사업을 파탄시키는 행위나 다름없다. 더욱이 남측 당국이 개성공업지구를 우리를 반대하는 노략 기지로 삼고 있는데 대해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남측 당국의 무분별한 행위로 말미암아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협력의 상징으로 온 겨레의 기대와 관심을 모으며 좋게 발전해온 개성공업지구사업이 엄중한 위기에 직면하게 됐으며 존재자체가 위태롭게 됐다.

(C) 지금 남측기업들은 개성공업지구에서 한 해 수억 달러의 이익을 얻고 있지만 우리는 근 4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노동력의 대가로 3000만 달러(연간) 정도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개성공업지구를 통해 얻는 것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만이 손해를 보면서 언제까지나 기존의 계약에 구속돼 있을 수 없으므로 땅값도 올리고 노동력 값도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단은 1단계 하부구조 건설이 끝나고 여기에 100여개의 기업들이 들어와 가동하고 있으며 건설중에 있거나 건설을 예약한 기업들도 많은 조건에서 이제는 현실에 부합되게 계약을 갱신할 때가 됐다.

(정부가 당초 밝힌 '특혜 재검토' 입장 이어지고)

(D) 남측이 이번 통지에 대해 또 다시 얼토당토않게 헐뜯으면서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그에 상응한 보다 강력한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며 그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후과에 대해서는 남측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원칙적 입장은 위기에 처한 개성공업지구사업을 구원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인내성 있는 노력의 표시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개성공업지구 사업이 원만히 추진되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할 것이다. (A, B, C, D 구분은 <프레시안>)

A와 C는 정부 발표 및 <동아> 기사와 사실상 같다. 새로 드러난 곳은 B, 그리고 전체 요약에 해당하는 D 부분으로 정세현 전 장관과 김연철 소장 등이 유추한 내용과 거의 같다.

이에 따라 북측 통지문의 메시지는 크게 △ '6.15 선언 부정'으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개성공단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B)과 △ 따라서 6.15 선언에 따른 특혜를 거둬들이겠다는 것(C)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들 메시지는 한 덩어리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연철 소장은 "<연합> 기사를 보고서야 다 이해가 됐다. 역시 돈 문제는 핵심이 아니었다"라며 "북한은 대북정책의 기조를 바꾸라는 큰 틀을 제시하면서 남쪽에 공을 넘긴 것"이라며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단 사업이 원만히 해결되기 위해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D)한 의미는? '우리는 할 일을 다 하겠으니 공단 존립은 남측의 대응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파탄이 나면 그 책임은 남쪽에 있다는 북한식 화법의 전형이다. 따라서 한 쪽으로는 압박하고 다른 한 쪽으로는 '아쉬우니까' 협상하자는 강온 양면전략과도 거리가 있다.

한편, 북측 관계자들이 '이번 주에라도 다시 접촉하자'고 강력히 희망했다는 <동아>의 보도는 통일부에 의해 부정됐다. 이종주 부대변인이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차기) 접촉 날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북한 통지문을 사실상 은폐한 것은 우선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심각한 제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전체 맥락을 알 수 없도록 일부만 공개함으로써 정확한 판단을 어렵게 해 여론을 교란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통지문 전문이 언론에 흘러 들어간 대목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정부가 일부러 언론에 유출시키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면 '뒤늦게 공개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꼼수를 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종주 부대변인은 북측 통지문의 전체가 공개돼야 한다는 기자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내부적으로 협의해보고 더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있는지 알려 주겠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혹여 의도적으로 일부 언론에만 흘렸다면 문제가 작지 않다.

청와대나 통일부 차원의 조직적 유출이 아니라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데 불만을 품은 정부 당국자가 독단적으로 언론에 흘린 것이라면 더 큰 문제다.

김연철 소장은 "특정 인사나 세력이 독단적으로 유출했다면 부처간 혹은 당국자간 엄청난 갈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통일부가 강조하는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이므로 책임지고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 모멘텀 마련됐다"는 청와대의 '난독증'

정부가 통지문 전문을 일부러 숨긴 게 아니라 애초 공개한 부분만 공개해도 상관없다고, 즉 그게 핵심이라고 봤다면 더 큰 문제다. 북한의 의도와 향후 정세를 오독(誤讀)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개성접촉 다음 날 나온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북한이 판을 깨자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화의 모멘텀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런 국면까지 온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적인 외교관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이 '개성공단을 유지하려면 정책을 전면 전환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의 모멘텀'을 운운하는 것은 청와대의 '정세 난독증'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을 보는 식으로 의도를 파악하고 흐름을 읽는다면 향후 대북 협상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근본적인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북미 직접대화 국면에서의 정세 대응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개성공단에서 돈을 더 벌기 위해 대화를 애원한다'는 식으로 북측의 태도를 왜곡한다면 북측의 반발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 정부가 선전하는 '대화 모멘텀'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편, 북측이 통지문에서 "남측 당국이 개성공업지구를 우리를 반대하는 노략 기지로 삼고 있는데 대해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를 간첩죄 등으로 처리할 수 있고, 남측 당국도 간첩 행위에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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