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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시간, 오바마와 김정일 그리고 MB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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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시간, 오바마와 김정일 그리고 MB의 선택은?

[화제의 책] 이우탁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

공적인 글을 쓸 때 남의 글을 인용하려면 주석을 달아서 필자와 출처를 밝혀야 한다. 안 그러면 표절이다. 그런데 또, 인용과 관련해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진짜로 베끼는 글은 주석을 달지 않는다.'

북핵 6자회담에 관한 기사나 논평을 쓰는데 있어 이우탁 연합뉴스 기자의 기사는 바로 그런 글 중 하나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우탁의 기사를 베끼지만 주석은 잘 달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베낀다'는 말은 '꽤나 많이 참고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법적인 의미의 표절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어쨌든 정말로 '꽤나 많이' 참고한다.

2006년 10월 9일은 긴 하루였다

▲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 (이우탁 지음, 창해 펴냄>
이우탁은 연합뉴스에 근무하면서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상 당시 외교 담당 기자를 시작해 1차 북핵 위기를 취재했고, 2002년 2차 위기 이후에는 2003년 4월 북·미·중 3자회담부터 작년 12월까지 열린 6자회담을 거의 대부분 현장에서 취재했다.

줄잡아 15년이란 세월을 북한 핵문제에 천착해 왔으니 '이 바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우탁의 기사를 제일 먼저 찾아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에 나온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이우탁 지음, 창해 펴냄)은 그런 기사들이 묶이고 재구성되어 탄생한 책으로, 부제대로 "북핵 6자회담 현장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 기록의 한 대목.

"했죠?" "…." "한 거 다 안다." "…"

상대방은 아무런 말이 없다. 마지막으로 "정말 이럴 거냐?"고 재촉했다. 그러자 다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했다. 아니 한 것 같다. 동향이 포착됐다."는 말이 건너왔다. 그러고는 핸드폰이 꺼지고 말았다.

아, 드디어 북한이 핵실험을 했구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자판을 잡았다. 곧바로 "<긴급> 北 핵실험 관련 '동향'있다"라고, '정부 당국자'라는 제목에 부제는 '안보관련 장관회의 긴급소집'을 달아서 1보를 날렸다. 2006년 10월 9일 오전 11시 29분 타전된 '긴급기사'였다.
(431쪽)

기자 생활 동안 숱하게 많은 특종 기사를 썼던 이우탁이지만 북한 핵실험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도했다는 것은 그 어떤 특종 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이다. '핵실험, 기나긴 하루'라는 제목의 글에 묘사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은 현장의 기록이란 게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기자가 북한의 핵실험 1보를 누구보다 먼저 날릴 수 있었던 깃은 기자들만이 아는 운의 결과였다. 그날 오전 11시께 외교부 대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장관님이 급한 일이 있어서 오찬 약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 외교부는 큰 경사를 맞았다. 외교부 장관이기도 한 반기문이 한국인 최초로 UN 사무총장에 사실상 내정된 것이다. 반 총장 내정자는 "아무리 바빠도 한국 기자들에게 밥을 사야 맘이 편하겠다"며 과거부터 잘 알고 지내던 외교부 출입기자들에게 '마지막 점심'을 사기로 돼 있었다.

평소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반 장관이기에, 그리고 그날 점심의 중요성이 너무 크기에 '약속 취소'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음을 뜻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반 장관은 긴급호출을 받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우탁이 가진 기자로서의 센스와 감각, 근성과 경험을 한꺼번에 발견할 수 있는 이 짧은 글은 그가 어떻게 최고의 북핵 문제 기자가 되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지 이 부분만이 아니다.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에는 '일 할 때는 북핵 문제를 취재하고, 쉴 때는 북핵을 생각하고, 잘 때는 북핵에 관한 꿈을 꾸고' 사는 한 언론인의 고민이 곳곳에 배어 있다.

자신과 동료들이 쓴 기사를 단순히 묶어 놓은 책이 아니라 각 주제별로 문제를 제기하고 소결을 내리는 등 19개의 모든 챕터가 각각 하나의 완결된 글로 구성된 것은 이우탁이 그냥 '발로 뛰는 기자'였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고민하는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은 외교관 조련의 장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이우탁은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함께 한반도는 김정일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이제 운명을 결정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고 본다.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이란 제목은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책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이 지난 8년간 보여준 대북정책의 시행착오가 낳은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런 모든 점을 종합할 수 있는 기회를 안고 취임한 오바마의 주변에는 길게는 20년에서 짧게는 10년간 북한을 분석한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만큼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을 내놓을 여지가 많은데, 따라서 이 시점에서 김정일이 고려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고 이우탁은 말한다.

핵이 없는 선군정치, 군사강국 없는 강성대국론은 논리적 토대가 약하기 때문에 북한에게 핵은 생존의 핵심 요소인데, 오바마가 이끌 4년 혹은 8년은 북한에게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기회'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핵 문제로 씨름해 온 2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김정일로 하여금 이제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은 이처럼 오마바 시대가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매우 중대하다고 역설하면서 한국 정부는 오바마 대북전략의 흐름을 빨리 그리고 정확히 읽어내고, 한국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우탁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관계에서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방향 설정을 한다면 한국 정부의 외교라인은 그 지시에 맞는 대응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고 단언한다.

지난 6년간의 6자회담이 전략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외교 전문가들을 적지 않게 조련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근거다.

그러나 최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발표를 둘러싸고 나타난 극심한 혼란상은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용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과연 있는지를 묻게 했다. 외교·안보 문제를 컨트롤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했다.

외교·안보의 최종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에게 그런 의지가 없다면 외교 전문가들이라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저 외교관들의 유능함은 관료정치와 보신주의라는 안락의자를 찾는 데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는데, 대통령에게 구슬을 꿸 뜻이 없어 보인다면 그들의 선택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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